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시장 ‘북적’, 매매는 ‘썰렁’
  • 박일한│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14.04.1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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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시장 탈동조화 가속…6월 이후 안정될 듯

지난 4월10일 서울 강동구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청약 접수 첫날. 1097가구 모집에 1238명이 청약해 평균 1.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516가구를 모집한 전용면적 85㎡형에만 1009명이 몰렸다. 이 아파트 인근 ‘고덕 아이파크’가 2009년 분양을 시작해 최근까지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아 ‘할인 분양’을 하는 등 고전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엄청난 성공으로 평가됐다. 

같은 날 서울 강남구 ‘역삼자이’도 청약 접수 결과 86가구 모집에 155명이 몰려 평균 1.8 대 1로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중대형 아파트 단지인 데다 평균 분양가가 3.3㎡당 3150만원으로 다소 비쌌지만 모처럼 순위 내에 청약을 마감했다. 

ⓒ SH공사 제공
그런데 이날 한국감정원은 4월7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 수도권이 -0.02% 변동률을 기록하며, 32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상승세를 보이던 수도권 아파트 값은 정부의 임대주택 과세 방침이 전해진 이후 오름 폭이 둔화됐고, 최근 2주 동안 보합세(0%)를 보이다 결국 하락했다는 것이다. 앞서 민간 부동산정보 업체인 부동산114도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이 이미 3월 말부터 하락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매매 시장만 놓고 보면 주택 시장 침체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매매 시장과 주택 시장이 따로 놀고 있다. 매매 시장은 지난 2월26일 임대주택 과세 계획이 담긴 ‘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빠르게 식어가는데 분양 시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청약 단지마다 사람들이 대거 몰리고 경쟁률은 주택 시장 활황기 때나 나타났던 수준으로 높이 치솟는다.

실수요자 중심 경매 시장으로도 몰려

지난 4월3일 동탄2신도시 ‘신안 인스빌리베라 2차’ 청약 접수에선 1순위에서만 577가구 모집에 2159명이 몰렸다. 평균 3.74 대 1의 경쟁률로 전 주택형 청약을 마쳤다. 같은 날 경북 칠곡에서 청약 접수를 한 ‘효성 해링턴플레이스 3차’에서는 784가구 모집에 2648명이나 청약해 역시 3.3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가 금융결제원 자료를 활용해 순위 내 청약(1~3순위) 경쟁률을 조사한 결과 2월 전국 평균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5.56 대 1이었고, 3월에는 6.34 대 1로 더 높아졌다. 권일 닥터아파트 부동산팀장은 “올 1~3월 청약통장을 사용한 1순위 청약자는 총 10만775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배 많다”며 “분양 시장이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존 매매 시장은 딴판이다. 중개업소에 걸려오는 문의전화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서울 대치동 ㅎ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임대주택 과세 방침을 발표한 이후 3월 초부터 갑작스럽게 매수세가 식었다”고 말했다.

양천구 신정동 ㅁ공인 관계자는 “주택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관망세가 대세가 됐다”며 “국회에서 임대주택 과세 방침이 최종 논의되는 6월까지 회복되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중개업자들을 대상으로 시장 전망에 대한 의견을 물어 작성하는 ‘KB 부동산 전망지수’는 3월 111로 전달(113.7)보다 2.7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는 최근 3개월 동안 상승세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매매 시장과 분양 시장은 함께 움직인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있으면 분양도 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매매와 분양이 따로 노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 상황에 의해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전셋값 상승에 지친 실수요자들이 기존 매매 시장보다 분양 시장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곽창석 ERA코리아 부동산연구소장은 “분양은 당장 목돈이 필요하지 않고 일단 청약을 하고 금융권을 활용한 자금 마련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자금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이 매매 시장보다 선호한다”고 말했다.

6월 국회까지 매매 시장 회복 어려울 듯

최근 몇 달간 매매 시장에서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가 급상승한 것도 실수요자들이 기존 매매 시장 접근을 꺼리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취득세 감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의 영향으로 다주택자들이 급매물을 대거 사들이면서 호가가 많이 올랐다”며 “지금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이 적극적으로 거래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2월 말 정부가 임대수익에 대한 과세 방침을 확정하자 투자 수요가 빠르게 관망세로 돌아섰고, 실수요자들은 급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매매 시장이 식었다는 것이다. 대신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를 내세우는 수도권 유망 단지들이 하나 둘 분양을 시작하자 실수요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는 설명이다.

분양 시장의 활기는 박근혜정부가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대거 줄인 데 따른 반사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수요자 대다수는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기 위해 최근 4~5년간 청약통장을 아껴왔다. 그런데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줄어들어 청약할 대상이 마땅치 않자 저렴한 수도권 중소형 아파트로 몰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경매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분양 시장에 사람이 붐비는 것과 같은 이유다.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더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85.78%를 기록했다. 2010년 2월(85.18%) 이후 처음 85%를 돌파한 것. 일반적으로 낙찰가율이 80% 이상이면 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으로 본다. 

이런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에서는 인기 있고 선호도가 높은 상품이나 시장에만 사람들이 쏠리는 ‘디커플링’ ‘개별화’ 현상이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며 “분위기나 주변 흐름에 따라 투자나 내 집 마련을 결정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실수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매매 시장과 분양 시장, 경매 시장은 일시적으로 제각각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국회에서 임대주택 과세 방침을 확정하는 6월까지는 시장이 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그 이후 조금씩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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