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폭력의 방식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4.04.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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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중독이라는 것이 있다. 술, 마약, 도박, 게임이 그렇다. 이른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을 발의한 한 국회의원에 의해 규정된 것인데, 게임이 술과 마약, 도박과 함께 역사적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중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중독의 뜻풀이 중 하나다.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남녀 교제가 금지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4대 중독에 게임 대신 연애가 들어 있었던 셈이겠다. 예방적 차원에서 연애의 온상이 될 만한 빵집 출입 금지 같은 암묵적 교칙도 생겨났다. 적절치 못한 시간에 적절치 못한 이유로 빵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셧다운’이다.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위해하게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거나, 게임에 관련된 모든 책임을 게임업계와 그 소비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사실 필자 역시 오래전 필자 세대에서는 꽤 유명했던 ‘페르시아 왕자’라는 게임에 ‘중독’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필자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피 흘리면서 죽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채팅창이 뜨는 온라인 게임을 시도했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뜸 모진 욕설을 듣고 밤새도록, 아니 그 후 며칠 동안이나 기분이 나빴던 적도 있다. 지금은 사탕을 깨거나 마을을 꾸미는 정도로 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실은 이것도 중독이라 하루 온종일 사탕만 깨고 있을 때도 있다. 전에는 녹여 먹던 사탕을 지금은 입안에 넣자마자 깨먹게 되는 것도 후유증 중 하나라면 하나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상기해보면, 자극이 있는 모든 것에는 중독이 있기 마련이고 그 중독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포옹 호르몬이라는 깜찍한 별명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출산을 할 때나 남녀가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지만 반면 코카인을 복용했을 때도 분비된다.

우리의 어린 자녀가 첫사랑에 빠졌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통금 시간을 정하는 것일 리는 없다. 통금 시간을 정해놓고는 회초리 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은 더욱 아닐 터이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가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고, 사회가 할 일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장소와 모임과 카운슬링과 교육, 그 모든 것들은 결과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맞춰져야만 한다. 이것은 규제의 문제가 아니다. 실효성도 없고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하는 규제라면 더욱 그렇다.

위헌 소송까지 불러일으킨 게임 셧다운제(청소년에게 심야 시간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는 일명 신데렐라법으로도 불린다. 밤 12시에 셧다운이 되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서는 마법이 풀리는 동시에 뜨거운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부모님의 주민번호가 도용되고, 불필요한 분노가 야기되고, 무시를 당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게임 속에서 피 흘리는 캐릭터만이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규제 또한 그렇다. 셧다운이라는 제도로 청소년들이 배울 폭력의 방식이 필자로서는 폭력적인 게임보다 더 걱정스럽고 두렵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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