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호구’가? 깃발만 꽂는다고 되나”
  • 김현일│대기자 ()
  • 승인 2014.04.0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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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부상으로 달궈진 여권 대구시장 후보 경선 혈전

 “지금 나온 대구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의 중량감이 고만고만해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율을 보여준 지역민에 대한 예의상 지금보다는 한 단계 뛰어난 인물이 필요하다.”

지난 2월 말 대구를 방문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방 언론사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고만고만한’ 인물론의 시작이다. 3선의 서상기 의원(북 을) 출마에 대한 바람잡이 발언이기도 했다. ‘고만고만’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조원진 의원(달서 병), 권영진·주성영·배영식 전 의원, 이재만 전 동구청장 등을 지칭한다. 모두 지지율 10% 안팎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최 대표의 중진 차출론에 예민해 있던 예비후보들은 발끈했다. ‘잔챙이’들의 각축이라는 비아냥거림을 함축한 ‘고만고만’이 불쾌감을 더했다. 여러 명이 나서다 보니 지지율이 10%대를 헤매는 건 당연하다고 항변하면서, 그래도 야당의 김부겸 후보보다는 앞서지 않느냐며 일제히 불만을 터뜨렸다. 당시 여론조사는 조원진(52%) 대 김부겸(37%), 권영진(50%) 대 김부겸(35%) 등의 수준이었다. 어쨌거나 이때 추론된 중진은 3선의 유승민 의원(동 을)이었다. 이때만 해도 서상기 의원은 본인이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누차 언명한 데다, 2006년에는 당내 경선에서 김범일 현 시장에게 패배한 적이 있고, 2010년에는 출마 선언을 했다가 중도하차한 전력이 있었다. 서 의원은 조원진 의원에게 시장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자들. 왼쪽부터 권영진·서상기·이재만·조원진 후보. ⓒ 뉴시스
서울 권영진이 대구 주성영 밀어내

그런데 당이 뚜껑을 열어 내보인 사람은 서 의원이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대구·경북(TK) 맹주 자리를 최 대표에게 뺏길까하여 유 의원이 고사했다는 설도 있으나, 어쨌든 서 의원은 3월14일 전격 출마 선언을 했다. 이후 중앙당은 1차 컷오프에서 3명을 털어냈고, 2차 컷오프 심사 때 주성영 전 의원을 탈락시키며 최종적으로 서상기·조원진·권영진·이재만 등 4명의 후보를 선발했다. 주 전 의원의 탈락은 지역에서도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대구 동구 갑에서 재선하는 등 지역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컷오프에서 승리한 권영진 전 의원은 18대 의원 때 지역구가 서울(노원 을)이었다. 그는 ‘친박’도 아니었다. 권 전 의원의 뚝심과 저력이 대단하다는 평가가 지역에서 터져 나왔다. 대구 지역 현역 의원끼리의 2파전 양상에서 권 전 의원까지 가세한 3파전 양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됐다.  

TK와 호남 지역 선거의 공통점은 통념과는 달리 본선은 싱거운 반면 예선전이 혈전이라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선만 통과하면 본선은 이른바 ‘거저먹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당 구도에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게임이 끝나는 탓이다. 각기 보수와 진보의 본향이라는 특징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1990년 전남 함평·영광 국회의원 보궐 선거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대구 출신 이수인 후보를 내세워 거뜬히 당선시켰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를 웅변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역주의 타파가 무연고자 공천의 명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주의를 더욱 고착시켰을 뿐이다. 이전까지 함평·영광 땅에 단 한 발짝도 디딘 적이 없던 이수인 후보에게 거물급이었던 상대 조기상 후보는 맥없이 무너졌다. “호남에서는 DJ 막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기본은 마찬가지다.

3월24일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 보니 중앙당은 ‘대단한’ 후보보다는 ‘만만한’ 후보 쪽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었다. 상대를 의식해 대항마를 구할 필요조차 없어서다. 유권자들 또한 처음에는 비판적이어도 결국에는 알아서 따라주니 의식할 필요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공천=당선’ 공식이 확립된 선거의 ‘부작용’이다. 이런 현실은 아예 공천 경쟁 자체가 없거나, ‘고만고만한’ 맞수 아닌 맞수들이 대거 공천 경쟁에 몰리는 정반대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중앙당이 특정인을 찍으면 경선이 무의미했기 때문이고, 그게 아닌 경우에는 도토리 키 재기 식이든 아니든 공천을 둘러싸고 박 터지는 ‘자기네들만의 리그’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얼마 전까지의 대구시장 선거 풍경은 ‘고만고만’ 쪽이었다. 그런데 야당 진영에 김부겸이라는 강력한 주자가 나타나면서 기류를 바꿔놓은 것이다. ‘박근혜 안방에서 일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다”면서도 지난 2012년 총선 때 대구 수성 갑에서 40%대의 득표를 한 김부겸 후보의 움직임이 간단치 않아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 후보의 범상치 않은 기세의 저변에는 몇 가지가 어우러져 있다. 우선은 새누리당이 대구는 항상 거저먹는 줄 안다는 유권자들의 불만과 함께 김 후보가 몸을 낮추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진지함이 일정 부분 먹혀들고 있다. 여기에 김 후보가 시장 후보군 가운데 유일하게 이 지역 명문 ‘경북고’ 출신이라는 사실도 자그마한 변수로 작용한다.

서상기 ‘작은 경북고’로 TK 정통성 읍소

그래서 새누리당 중앙당에서는 중량감 있는 후보들이 제법 치열한 경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낸 서상기 후보는 비록 경북고는 아니더라도 ‘작은 경북고’로 불리는 경북중 출신이다. 이 인연으로 경북고 동문회에 매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는 서울에서 경기고를 나왔다. 조원진 후보와 권영진 후보는 청구고 동문으로 맺어진다. 조 후보가 4년 선배다. 하지만 조 후보도 졸업은 서울 인창고에서 했다. 이재만 후보는 달성고를 졸업했다. 이렇듯 후보들의 다양한 출신 고교는 ‘경북고’라야 행세깨나 하던 지역의 풍토가 달라졌음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동시에 TK도 예전 TK가 아니라는 역설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를 상기시킨다.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박근혜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시 달성군 군수 후보로 이석원씨를 내세웠으나 무소속 김문오 후보에게 패배했다. 열세 소식을 접한 박근혜 의원이 2주여 동안 머무르며 다수의 친박계 의원들까지 동원해 총력 지원 유세를 펼쳤음에도 3%포인트 차로 졌다. ‘선거의 여왕’이, 하물며 자신의 지역구에서 패배한 사태는 민심과 동떨어진 오만이 초래할 참극을 여실히 증명해줬고, 이런 뼈아픈 경험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설마설마하면서도 조심케 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3선 중진인 서상기 후보의 등을 떠밀면서까지 대구 지역 경선 판을 키워보려고 하는 전략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미지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와는 달리 이제 대구시장 선거 본선도 예선만큼 지켜볼 소지가 커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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