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섞지 않는다’ 불문율 깨다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4.04.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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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방선거에서 극우 국민전선 약진…무시 못할 정치세력으로 부상

3월30일 프랑스 전역이 푸른색으로 뒤덮였다. 푸른색은 우파 대중운동연합의 상징색이다. 좌파의 상징인 붉은색은 잠잠했다. 집권 여당인 사회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탓이다. 전국적으로 20만여 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프랑스 지방선거는 우파의 승리로 요약된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쪽은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이다. 1차 선거에서 국민전선은 전체 후보의 절반을 2차 결선까지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 기세를 몰아 최초로 파리 근교인 망트 라 빌을 비롯해 전국 12곳에서 시장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프랑스 정치판에서 극우 정당은 항상 존재했으나, 정치 파트너로는 인식되지 않았다. 프랑스 정계의 오래된 불문율 중 하나가 “극우와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극우와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국민전선의 창당 멤버이자 초대 총재인 장 마리 르펜(86)의 상식을 뛰어넘는 반(反)인권적인 언행 때문이었고, 국민전선의 정책 자체가 인종차별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30일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총재가 지방선거 결선투표 출구조사가 발표된 직후 카메라에 둘러싸여 있다. ⓒ EPA 연합
프랑스 정치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 풍자 인형극에서조차 르펜 전 총재는 ‘불독’으로 묘사되며 사람의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로 등장했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도 마찬가지다. 극좌인 아를렛 라기이예와는 말을 섞어도 극우인 장 마리 르펜과는 대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관행에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게 2002년 대선이다. 르펜이 대선 결선에 진출하면서 국민전선은 엄연한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민전선은 남아 있는 유일한 정치실험”

장 마리 르펜은 1972년 만들어진 국민전선 총재로 임명된다. 당시 의원으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은 덕분이다. 1974년 첫 대선에 도전했을 때의 지지율은 고작 0.73%였다. 그 후 10년간의 침체기를 거친 뒤 1983년 역사적인 첫 선거 승리를 거둔다. 비록 드루 지역에서 실시된 작은 면의원 선거였지만 이 승리는 국민전선의 상승세에 가속도를 붙였다. 5년 후에 실시된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14.4%의 지지율을 획득하며 3위에 올랐다.

2002년 대선 결선 진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 보궐 선거나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의 돌풍이 예상된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그게 현실이 됐다. 이 돌풍은 프랑스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극우 정당의 성장과도 궤를 같이했다. 경제 위기에서 시작된 실업률 상승, 여기에 이민자 증가와 테러 등 치안 문제로 연결되는 민감한 사안들이 극우 정당의 슬로건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장 마리 르펜에 이어 2011년부터 국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그의 막내딸 마린 르펜(46) 국민전선 총재는 지방선거 직후 “이제 이분법적인 양당 정치 세력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고 천명했다. 이번 선거를 두고 “야당인 우파 대중운동연합의 승리이지 극우의 승리가 아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극우 정당의 역사적인 성공’이라는 르몽드의 표현처럼, 국민전선이 지금 그들만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극우 정당의 성장에 대해 프랑스 내 전문가들은 “이민 문제와 치안 불안, 실업률 증가 등과 같은 문제들이 극우 정당의 담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제들이며 극우 정당 지지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이라고 분석한다.

장 벵상 올랭드르 파리2대학 교수는 “이런 문제들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이민자 문제”라고 지적했다. 극우 세력에 표를 던지는 지지자들이 이런 문제에 가장 민감한 지역 주민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염증이다. 유럽의 극우 정당에 관해 연구하는 파스칼 페리뇨 파리국제정치학교 교수는 “극우의 성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의 한 표현”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정치판의 썩어빠진 풍토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이 극우로 돌아서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학자인 미셀 위에비오르카도 이런 지적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국민전선은 이제 프랑스인들이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유일한 정치실험으로 보인다.”

기존 정치에 대한 염증 정서는 장 마리 르펜 초대 총재 시절부터 줄기차게 등장했던 국민전선의 슬로건에서 출발한다. 장 마리 르펜은 기존 정치 세력을 ‘기관들’이라고 표현하며 싸잡아 비판해왔다. 지금은 그의 딸인 마린 르펜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마린 르펜은 프랑스 우파 정당 대중운동연합의 이니셜인 UMP와 좌파 사회당의 PS를 묶어 ‘UMPS’라고 부르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자신들을 제3 세력으로 차별화시키는 전략이다. ‘UMPS’와 같은 간결한 구호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전선의 선거 전략은 양대 정당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프랑스 남부 베지에에서의 선거 결과는 어찌 보면 가장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국경 없는 기자회’ 회장인 로베르 메나르는 이곳의 시장으로 당선됐는데 국민전선의 지지를 업은 승리였다. 비정부기구인 ‘국경 없는 기자회’의 창설 멤버이자 회장까지 지낸 진보적 언론인이 극우 정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시장에 당선된 셈이다. ‘르 피가로’는 “메나르는 마린 르펜의 정치 전략을 대변하는 ‘마리니즘’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베지에의 CFDT(프랑스 노동자민주동맹) 한 간부는 “극우가 온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이전 시장의 연줄 행정에 모두 신물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이 극우 정당 지지로 연결된 사건이 베지에에서 일어난 것이다. 로베르 메나르는 당선 직후 “의원직 급여를 30% 삭감할 것이며 경찰 인력을 24시간 7일 무휴 체제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물론 메나르 당선자의 이런 선택이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메나르 당선자와 국경 없는 기자회 시절부터 친분을 유지하던 사회당의 장 미셀 뒤 플라는 “국민전선 명찰을 달았던 일이 나중에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전선은 이제 명백한 대중 정당이 됐다. 1세대인 장 마리 르펜은 원고도 없이 쏟아내는 즉흥 연설로 1980년대 이후를 풍미했지만, 마린 르펜은 아버지가 남긴 극단적인 이미지를 지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선거에서 국민전선은 동성애 문제나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진보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진보적 입장을 약속했다.

금발 미녀 손녀가 젊은 층에 어필

국민전선이 대중적으로 성공할수록 르펜가(家)는 새로운 정치 명문가로 굳건해지는 모습이다. 2011년 아버지에게서 딸로 전해진 당권은 지금 3대째로 향하고 있다. 마린 르펜의 조카이자 장 마리 르펜의 손녀인 마리옹 마레샬 르펜(24)은 훤칠한 키에 모델을 연상케 하는 금발 미인으로 국민전선의 젊은 세대 성장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실제로 극우 정당에서 성공한 이들 중 젊은 세대가 적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 후보로 출마해 프레쥐스에서 승리한 다비드 라슐린 당선자는 26세에 불과하다. 파리 근교에서 당선된 시릴 노트는 32세다. 극우 정당의 젊은 시장들이 연이어 대중의 선택을 받으며 등장한 것이다. 극우 정당과 젊은 정당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등식을 르펜가는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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