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적자 나도 회장님은 수십억씩 챙겨갔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4.09 13: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적 부진 재벌 오너 고액 연봉 논란…동양 사태 ‘주범’ 현재현 ‘연봉 42억’

대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 등 상장사 등기 임원의 개별 보수가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으로 지난 3월31일 잇따라 공개되면서 고액 연봉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고도 거액의 연봉을 챙겨간 ‘양심 불량’ 오너와 CEO들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에서 오너 일가가 거액의 연봉을 챙겨간 기업도 있어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안기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이 구설에 올랐다. 현 회장은 지난해 총 42억3200만원의 보수를 챙겼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 회장은 (주)동양으로부터 14억4000만원, 동양네트웍스로부터 12억5000만원, 동양시멘트로부터 8억900만원, 동양증권으로부터 7억3300만원을 수령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구윤성·연합뉴스
현 회장은 각 계열사의 순손실이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데도 상여금까지 챙겨갔다. 예컨대 동양네트웍스는 지난해 166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음에도 현 회장에게 급여 4억5000만원 외에 상여금 3억원, 인센티브 5억원을 지급했다. 마찬가지로 동양시멘트 역시 지난해 255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급여 4억7600만원과 상여금 3억3300만원을 주었다. 가장 실적이 저조한 동양증권은 순손실이 3873억원에 달했지만 현 회장에게 급여 3억6000만원과 성과급 3억7300만원을 책정했다. 

현재현 회장은 지난해 4만1000여 명의 투자자에게 1조3000억원가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피해를 입힌 이른바 ‘동양 사태’의 주범으로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과 계열사 부당 지원에 따른 배임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구속 기소된 상태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역시 실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보수로 눈총을 샀다. 지난해 849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코오롱그룹은 (주)코오롱의 저조한 실적으로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12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코오롱은 지난해에도 84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지난해 코오롱·코오롱글로벌·코오롱글로텍·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인더스트리 등 5개 계열사로부터 총 47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금호석유화학 또한 적자 상태임에도 그룹 총수에겐 후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중국 등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침체로 지난해 427억원의 적자를 냈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주력 제품인 합성고무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경기에 영향을 받는 산업이라서 올해도 마찬가지로 적자 상태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업계 안팎의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지난해 급여 24억1900만원과 상여금 18억2200만원을 포함해 총 42억4100만원의 보수를 받아 대기업 총수 연봉 랭킹 상위권에 올랐다.

적자 난 KT의 이석채 전 회장 연봉 30억

지난해 84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한진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까지 떠안고 있다. 한진해운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7000억원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부채 비율 또한 2011년 389.7%, 2012년 697.2%, 2013년 1444.7%로 매년 배 가까이 오르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상반기 중 한진해운을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어서 향후 한진해운의 재무 리스크를 한진그룹이 떠안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계열사들로부터 58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KT는 이석채 전 회장에게 지난해 29억7900만원의 연봉(급여 4억7600만원, 상여 13억3900만원, 복리후생 1100만원, 퇴직금 11억5300만원)을 지급했다. 퇴직금을 제외한 금액은 18억2600만원이다. 그러나 KT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602억원이다. 이와 함께 이석채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임까지 했다. 그럼에도 고액 연봉을 챙겼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임원 급여는 실적에 따라 책정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상장사 등기 임원 연봉을 보면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장사 등기 임원 연봉이 처음으로 공개되면서 일고 있는 고액 연봉 논란의 핵심은 연봉 책정이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연봉 산정 과정에 대한 공개와 함께 공개 대상 범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연봉 공개는 지난해 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이뤄졌다.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법인은 올해부터 연봉 5억원  이상 등기 임원의 개별 보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임원 개인별 보수 공개 시행안을 발표하면서 세부적인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에 대해서는 ‘회사 자율적으로 기재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기업들은 보수 산정 기준을 ‘회사의 임원 보수 규정에 따라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실제 주요 기업이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임원의 보수 총액만 적시할 뿐 보수가 어떻게 책정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선진국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임원의 보수 산정 기준과 절차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가령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업에 임원 보상안을 구성하는 요소와 함께 각 요소에 해당하는 보상 규모는 어떤 식으로 결정했는지 등을 상세히 밝히도록 요구한다. 또 기업들은 이사회 내에 총수와 경영진의 연봉을 결정하는 독립적인 보상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고액 연봉자를 5명씩 공개하고 있다. 경실련은 4월1일 논평에서 “자본시장법의 개정 취지는 기업 임원의 연봉 공개를 통해 기업의 투명 경영과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며 “(보수 공개로 인한) 위화감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수 공개 대상과 공개 내역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직장인들에게 ‘박탈감’ 안긴 오너 연봉

대한민국의 평범한 회사원들이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이 되려면 평균 20년쯤 걸린다. 20년이 걸려 임원이 되는 것마저도 운이 ‘매우’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11년 전국 254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21.2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들이 임원이 될 확률은 고작 0.8%였다. 수십 년을 직장에 바치며 ‘별’을 다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 고액 연봉 논란은 부러움보다는 박탈감을 남겼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 아무개씨(31)는 “이번에 공개된 회장 연봉을 보고 솔직히 의욕을 잃었다. 회사 실적이 저조해 직원 연봉은 제자리걸음인데 오너들만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입사 후 이제 6년이 지났지만 언제 ‘억’ 소리 나는 연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3년 1월31일 법정구속돼 현재까지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연봉 공개 과정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받았던 이는 수감이나 재판 중에도 억대 연봉을 챙긴 회장님들이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운 재벌 총수들이 공교롭게도 보수 순위 상위권에 들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특히 오너와 샐러리맨 출신을 합쳐 지난해 연봉 1위에 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랬다. 최태원 회장은 그룹 내 4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로 재직하며 지난해 연봉 94억원과 성과급 207억원을 포함해 총 301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주)SK에서 87억원, SK이노베이션에서 110억원, SK C&C에서 80억원, SK하이닉스에서 22억원을 받았다.

최 회장은 배임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월 말 구속 수감된 상태다. 최 회장이 받은 보수를 일당 개념으로 환산해보면, 수감 생활 중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로부터 일당 8200만원가량을 받은 셈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김 회장은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후 지난 2월 대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김 회장은 지난해 그룹으로부터 총 331억원을 보수로 받았다. 그나마 김 회장은 이 가운데 급여에 해당하는 200억원가량을 반납했다. 한화그룹 측은 “구속 수감으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하기 어려웠기에 도의적 차원에서 급여는 반납했다”고 밝혔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검찰의 ‘CJ 비자금 수사’가 시작된 뒤 이 회장은 2013년 7월1일 구속 수감됐다. 이어 8월20일 이 회장은 신장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고, 치료를 받으며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반년 가까이 이른바 ‘병상경영’을 하면서 CJ·CJ제일제당·CJ오쇼핑·CJ CGV 등 계열사 4곳으로부터 모두 47억5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병상에서 이 회장에게 지급된 일당은 1300만원에 이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