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뉴스’ 펼쳐진다
  • 김위근│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
  • 승인 2014.04.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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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사운드·애니메이션·동영상 담은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뉴스’ 관심

2001년 9·11 테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니 벌써 십수 년 전 일이다. 구글링을 통해서도 찾지 못했으니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경이로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분명히 미국의 저명한 언론 매체였다. 9·11 테러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때 이 매체는 특별한 시도를 한다. 컴퓨터그래픽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으로 피해 여객기 탑승자의 시각에서 이동 경로를 보여준 것이다. 몇 번이고 재실행하면서 작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신세계를 주위 사람에게 침 튀기며 이야기했다. 조만간 우리나라 언론 웹 사이트에서 이런 기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본 것 같다.

2012년 뉴욕타임스가 ‘스노폴’ 처음 시도

최근 국내외 언론계에는 이른바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뉴스’ 바람이 불고 있다. 시작은 2012년 미국 뉴욕타임스의 인터랙티브뉴스팀이 그야말로 ‘작심’하고 만든 ‘스노폴(Snow Fall)’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는 딱 1년 전인 2013년 4월 퓰리처상 특집기사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는 선정 이유에서 멀티미디어 요소들을 능수능란하게 통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의 ‘스노폴’ 기사. ⓒ 뉴욕타임스 ‘Snowfall’ 기사 캡처
사실 전통적 저널리즘 관점에서는 기사라고 부르기 힘든 이 뉴스 콘텐츠는 텍스트·사진·그래픽·사운드·애니메이션·동영상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요소가 적절히 사용된 뉴스 웹페이지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를 시작으로 국내외 언론은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디지털 뉴스 스토리텔링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영국 가디언의 ‘파이어스톰(Firestorm)’,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더 프로피츠 오브 오크 리지(The Prophets of Oak Ridge)’, 일본 아사히신문의 ‘라스트 댄스(ラストダンス)’ 등 많은 해외 언론이 ‘스노폴 저널리즘’을 구현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을 수상한 아시아경제의 ‘그 섬, 파고다’를 비롯해 조선일보의 ‘와글와글 합창단’, 매일경제의 ‘내 이름은 당대불패’, 경향신문의 ‘그 놈 손가락’, 한겨레의 ‘수첩인사의 비극’ 등이 한국판 스노폴을 자처하며 서비스됐다. 현재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를 준비하거나 기획하고 있는 매체는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활로를 찾지 못했던 언론 매체는 모처럼 확인된 가능성에 역량을 집중할 작정으로 보인다. 저널리즘 위기 시대에 자신의 능력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잔뜩 칼을 벼리는 모양새다.

뉴스 콘텐츠가 생산되는 방식은 지금까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이미 보도된 기사를 확장한 것이다. 후속 보도의 성격이지만 심층성과 멀티미디어 활용 측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여기에는 한 이슈에 대해 보도한 기존 몇 개의 기사를 조합해 새롭게 구성한 것도 포함된다. 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저널리즘에 도입되면서 예견됐던 것이다.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에서 뉴스를 골라내고 얽어 새로운 뉴스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뉴스 콘텐츠의 ‘재활용’을 통한 가치의 재창조다. 다른 하나는 기획 단계부터 완전히 새로운 기사를 만드는 것이다. 참신하면서도 멀티미디어 활용을 극대화해 수용자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사를 발굴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투자 대비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경영진으로서는 모험일 수밖에 없다. 내일을 생각하고 투자하기엔 당장 오늘이 아쉽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적지 않은 언론사가 앞 다퉈 신설했던 멀티미디어 뉴스 전담 조직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전에도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뉴스가 있었다. 멀티미디어성, 하이퍼텍스트성, 상호 작용성을 특성으로 하는 인터넷이 저널리즘의 주요 환경이 되면서 멀티미디어가 뉴스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결합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얼핏 현재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지금은 주목을 받는 것일까.

현란함을 제외하면 멀티미디어 요소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현재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에서 활용되는 멀티미디어는 인터넷 이용자라면 늘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차이는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봐야 한다. 멀티미디어는 스토리텔링을 그저 ‘도울 뿐’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이전 멀티미디어 활용 뉴스가 사용자 인터페이스(UI)에 집중했다면 현재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는 상대적으로 사용자 경험(UX)에 더욱 천착한다.

사용자 경험은 콘텐츠와 테크놀로지가 만나는 접점이다. 콘텐츠의 구성 즉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고 호흡이 매우 길다는 점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는 이야기 형식의 뉴스 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뉴스 콘텐츠 차원에서의 혁신

사실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 매체가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이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느냐, 즉 의미 있는 수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다. 안정적인 콘텐츠 판매 비즈니스 모델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여기에 거는 기대는 작지 않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를 통한 직간접적인 수익 창출은 어려워 보인다. 방문자가 많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에서도 체류 시간과 페이지뷰가 이에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텐츠 특성상 광고를 붙이기도 쉽지 않다. 다른 뉴스 콘텐츠의 사례를 대입해보면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 자체의 유료화 전환은 분명히 시기상조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를 완성하는 데 많게는 수개월에 걸쳐 수천만 원이 드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를 계속 생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익 창출을 엿볼 수 없다면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경제의 ‘그 섬, 파고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는 인터넷 서비스 이후 오프라인에서 기획전을 실시했으며 책으로도 출간됐다. 수익 창출을 2차 생산물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시도한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와 해외 유수 언론 매체가 생산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의 품질에는 차이가 없어 보인다. 멀티미디어의 구현은 별반 다르지 않으며 기획력은 오히려 우리나라 뉴스 콘텐츠가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해외 유수 언론 매체가 주목받는 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힘, 세계적 영향력이 아닐까 싶다.

실험의 영속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뉴스 영역에서도 혁신의 성공은 수많은 실험의 실패에서 탄생한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 입장에서는 해외 유수 언론 매체의 실패보다는 성공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기울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소한 수익 창출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저널리즘 실험을 할 수 있는 해외 유수 언론 매체의 토대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 매체의 관심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계에 불고 있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의 바람은 경영적 차원이 아니라 뉴스 콘텐츠 차원에서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지면이 아니라 스크린에 최적화된 뉴스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출시함으로써 저널리즘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은 언론 매체에 대한 수용자의 관심과 애정을 다시 북돋워주고 있다. 이제 수용자들이 클릭으로써 응원과 격려를 보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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