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회군, ‘친노’에 역습 길 열어주다
  • 엄민우 기자 · 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4.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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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 오전 10시에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발표 순서 1번은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의 안철수 공동대표였다. 그가 직접 요청했다. 기초연금 문제와 관련해 강하게 얘기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 첫 번째로 발표할 수 있도록 의원들이 배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이날 발표자로 나서지 못했다. 상임위에 참석 자체를 안 한 것이다. 상임위가 열린 그 시간에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새정치연합 당원 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결과는 무공천 철회였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첫 번째 발표 순서를 요청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음에도 상임위에 불참한 것을 놓고 ‘안 대표가 (조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전했다.

‘53.44% 대 46.56%’.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그러나 안철수 공동대표가 받은 충격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기초선거 무공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후폭풍이 새정치연합 전체를 큰 혼돈에 빠뜨렸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야권 통합의 명분이었다. ‘안철수의 새 정치’를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유일한 의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원과 국민들의 주문은 안철수가 생각하는 새 정치를 ‘보류하라’는 것이었다.

4월10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회의실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공천 폐지 관련 투표 결과를 보고받은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 뉴시스
결국 야권 통합으로 당내 헤게모니를 틀어쥔 것으로 보이던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는 다시 한 번 ‘친노’(親노무현)로 대표되는 구주류와 향후 당권을 놓고 겨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도부는 당내 모든 계파 수장이 참여하는 ‘2+5 무지개’ 공동선대위를 꾸리는 등 전열을 가다듬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안 대표가 뜬구름에서 내려와 진흙탕에 발을 딛는 용기 있는 도전을 하게 됐다”는 평도 나온다. 그러나 이 도전은 향후 새정치연합의 험난한 내전(內戰)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오는 5월에 있을 원내대표 경선이 첫 격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론’이 불거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내전의 초점은 2016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될 ‘차기 당권’에 맞춰져 있다.

첫 번째 대결장, 5월 원내대표 경선

5월에 치러질 예정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경선은 통합 창당 이후 당내 계파별 구도를 살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될 전망이다. 일단 안철수 공동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게 된 현 상황에서 친노 및 강경파가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노로 구분되는 노영민 의원과 강경파인 박영선 의원이 유리한 상황인데, 특히 지금 분위기로는 친노와 강경파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 의원의 세가 강하다는 게 새정치연합 내부 복수 관계자들의 얘기다.

박영선 의원은 18대 대선 때 문재인 대선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지냈다. 지난해 초에는 범주류 초·재선 의원들로부터 비대위원장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대여 강경노선을 견지해 당내 강경파로부터 선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당내에서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지도부를 대신해 전면에 나섰다”는 평을 듣는다. 박 의원은 이번 기초선거 무공천과 관련해서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똑같다”며 지도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친노와 융합하면서 강경한 이미지의 박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게 된다면 현 지도부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박 의원에 대한 견제도 만만찮다. 당내 일각에서는 하반기 국회에서 최초로 여성 국회부의장을 노리는 이미경 의원의 행보와 결부시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당 국회부의장과 원내대표가 모두 여성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 측은 “억지일 뿐”이라며 신경 안 쓴다는 입장이다. 김한길 대표의 지역구(구로 을)를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점을 들며 김 대표와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노영민 의원을 지지한다는 새정치연합의 한 ‘비노’(非노무현) 측 인사는 “박 의원은 적극적으로 의원들을 만나며 뛰고 있는데 (노영민 의원은) 상대적으로 좀 덜 움직이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원내 세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안 대표로서는 지금 당장 전면에 자기 사람을 내세우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친안’(親안철수) 진영에서는 현 지도부와 각을 덜 세우고 갈 수 있는 인물을 밀어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원내대표 경선에 참가하고 있는 인물 중에서는 김한길 대표와 가까운 이종걸 의원이 꼽힌다. 그러나 박영선·노영민 의원에 비해 당내 세력이 약해 사무총장을 지낸 박기춘 의원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5월 원내대표 경선 구도는 안 대표에게 또 다른 견제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부터 안 대표를 도와왔던 한 측근 인사는 “당권과 연결되는 현재의 원내대표 선거 구도를 봐선 개혁적인 새 인물이 보이지 않는데 참 갑갑하다”며 기존 민주당 강경파 및 친노 인사들이 득세하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4월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공동대표가 연설을 마치고 문재인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두 번째 대결장, 7월 재보선

7월30일 치러질 재보선은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130석의 새정치연합에서 안 대표의 지분이라고 해봐야 송호창 의원과 함께 단 2석에 불과하다. 어떻게든 원내에서 세력을 확장해야만 한다. 이번 7월 재보선은 최소한 두 자릿수 규모의 ‘미니 총선’이 될 전망이다. 통합 전인 지난 2월 기자와 만났던 안 대표 측 핵심 인사는 “지방선거보다 7월 재보선에 더 신경 쓰고 있다. 안철수 바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한 명이라도 더 원내에 우리 쪽 사람을 넣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7월 재보선을 노리는 쪽은 안 대표만이 아니다. 친노 역시 7월 재보선을 부활을 위한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가 끝나면 당장 7월 재보선 공천권을 놓고 안 대표와 친노 세력이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두 세력 간의 물밑 신경전은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김한길-안철수 밀약설’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안 대표가 김한길 대표를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대신 7월 재보선에서 안 대표 측에 5 대 5의 공천권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친노 측에서는 “안 대표 측이 ‘점령군’처럼 행세하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며,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워 영양가 높은 지역구를 꿰차겠다고 벼르고 있다.

영양가 높은 지역구란 여야의 정치적 텃밭인 영호남을 제외한 서울·경기·인천·충청 지역을 말한다. 특히 수도권 지역은 안 대표와 친노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벌써부터 안 대표 진영 금태섭 대변인의 서울 서대문 을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인천에서는 인천대 총장을 지낸 박호군 전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호남 지역도 안 대표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안 대표 측 관계자는 “수도권만큼 호남도 중요하다. 7월 재보선에서 호남 쪽 의원을 배출하지 못하면 호남 지역 전체가 돌아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배기운 새정치연합 의원을 대신해 전남 나주·화순 지역에서는 정기남 전 신당추진단 정무기획분과위원과 신정훈 전 나주시장의 출마가 예상되고 있다. 이낙연 의원이 전남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혐의로 2심까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역구 전남 순천·곡성 역시 이번 7월 재보선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호남 공략 첨병으로는 광주 출신의 장하성 정책네트워크내일 소장이나 전북에 기반을 둔 홍석빈 전 공보위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알짜배기 지역구에 이른바 ‘친안’ 인물이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6·4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지방선거의 승패를 떠나 안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얼마나 증명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서울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지방선거의 전체 승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이다. 수도권 기초선거에서 안 대표의 영향력이 증명된다면 누구도 안 대표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 번째 대결장, 내년 3월 전대 혹은 조기 전대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결론이 나온 후 안철수 공동대표가 무언가 공개적으로 의사 표명을 하려는 것을 당 지도부가 말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정말 ‘끝장’이다. 끝까지 선거를 치러 이겨야 한다. 정치는 이기면 다 용서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비노’ 인사는 기초선거 공천을 유지하는 것으로 당론이 정해진 4월10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 대표에게 책임을 물음과 동시에 지방선거 승리라는 무거운 숙제를 주문하는,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 인사의 말대로 만약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승리할 경우 안 대표와 지도부를 아우르는 ‘친안’으로서는 다시 한 번 도약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복수의 새정치연합 내부 관계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은 대체적으로 서울시장을 비롯한 수도권 기초단체장 자리를 얼마나 지킬 수 있느냐를 승리의 기준으로 꼽았다. 만약 수도권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충남북·강원 등 다른 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도 한두 곳을 이긴다면 지도부의 지도력을 ‘공증’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친안’에서는 7월 재보선 공천권과 관련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이후 재보선에서 ‘안철수의 인물’로 꼽히는 이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면 2016년 총선도 주도권을 쥐고 치를 수 있다. 안 대표는 늘 조직의 부재가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때문에 안 대표에게 적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야권 일각에선 “기초선거 무공천에 목을 매는 것은 지역 조직을 새로 짜기 위함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즉 지방선거 대승은 안 대표에게는 지역 기반을 탄탄히 하고 대권으로 뻗어나가는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자연스레 안 대표를 비롯한 ‘친안’ 쪽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들어갔지만 언제 선거 패배 책임을 선대위원장에게 물은 적이 있었나. 결국 선거에 대한 책임은 안철수 대표가 질 수밖에 없고 문 의원과 ‘친노’가 다시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당장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은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문 의원 등 ‘친노’ 인사도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지방선거로 안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묻지는 못할 것이다. 안 대표가 들고나온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상품을 못 내놓게 한 것이 사실상 문 의원을 비롯한 ‘친노’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수의 새정치연합 관계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지더라도 안 대표가 당대표 자리는 지킬 수 있겠지만, 7월 재보선 공천권 등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크게 밀려 결국 당권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게 될 경우 손학규·정세균·정동영 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등 이른바 ‘잠룡’들이 문재인 의원을 필두로 한 ‘친노’ 그룹과 함께 차기 당권을 놓고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손 고문 같은 경우 7월 재보선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야당의 선거 패배 결과가 나오면 소장파 등 여러 제3의 세력이 꿈틀댈 것이다. ‘친노’ 측에선 문재인 의원을 추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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