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타깃은 비자금과 정·관계 로비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4.16 11: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찰, 강덕수 전 회장 배임·횡령 혐의 구속영장…4조짜리 STX다롄 중국 넘어갈 판

STX그룹을 출범시킨 지 10년 만에 재계 13위권에 올려놓았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로 불린다. 하지만 ‘강덕수 신화’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검찰이 4월8일 수천억 원대의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강 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대기업 오너 출신 수감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3100억원대 배임, 540억원대 횡령, 2조3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강 전 회장을 비롯한 STX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변 아무개씨, 전 경영기획실장 이 아무개씨, STX조선해양 전 CFO 김 아무개씨 등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강 전 회장 등 STX그룹 핵심 경영진을 사법처리한 것은 2월17일 그룹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간 지 50일 만이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4월4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검찰 발표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회사 부실을 감춘 뒤 STX중공업의 법인 자금으로 STX건설의 300억원대 기업어음을 사들이게 하고, STX건설(700억원)과 STX다롄조선(1400억원)에 2100억원의 지급보증을 서게 하는 등 모두 31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전 회장은 회사 공금 540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그룹 계열사를 헐값에 매각하고 계열사 내부거래를 통해 납품 단가를 과다 계상하는 식으로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고 보고 있다. STX그룹 전 CFO인 변씨와 전 경영기획실장 이씨는 강 전 회장의 횡령·배임 과정에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STX조선해양·STX건설 등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조3000억원을 분식회계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주도한 전 STX조선해양 CFO 김씨에 대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제조 원가를 허위로 낮추는 수법으로 5년 동안 2조3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의 분식회계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강 전 회장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그에 대한 구속영장에 분식회계 혐의를 넣지 않았다. 검찰은 앞으로 보강 수사를 더 해 기소할 때 강 전 회장에게도 분식회계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강덕수 전 회장은 STX다롄의 계열사(대승정공·대승물류)를 통해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STX다롄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 장부.
비자금 규모와 용처 드러나지 않아

강 전 회장은 중국의 STX다롄조선을 통해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도 받고 있다. 이는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확보한 STX다롄과 계열사의 거래장부 문건을 통해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났다(2014년 2월21일자 “강덕수, STX다롄에서 비자금 수천억 빼돌렸다” 기사 참조). 본지는 강 전 회장이 중국 다롄에 있는 일부 계열사(대승정공·대승물류)에 일감을 몰아주고 납품 단가를 부풀려 거래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최소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STX다롄조선 계열사인 대승정공과 대승물류 관계자들이 검찰 수사 라인에 올랐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규모와 용처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STX그룹이 와해 상태인 데다 그룹의 핵심 관계자들이 이미 회사를 떠나 수사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의혹은 무성하지만 수사를 해보면 소문으로 그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STX 내부 비리를)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4월4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강 전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강 전 회장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4월14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여부가 확정되면 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뿐만 아니라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STX 에너지·중공업 총괄 회장을 지낸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장관(현 LG상사 부회장)을 주목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이 전 장관이 STX그룹이 어려워진 시기에 영입돼 그의 ‘역할’을 두고 지속적으로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미 한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던 이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의 정·관계 인맥은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단순한 편이다. 강 전 회장은 해외 활동이 많은 편이라 자신은 로비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강 전 회장이 워낙 ‘큰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1월10일 중국 다롄 시 장흥도에 위치한 STX다롄 조선소가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창구로 의심되는 STX다롄조선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STX다롄의 국내 채권단이 최근 중국 다롄 시정부에 STX다롄조선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STX다롄조선은 STX그룹이 지난 2007년 약 3조원을 투자해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시 528만9256㎡(160만평) 부지에 만든 초대형 조선소다. STX다롄건설·STX다롄엔진 등 13개 계열사와 40여 개 협력업체의 투자 규모까지 더하면 STX다롄조선에 투입된 금액은 4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지난해 4월부터 조업이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조업 중단 사태를 맞게 된 STX다롄조선은 명목상으로는 2013년 초 STX다롄집단 총괄 대표로 부임한 이강식 STX다롄 조선해양부문 총괄부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모회사였던 STX조선해양이 2013년 4월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경영 주도권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이 부회장은 올 초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다롄 현지 소식통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강식  부회장은 (STX다롄) 대표직을 맡으면서 산은 채권단으로부터 STX의 이름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자신이 있는 한 법정관리 신청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께 이 부회장의 사표가 수리되면서 산은 채권단을 주축으로 한 태스크포스(TF) 팀이 꾸려졌다. 이 팀은 STX그룹 소속 직원과 산업은행 관계자로 구성돼 있다”며 “TF 팀이 3월 중순쯤 중국 다롄 시정부에 (STX다롄) 청산을 위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산은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법정관리 신청서가 접수된 후 법원에서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두 달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 관련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이유다. 만약 중국 법원에서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STX다롄조선은 관련 업체들의 피해 규모가 워낙 커 회생이 아닌 공개 매각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국내에서 4조원씩이나 들여 만든 조선소가 헐값에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공산이 크다. 중국 다롄 현지 소식통은 “중국에서 공정하게 공개 입찰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정관리 신청에 의해 (STX다롄조선이) 공개 매각된다 해도 엄청난 헐값에 넘어가게 될 것”이라며 “아마 지금부터 (중국) 업체들이 작업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눈독을 들여왔던 중국의 다롄조선이 가장 먼저 움직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STX다롄조선 ‘생사’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산업은행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4월10일 기자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STX다롄조선의 청산과 관련해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법정관리 신청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현지 관계자들은 “산업은행이 STX다롄조선을 버렸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나서지 않고 TF 팀을 통해 법정관리 신청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STX다롄 협력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미 한국에서는 STX다롄을 버렸다. STX다롄조선 협력업체들이 줄도산을 겪으며 피해 규모가 1000억원대를 넘어섰지만 피해 보상을 기대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