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강도’원?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4.04.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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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니 속이 후련하다.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 늘 찜찜했다. 사고를 치면 우리까지 도매금으로 욕을 먹었다. 흙탕물 튀기면서 같이 있어야 되나.”

 2012년 겨울 금융위원회 고위 인사가 한 말입니다. 금융위는 서울 여의도에서 금융감독원과 동거하다 2012년 10월 한국프레스센터에 딴살림을 차렸습니다.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왜 혈세를 들여 비싼 집으로 이사 가느냐고. 실제 금감원 건물 임차보증금은 12억7000만원이고, 한국프레스센터는 28억원으로 16억여 원이나 비쌉니다. 월세도 3400만원 높습니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짐을 쌌습니다. 금융위가 머리라면 금감원은 몸입니다. 금융회사에 대한 징계 등 금융위가 결정한 것을 금감원이 실행합니다. 그런데 몸이 더럽다며 머리가 스스로 떨어져나간 셈입니다.

금감원을 둘러싼 비리를 보면서 오래전에 들었던 금융위 관계자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요즘 금감원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릅니다. KT 자회사인 KT ENS 간부와 협력업체 대표들이 가짜 서류로 1조8000여 억원을 불법 대출받았습니다. 이들은 이 돈으로 호화 별장 짓고, 룸살롱에 드나들며 물 쓰듯 뿌렸습니다. 기가 찰 노릇은 이들 뒤를 금감원 간부가 봐줬다는 것입니다. 이 간부는 대출 사기단과 어울리며 시가 60억원대에 달하는 땅 지분을 받고, 향응과 해외 골프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올해 초 금감원이 조사에 나서자 미리 사기단에 알려 해외로 내빼도록 도왔다고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간부가 금감원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금감원 독립을 맨 앞에서 주장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낮에는 개혁을 외치고, 밤에는 뒷돈을 받는 파렴치 행각을 벌인 겁니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동양그룹 사태를 키운 주범 중 하나가 금감원입니다. 동양 계열사들이 1조3000억원 규모의 부실 회사채를 발행해 4만9000명의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힐 때까지 금감원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눈은 뜨고 있었으나 모른 척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조폭처럼 한 패거리가 돼 투자자의 등을 치고 있는 게 감독 당국과 금융권의 모습입니다.  

“요즘 금감원이 하는 일은 두 가지다. 권력층에 찍힌 사람 자르기와 금융지주 회장 연봉 깎는 일이다. 금감원이 정치 집단이 됐다. 팀장들이 일은 안 하고 로비하러 다니기 바쁘다. ‘누구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사람들이 설치고 다닌다.” 금감원 고위직을 지낸 사람의 말입니다.

직원들이 정치나 하러 다니니 금융회사에 대한 감시는 건성건성 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연봉 높지, 접대 받지, 퇴직하면 감사 자리 꿰차지, ‘신이 숨겨둔 직장’이 따로 없습니다. 현재 금감원 직원들의 신분은 반관반민(半官半民)입니다. 민간의 효율성과 정부의 공공성을 조화시키겠다는 취지입니다. 이게 공무원과 기업의 ‘달콤한 것’만 챙기는 뜻으로 변질돼버렸습니다. 

금감원의 추잡한 얼굴에 메스를 대야 합니다. 방법은 공무원 조직으로 바꿔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것뿐입니다. 공무원 신분이 되면 월급이 줄어든다고 저항이 거세겠지만 밀어붙여야 합니다. 사고뭉치 금감원을 그냥 둬선 안 됩니다. 정 이대로 있고 싶다면 간판을 ‘금융강도원’으로 바꿔 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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