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맡겨두면 ‘황제 연봉’ 계속된다
  • 윤진수 | 한국기업지배구조원 CRS지원파트장 ()
  • 승인 2014.04.09 13: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등기 임원 보수 공개 대상자 확대하고 보수 산정 기준 구체화해야

기업 지배구조 분야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지배주주나 경영진으로부터 부당하게 유용되는 사적 이익을 최소화하고 투자자 이익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불합리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이 비용은 투자자에게 전가된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왔고 경영진 보상의 적절한 설정은 그 방법 중 하나다.

경영진에 대한 보수 체계가 합리적으로 설계되고 이에 따라 공정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경영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대리인 비용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임원 보수에 대한 주주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수 한도액 승인만 하게 돼 있어 실질적인 통제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임원 보수의 공개를 요구해왔다. 2013년 4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 보수 총액이 5억원을 넘는 등기 임원을 대상으로 개인별 보수 내역과 그 구체적 산정 기준 및 방법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도록 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지배주주 및 경영진에 대한 주주의 통제와 견제가 일정 부분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의 비정상적인 고액 보수 지급 관행이 개선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됐다.

2월14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보상 수준 합리적인지 의문

그러나 재계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노사 갈등 심화, 비상장 법인 임원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임원 보수 공개에 반발했다. 그렇다고 보수 공개를 주장한 학계나 시민단체도 반갑지만은 않다. 정부가 제시한 세부 시행안에서 공시 대상자를 등기 임원으로 한정해 총수를 비롯한 지배주주들이 등기 임원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전환할 경우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공시 의무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구체적인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기업 자율로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보수 내역과 성과 지표의 공개가 이뤄지기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실제 올 3월 말부터 보수 공개가 이뤄지면서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보수 산정 기준 및 절차의 공시를 기업 자율에 맡김으로써 구체적인 보수 체계는 공개되지 않고 대다수 기업이 보수 총액과 구성 내역만을 공시해 해당 임원의 보상 수준이 합리적인지, 기업 성과와 연계되고 있는지를 주주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경영진 보수에 대한 주주의 감시 및 견제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보수 공개 대상자 범위 확대, 보수 산정 기준 및 절차의 구체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보수 공개 대상자 범위에 처음에는 금액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으나 국회 정무위원회 검토를 거치면서 보수 총액이 5억원 이상인 등기 임원으로 범위가 제한됐다. 미국은 최고경영자, 최고재무담당이사, 연봉 10만 달러 초과자 중 상위 3인의 보수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이사회 전원의 보수 내역을 공개하게 하고 있다. 일본은 1억 엔 이상 보수를 받는 임원으로 공시 대상을 정하고 있다. 금융 당국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5억원이라는 기준을 정한 것은 제도 도입 초기의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기준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다수 기업이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와 함께 등기 임원으로 한정하다 보니 지배주주나 오너 일가들이 미등기 임원으로 있으면서 등기 임원보다 높은 보수를 받는 경우에도 내역을 파악할 길이 없게 됐다.

개별 임원 보수 공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체 이사회 구성원뿐 아니라 미등기 임원을 포함해 보수 상위 임원(가령 상위 3인)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제도 시행 첫해라는 점에서 안정적 정착을 위해 현행 5억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미등기 임원 중 연봉 상위 임원에 대한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주의 경우 공시 대상 범위에 해당 기업집단의 집행 임원 중 연봉 상위 5인을 포함시키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미등기 임원이면서 기업집단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내 사정을 감안한다면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집단은 호주처럼 전체 임원 중 연봉 상위 임원을 별도로 공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오너의 과도한 사익 추구 견제해야 

보수 공개 대상 범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시 내용의 구체화다.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세부 시행 방안에는 세법상 근로소득·퇴직소득·기타소득으로 구분해 기재하도록 하면서 세부적인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은 회사 자율에 맡겼다. 이는 기업마다 보수 산정 방식이 다양해 일률적인 공시 기준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회사가 금융위원회에서 제시한 ‘임원 개인별 보수 공개 세부 시행 방안’의 ‘사업보고서 내 개별 임원 보수 기재 항목’에 따라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고 있어 내용이 단편적이고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상장 기업들에 임원 보수를 공시하도록 규정하면서 보상 정책을 주주에게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기본급과 성과급을 비롯해 다양한 보수 내역을 공시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보수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라는 별도 항목을 둬 보수에 대한 경영진의 기본 방향과 전망 등을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도 회사법과 상장 규정에서 임원 보수와 함께 보상 철학, 보상 프로그램 및 계획, 보수 결정에 영향을 준 비교 집단에 관한 정보까지 공시하도록 했다. 이러한 선진국 사례를 기반으로 우리 정부도 기업들이 보수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시할 수 있도록 공시 기준을 구체화하고, 보수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기업 자율에 맡기기보다는 일정 부분 강제할 필요가 있다.

임원 보수 공시와 관련해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한 사항으로 전체 이사의 보수 한도 총액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하는 관행이 있다. 상법에서 이사의 보수를 정관에서 정하지 않는 경우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정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대다수 기업이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구별하지 않은 채 보수 총액을 상정하고 있다. 이 경우 임원 보수 산정 방식이나 절차가 구체적으로 공개된다 해도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임원 보수 한도에서부터 주주의 견제와 통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안건에 전년도 임원 개인별 보수 지급 내역을 공개하고 이 정보를 기초로 임원 개인별 보수 총액이 상정될 수 있도록 관련 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개별 임원 보수의 적절성을 판단해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기업에서도 구체적인 보수 산정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보수 지급 관행이 이뤄질 것이다.

모든 제도나 정책이 도입 초기부터 완전할 수 없으며 긍정적인 효과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제도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임원 보수 공시도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작용보다 기업 지배구조의 건전성 확립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큰 제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선진국의 제도 개선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국내 실정을 고려해 제도를 개선한다면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과도한 사익 추구를 견제할 수 있어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 확립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