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형제의 난’ 박찬구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4.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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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동생 상대 아시아나항공 주식 처분 소송… 동생은 형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금호가(家)에 또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 한동안 잠잠하던 ‘형제의 난’이 재점화하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둘러싼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형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4월1일 동생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처분하라는 내용의 주식 매각 이행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2010년 2월 채권단과 맺은 합의서에 따라 우리 쪽은 석유화학 지분을 이미 다 처분했는데 그쪽은 아직도 항공 지분을 팔지 않고 있다”며 “계열 분리를 원한다면서 지분을 안 파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호석유화학도 이날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냈다. 3월27일 아시아나항공 정기 주주총회(주총)에서 신임 이사로 선임된 박삼구 회장을 직접 겨냥했다. 당시 주총 결의에 대한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니 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박삼구 회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는 것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을 대표이사로 앉히기 위해 주총에서 비정상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꼼수를 부렸다”며 “그동안 입힌 손실이 얼마인데 지금 와서 책임경영에 나서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최준필
같은 날 제기된 두 소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양측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동안 상호 주식을 매각하기로 한 합의 사항을 지키라며 금호석유화학을 압박해왔다. 박삼구 회장 가계의 경우 2011년 11월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전부 매각했다. 이에 대해 금호석유화학 측은 “합의서 내용은 주식 매각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것이지 강제 조항이 아니다”며 “말을 바꾼 게 아니라 회사 경영이 정상화하는 등 상황이 바뀐 것이다”고 맞서고 있다.

“법대로 해보자” 끊이지 않는 소송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는 금호석유화학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이유가 박삼구 회장의 경영 방침에 사사건건 반대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주총을 문제 삼아 소송전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2대주주(12.61%)인 금호석유화학은 주총 전부터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30.08%)인 금호산업이 보유한 주식의 경우 의결권이 없다며 공세를 펼쳤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금호산업의 기업어음 790억원어치를 주식으로 전환해 13.08%의 지분을 갖게 됐다. 현행법상 상호출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하면 양사는 의결권이 제한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금호산업 주식 중 일부를 처분해 지분율을 13.08%에서 7.86%로 낮췄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호석유화학 측은 주식 매각 방식이 편법으로 이뤄져 의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총수익 맞교환(TRS) 거래인데 ‘진성 매각’(True sale)이 아니라 ‘파킹 거래’(Parking Deal)로 의심받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이미 법률적인 검토를 다 마친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이 주총을 문제 삼아 제기한 소송의 경우 오는 4월23일 첫 공판이 예정돼 있다. 양측 모두 “법대로 해보자”는 입장이어서 향후 지루한 법정 공방이 펼쳐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1월1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박찬구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을 때만 해도 ‘화해 모드’가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박 회장이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당초 박찬구 회장 측은 검찰 수사의 배후로 형인 박삼구 회장을 의심했는데, 무죄 판결이 난 것을 계기로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박찬구 회장의 측근이자 운전기사인 김 아무개씨가 2월3일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것이다. 박삼구 회장 집무실이 있는 본사 27층에 근무하는 보안요원 오 아무개씨를 시켜 내부 문서를 빼돌린 혐의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오씨가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박 회장의 개인 일정 등이 담긴 문서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모습이 담긴 CCTV까지 공개했다. 내부적으로는 박찬구 회장을 배후로 의심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형제간의 신뢰가 사실상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다른 재벌 부러움 샀던 4형제의 ‘화합 경영’

금호가 형제의 갈등이 이처럼 골이 깊게 파일 줄은 10년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은 2세 경영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택시 두 대로 사업을 시작해 호남 제1의 재벌에 오르기까지 여러 차례 고비를 맞았다. 박 회장을 ‘먼지 재벌’이라 불렀던 것도 당시 운수업이 얼마나 힘든 사업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그의 곁에는 늘 든든한 아들들이 있었다. 1984년 타계하기 전 경영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노후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일찍부터 2세를 키웠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금호가 형제들의 ‘화합 경영’은 다른 재벌들의 부러움을 샀다. 5형제 중 막내인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제외한 4형제가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개인 사업을 하지 않고 그룹 경영에만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분도 똑같이 나눠 가졌다.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때도 이 비율을 지켜나갔다. 이들이 역할을 분담해 그룹을 꾸려나가자 ‘4형제 재벌’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 발짝 더 나가 4형제가 똑같이 아들 하나씩을 두고 있어 다음 세대에는 ‘4촌 4형제’ 경영 체제로 그룹이 운영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20년 넘게 약속은 지켜졌다. 가장 먼저 부친의 유지를 받든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은 65세가 되던 해인 1996년 총수 자리를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넘겼다. 창업 50주년을 맞은 때였다. 미국 예일 대학 경제학 박사로 청와대 비서관과 서강대 교수를 지낸 형 박성용 회장이 학자풍 경영인인 데 반해, 연세대 법학과 졸업과 동시에 삼양타이어(금호타이어 전신)에 입사해 경영에 참여한 동생 박정구 회장은 철저한 사업가형 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넜다”

박정구 회장도 2002년 폐암으로 타계하면서 삼남인 박삼구 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공교롭게도 이때 박정구 회장의 나이도 65세였다. 금호가 대권은 65세가 되면 동생에게 물려주는 게 일종의 룰이 된 셈이다. 박삼구 회장도 둘째 형과 마찬가지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그룹 경영에 뛰어들었다. 5형제 가운데 가장 활달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는 부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룹 내부는 물론 대외 활동도 활발했다.

그런데 2009년 들어 형제 경영의 관행이 깨졌다. 사남인 박찬구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을 차례였지만 형제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그룹이 사실상 두 개로 쪼개진 것이다. 당시 박삼구 회장의 나이는 64세였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박찬구 회장은 수치에 밝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그런 박 회장은 형의 불도저식 경영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가 대표적이었다. 이로 인해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지자 행동에 돌입했다. ‘박삼구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명분도 확보한 것으로 여긴 듯하다. 박찬구 회장은 자신이 보유 중이던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대우건설이 매각되면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될 상황이었다. 이를 눈치 챈 박삼구 회장도 추격 매수에 나서면서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박삼구 회장은 초강수를 던졌다. 2009년 7월28일 전격적으로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개최해 박찬구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한 것이다.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때부터 두 형제는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듬해인 2010년 3월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에 복귀하고 같은 해 11월 박삼구 회장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돌아왔지만 금호가가 자랑하던 ‘화합 경영’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박찬구 회장과 금호석유화학이 2011년 내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박찬구 회장 측에서는 박삼구 회장 측이 검찰을 움직였을 것으로 의심했다.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기 직전인 2011년 3월 금호석유화학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그룹에서 제외해달라고 신청한 바 있다. 박찬구 회장은 최근 1심 선고가 난 직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악연과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3년간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1970년대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며 그룹의 덩치를 키웠던 금호는 석유파동이 있던 1980년대 접어들어 그룹 경영에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그 위기에서 벗어나 재벌로서 탄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데는 형제들의 우애를 바탕으로 한 ‘4륜(輪) 경영’의 덕이 컸다. 한때 2세 경영의 모델로 여겨졌던 금호가의 옛 명성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하나의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는 위태롭기만 하다.

 

아시아나항공이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에어버스 A380 항공기를 도입하는 것을 두고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측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측이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7년까지 총 6대의 A380 항공기를 운항할 계획이다. 우선 올해 5월 1호기를 인수해 6월 중순부터 일본 나리타 노선에 취항한다. 2호기도 올해 내에 인수할 예정이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2월10일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레이아웃이나 내장재에 대한 고객의 눈높이가 굉장히 높아졌는데 경쟁사(대한항공)는 이미 A380을 8대 보유하고 있어 그 부분이 핸디캡이었다”며 “A380 도입이 아시아나항공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2011년부터 A380을 투입해 현재는 8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의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 측은 “아시아나항공의 규모로 봤을 때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항공기를 200대 정도 가진 항공사라야 A380을 운영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를 80대 정도 보유한 규모라는 것이다. 박찬구 회장 측은 “증권사에서 분석한 리포트를 보면 대한항공에서도 무리하게 A380을 도입해 부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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