허름한 ‘동네 공장’이 미국 NASA에 큰소리친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4.03.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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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소기업의 기술력 집적된 ‘오오타쿠 공단’

일본이 1991년 버블 경제가 무너지고 20여 년간의 불황을 겪으면서도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절약 정신, 수출, 축적된 자본의 힘 등을 거론하지만 역시 핵심은 기술이다. 그것도 기껏해야 직원이 몇 명, 많아야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중소기업의 기술력이다. 일본이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고 불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밑바닥이 단단한 중소기업에 있다.

중소기업 단지는 일본이 자랑하는 기술의 집적지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대도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은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오오타쿠 공단’이다. 조금 허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동네 공장’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처음 이곳에 가면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타 기업이 많이 탄생해 부를 크게 축적한 기업도 여럿 나왔지만 동네 공장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종사하는 사람들도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의 60% 이상은 60대이고 50대가 30%가량이다.

오오타쿠에 자리 잡은 업체는 대부분 10명 미만의 소규모 공장으로 이들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의 공장들 중에는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분사했거나 중소기업에서 분가해 창업한 공장이 많다. 1980년대 이후 대기업의 생산현장이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그 이후에는 동남아나 중국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때 중소기업들은 대량 생산형으로 규모를 확대하기보다는 기술의 고도화 및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전환해 경영 기반을 강화해왔다.

오오타쿠에는 5000개 이상의 공장이 있다. 이 중 80% 이상은 기계금속 가공 업체다. 기계금속류는 일반 기계 기구, 전기 기계 기구, 금속 제품, 플라스틱 제품 등 다양하다. 특히 플라스틱 성형용 금형 업체가 많다. 이미 그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부품이나 소재들 중에는 NASA(미국 항공우주국)에 납품되고 있는 것도 있다. 우주선에 사용되는 기술, 핵심 군사 부품, 일반 반도체, 산업용 부품에 이르기까지 일본 중소기업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오타쿠에서는 매년 ‘오오타쿠 기능인 100인’ 대회를 열어 우수한 장인들을 선발한다. 수상자 면면을 보면 대개 30~40년 이상의 경력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는 ‘세계적인’ ‘유일한’과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 기업이 많다. 가령 심중도금공업주식회사는 1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두께를 바꿀 수 있는 초박형 도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리튬전지가 보급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회사는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 시장을 100% 가깝게 점유하고 있다. 금속가공회사 오카노공업주식회사도 아픔이 덜한 주사바늘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는 원천은 어제오늘 형성된 게 아니다. 준비된 인력이 있었고 문화가 있었다. 19세기 중엽의 일본은 고도화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반으로 반서조소를 만들어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 등을 가르쳤다. ‘정련방’이라는 곳에서는 군사화학과 야금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군사력을 키우는 모태가 됐다. 일찍이 서양 기술에 대해 눈을 뜨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서양의 증기기관·증기차·증기선·전신기 등 필요한 기술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일본인은 필요한 것만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바꿔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다”고 평했다.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기술력을 축적해온 중소기업들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기술을 고도화시켜온 것이다.

‘모노쓰쿠리’ 정신이 강한 중소기업 만들어

강한 중소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한 분야에 평생을 거는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가는 기술의 고도화도 필요하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본의 기술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모노쓰쿠리 정신’이다. 모노쓰쿠리란 흔히 ‘물건을 만든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의미 이상이다. 모노쓰쿠리 정신 속에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즉 일생을 다 바친다는 비장한 각오가 깃들어 있다. 이런 정신이 계승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장인을 중시하고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도 중소기업 성장에 일조했다. 크게 세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1945년에는 경제력 집중 방지와 건전한 중소기업 육성에 중점을 뒀고, 1948년 중소기업청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 두 번째 시기는 1955년 고도 성장기와 1970년 이후의 안정 성장기다. 이 시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다. 마지막으로 1985년부터 지금까지는 도전정신이 있고 능력 있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다. 시대에 맞게 지원책을 만들어 중소기업의 방향을 결정해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과 기술력으로 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많다. 대표적인 회사가 ‘소켄화학’이다. ‘작더라도 가장 훌륭한 회사를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자’는 이념을 기치로 1948년에 창업했다. 도쿄 신주쿠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사이야마 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택시로 5분 정도 가면 소켄화학 공장이 나타난다. 정리정돈이 잘돼 있고 아주 깨끗하다. 이 기업이 왜 정리정돈을 강조하는지를 금세 알 수 있다. 소켄화학은 양면테이프와 접착제가 주력 분야로 디스플레이·자동차·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접착제를 생산하고 있다. 2대째인 나카무라 모토 회장은 이곳을 950여 명이 근무하고 연매출액이 4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중견회사로 키웠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정부로부터 많은 상을 받았다.

일본 중소기업이 강한 이유를 꼽자면 오직 기술력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장인정신을 들 수 있다. 평생을 바치다 보니 대다수 중소기업인의 나이가 60을 넘었다. 이제 이들이 은퇴를 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업을 이을 후계자가 없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오오타쿠에 있는 20대는 1%대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상황은 30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 수도 1980년대 초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강한 중소기업들의 기술이 사장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강한 중소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 확산이 중요하다. 그 바탕 위에 오랜 시간에 걸쳐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동네 공장에서 평생을 걸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강한 중소기업은 있는데 강한 인재가 없다는 게 현재 일본 중소기업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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