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먹힐라” 독재자들 떨고 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4.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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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국가들, 푸틴의 ‘크림 접수’에 좌불안석

미국의 전략정보 분석 연구소인 ‘스트랫포’는 ‘그림자 CIA’라고 불릴 정도로 독자적인 정보 능력을 자랑한다. 이 기관의 창시자는 군사·정치 전문가인 조지 프리드먼이다.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프리드먼은 2010년 ‘예견서’를 하나 썼다. <100년 후(The next 100 years)>라는 제목을 달고 국내에 소개된 이 책에는 놀라운 사실 하나가 들어 있다. 프리드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되찾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프리드먼은 “러시아의 기본 전략은 자국 주위에 완충지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서유럽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러시아에는 중국을 막아줄 동쪽 완충지대도 필요하다. 중앙아시아가 그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드먼은 “중앙아시아는 결국 러시아 세력권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앙아시아 역시 프리드먼의 예언대로 흘러갈 것인가.

중앙아시아의 권력자들은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구소련을 구성했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5개국을 말한다.

ⓒ AP 연합
푸틴, 산유국 카자흐스탄에 관심 많아

중앙아시아의 특징 중 하나는 늙은 독재자의 존재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20년 이상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무너진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의 상황과 유사하다. 그래서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 그 자체가 중앙아시아의 독재자들을 떨게 만드는 첫 번째 요소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의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아네트 보어 연구원은 최근 ‘중앙아시아 관점에서 본 우크라이나 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보어는 “중앙아시아의 상당수 대통령들은 독재자다. 그들은 불만을 폭발시킨 민중이 중앙광장을 점거하고 국가 지도자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사태에서 진정한 공포를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협은 러시아다. 크림반도에 전광석화처럼 들어갔듯이 자기네 나라에도 밀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러시아계 주민을 품고 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는 소수민족이며 그동안 자신들이 홀대받은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정말로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진격할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는 이미 준비가 돼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대규모 러시아 군대가 존재한다.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포함해 여러 군사훈련 시설이 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남쪽 30㎞ 지점에는 칸트 러시아 공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타지키스탄에는 러시아 육군 201사단이 거점을 두고 있으며 약 7000명의 러시아군이 주둔 중이다. 국외에 있는 러시아 육군 중 최대 규모다. 보어 연구원은 “크림에 위치한 러시아 흑해함대를 둘러싼 최근 상황을 본 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지도자들은 자국 영토에 러시아 군사시설을 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확실히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은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들의 경계와 별도로 러시아는 구소련 국가에 사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할 때 충족해야 하는 조건을 완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조건을 채운 사람은 러시아 국외에서도 러시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중앙아시아 전역에 수많은 러시아인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들의 존재는 푸틴에게 천군만마다. “러시아 디아스포라(이주민)로 분류될 수 있는 잠재적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확대를 원하는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이 될 수 있다”는 게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유럽연합(EU)에 대항하기 위한 경제 블록이 자리 잡고 있다. ‘유라시아연합(EAU)’은 서방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구소련 국가들을 재조립하는 작업이다. EAU는 창설국인 러시아 외에 지금까지 두 개 국가가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이다.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스스탄은 EAU에 참가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타지키스탄 역시 연합의 일원이 되는 것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계 주민 보호 명분으로 개입할 수도

EAU에 참가하고 있는 산유국 카자흐스탄은 이 지역의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 푸틴 대통령은 3월5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을 벨라루스의 대통령과 함께 만나 우크라이나 위기가 EAU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에 관심이 많다.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 1700만명 중 400만명 정도가 러시아계로 분류되는데 우크라이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다. 카자흐스탄 북부와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길이만 6846㎞로 이 지역에 러시아계 주민들이 주로 거주한다. 그래서 러시아의 민족주의자들은 카자흐스탄을 두고 “원래 러시아 땅인데…”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푸틴이 러시아계 주민을 빌미로 카자흐스탄의 일부를 잘라내 자국 영토에 추가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적어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이를 과대망상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경계를 한층 강화했다. 3월5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면담한 후 카자흐스탄은 군비를 확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3월10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취한 행동을 “이해한다”고 평가하는 등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민간 방송국 중에는 러시아를 비판하는 곳도 있는 반면, 정부 당국은 수도인 아스타나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소규모 집회를 즉시 진압하기도 했다. 당시 시위 참가자들은 ‘어제는 압하지야와 오세티야, 오늘은 크림, 내일은 카자흐스탄 북부’라고 적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군사 개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르(황제)’ 푸틴은 중앙아시아에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러시아로 일을 하기 위해 건너오는 중앙아시아 국민들의 비자 취득을 강화하는 간단한 명령만으로도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경제는 파탄 날 것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몰락하게 된다. 이들 국가의 GNP(국민총생산)가 러시아로 간 이주 노동자의 송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지키스탄의 경우 동포들의 송금이 GNP의 절반이다.

크림반도의 사례에서 보듯 러시아의 개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보다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다. 현재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통치자는 모두 70대 중반이지만 후계자 전망에 대해서는 일절 공표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들이 물러난 후 각 국가들이 혼란기에 접어든다면 그때야말로 ‘러시아계 주민의 보호가 필요한’ 러시아가 결단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크림반도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합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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