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넘어질 수 있어 한 번 더 부딪쳐보는 거야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3.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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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나면 실패자로 낙인…재기할 기회 줘야 ‘강소기업’ 태어나

흔히 ‘9988(전체 기업의 99%인 중소기업이 고용의 88% 차지)’로 불리는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일자리의 보고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괴리감이 있다. 중소기업을 고용 창출의 주역이라 치켜세우지만 매년 문을 닫는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인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어려울 때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창업 기업의 생존율은 1년 차에는 84%이나 10년 차엔 24%로 확연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후 중소기업 네 곳 가운데 한 곳만 살아남는 셈이다. 엄혹한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 번 넘어지면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부도 후 재기를 노리는 기업인의 비율은 19%(부도기업인재기협회 자료)에 불과하다. 자본력이 탄탄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부활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 일러스트 최길수
한국 중소기업 경쟁력 떨어지는 까닭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중소·중견 기업의 수출 비중은 2001년 42.9%에서 2010년 34.5%, 2011년에는 33%로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 중소기업의 효율성 또한 대기업의 68.3% 수준(2011년 기준, 국제경영개발연구원 조사 결과)으로 조사 대상 59개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초라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히든 챔피언’과 같은 글로벌 강소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형 히든 챔피언(매출 7조원 미만인 중소·중견 기업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3위 이내 기업)은 23개사로 독일(1307개), 일본(220개사)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적었다. 국내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글로벌 강소기업을 노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국이 중소기업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소기업의 재기를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 대책’을 발표해 실패한 기업인을 돕기 위한 재기 지원 제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종합 대책에는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 재창업 성공률 제고, 기업 건강진단 기반 구조개선 지원 시스템 구축 등의 방안이 담겼다. 지난해 재기지원법·패자부활법 등이 발의되면서 기업의 재도전을 북돋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또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정책 인프라 차원의 지원에 앞서 실패한 기업인의 재기를 지원하는 제도들은 2010년부터 다양한 루트로 생겨나고 있다. 한국의 재기 지원 제도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재창업 자금 지원 제도’,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의 ‘재도전 기업주 재기 지원 보증’,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진로 제시 컨설팅’과 ‘회생 컨설팅’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까지는 구축 단계이기 때문에 그 실효성을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정책적 인프라가 마련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부실 위험 예방 프로그램 마련돼야

지원 정책들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재기 프로그램이 마련돼 좀 더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재기 중소기업인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 중인 민간단체로는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실패한 중소기업 경영인의 재기를 돕기 위해  2011년 8월 설립됐다. 설립자인 MS가스의 전원태 회장 또한 30여 년 전 창업을 했다가 두 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 재산을 털어 개발원을 설립했다. 전 회장은 한때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지금은 매출 1300억원대의 중견기업을 이끌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원활한 재도전 환경 구축을 위한 재기 활성화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도가 난 이후 회생한 중소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일반 창업 기업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1990년부터 2011년까지 부도를 경험한 후 영업을 시작한 중소기업 중 3년 이상 재무 자료를 보유한 회생 기업 395개사와 이들 기업과 규모가 비슷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균 총자본 순이익률은 사업 시작 첫해에는 일반 기업(53.2%)이 재기 기업(-17.7%)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두 번째 해에는 재기 기업(9.9%)이 일반 기업(3.9%)을 앞지르기 시작해 3년째가 되면 재기 기업(20.3%)이 일반 기업(-5.4%)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사업한 지 3년이 넘어서면 사업 노하우가 있는 재기 기업의 성장성이 기존 기업보다 크게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중소기업이 재도전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낭비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소기업의 경영 노하우와 기술력이 한 번의 실패로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가운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히든 챔피언’이 있었을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배영임 연구위원은 “실패 기업인은 대부분 재창업보다는 실직 상태를 유지하거나 취업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며 “한 번 실패로 ‘실패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혀버리는 데다 다시 실패하게 되면 기업인이 져야 할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재기를 위한 컨설팅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재기 프로그램의 방향은 좋으나 여전히 예방이 부족하다”며 “유럽의 경우 부실 위험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핫라인 프로그램과 모니터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한국이 앞으로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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