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를 속였나 돈 없다더니 숨겨둔 재산 1000억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4.0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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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호 전 회장 재산 은닉 의혹…국내외에 거액의 부동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은닉 재산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수천억 원대 자산가로 알려진 그는 국내외에 100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감춰둔 것으로 보인다. 본인 소유가 아니라 가족이나 지인의 명의를 총동원했다. 그 연관성을 밝히는 게 재산 추적의 핵심이다.

허 전 회장은 대주그룹 회장 시절인 2002년부터 뉴질랜드에 진출해 건설사·창업투자사 등 17개 법인을 설립했다. 이를 위해 2011년 중반까지 약 370억원을 투자했다. 허 전 회장 일가는 이들 회사의 지분을 나눠 소유하면서 재산을 불려왔다.

허 전 회장은 2004년 현지에 대주건설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뉴질랜드 정부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허 전 회장이 이 회사 지분 46%를, 황 아무개씨(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가 30%를, 손 아무개씨가 24%를 소유하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회사명을 KNC건설엔지니어링으로 바꿨다. 그는 가나다개발의 지분 100%도 가지고 있다. 황씨는 HH개발과 크리스티부동산홀딩스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72)이 북뉴질랜드 오클랜드 도심에 지어 분양한 아파트. ⓒ 연합뉴스
같은 해 따로 설립한 KNC건설의 지분 100%는 황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스콧 허씨가 소유하고 있다. 허 전 회장의 조카이자 전 대주건설 상무인 허숙씨가 이 회사 대표다. 분양 사업을 하는 이 회사는 현재도 영업 중이다. 스콧 허씨는 KNC글로벌 매니지먼트의 지분 85%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허 전 회장 일가는 뉴질랜드에 17개 법인을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세금을 내지 않아 강제 폐쇄된 법인 1곳을 제외한 16개 법인은 현재도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치용씨에 따르면 허 전 회장 일가가 뉴질랜드에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500억원 이상이다. 허 전 회장은 오클랜드 도심에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기 위해 2003년 매입한 209억원 상당의 부지를 2012년 492억원에 되팔아 두 배가 넘는 시세 차익을 얻었다. 고층 빌딩 건설 계획은 조망권과 일조권 침해 제소로 흐지부지된 후 외환위기로 완전히 중단됐다.

초호화 요트로 도피 계획 의혹

허 전 회장은 2010년 광주고법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확정받은 다음 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지난 3월22일 귀국하기 전까지 현지에서 재산을 불리며 호화 생활을 즐겼다.

당시 90억원에 사들인 주차장 부지는 현재 270억원이 됐다. 이 부동산은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씨의 명의로 돼 있다. 오클랜드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고급 주택은 KNC건설 소유다. KNC건설은 허 전 회장의 아들 스콧 허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2008년 구입 당시 90억원이던 이 주택의 시가는 현재 140억원이 넘는다.

허 전 회장은 카지노 귀빈실에서 게임과 고급 요트 여행도 즐겼다. 그는 모터 달린 29m짜리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뉴질랜드 구인·구직 사이트에 묘한 구인 광고가 올라왔다. 1년 이상 해외로 여행할 계획인데 요트를 운항하고 관리할 선장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는 KNC건설 직원이 올렸다. 이 때문에 허 전 회장이 자신에 대한 감시망이 좁혀지자 다른 나라로 도피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는 ‘일당 5억원 황제 노역’을 하다 3월26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광주교도소를 출소한 직후 뉴질랜드에서 이상한 일이 포착됐다. 허 전 회장 일가의 재산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아들 스콧 허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대주그룹의 자회사 KNC엔터테인먼트의 지분 46%가 정 아무개씨에게 넘어갔다. 스콧 허씨를 비롯해 허 전 회장의 친인척들은 모두 이사진에서 물러났다. 새로운 이사로 등재된 정씨는 스콧 허씨가 과거 뉴질랜드에서 유학할 때 기거했던 하숙집 주인으로 알려졌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지분을 넘긴 것이다. 검찰과 국세청이 자신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자 허 전 회장이 제3자를 통해 재산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세청은 뉴질랜드 재산을 추징하기 위해 현지로 직원 4명을 보냈다.

차명 계좌 만들어 세금포탈

허 전 회장은 벌금 254억원 가운데 노역으로 탕감받은 30억원을 제한 224억원, 국세와 지방세 등 세금 160억원 등 모두 384억원을 갚아야 한다. 그는 당장 돈이 없으니 빌려서라도 벌금과 세금을 1~2년 안에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국내에도 500억원 상당의 부동산 등을 숨겨둔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국세청·광주시 등은 그의 은닉 재산 확보에 들어갔다.

검찰은 최근 사망한 부인에게서 상속받은 30억원대의 부동산과 자녀 집에서 141점의 미술품 등을 압수했다. 사실혼 관계인 황씨가 50% 지분을 가진 전남 담양 다이너스티 골프장 등도 사실상 허 전 회장 소유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경기도 오포읍에 있는 300억원 규모 땅(6만5000㎡)의 실소유주가 허 전 회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땅에 대한 공매 절차에 들어갔다.

광주광역시에 따르면, 허 전 회장은 자신의 소유인 동구 금남로 동양상호저축은행 빌딩(3층부터 7층까지) 임대료를 매달 1000만원씩 받기로 임차인과 계약하고 수년째 차명 계좌를 통해 임대료를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광주시는 최근 동양상호저축은행 빌딩 관리 서류를 확보해 2010년부터 임대료를 받은 계좌가 허 전 회장의 것이 아니라 대주그룹 전 직원 명의로 돼 있는 것을 포착하고 해당 계좌의 5700만원을 포함해 14억원 상당을 압류했다.

허 전 회장이 차명 계좌를 활용했음이 드러남에 따라 검찰은 실정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노역으로 30억원을 탕감받은 허 전 회장이 국내외에 숨겨둔 1000억 원대 재산이 드러날 경우 법원의 ‘황제 노역’ 판결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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