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장쩌민에 칼 겨누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4.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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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의 전쟁’ 나선 시진핑…후진타오와 손잡았다는 설도

‘앉아서 죽을 것인가, 일어나 항거할 것인가.’

요즘 중국 베이징(北京) 정가는 잔뜩 얼어붙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휘두르는 사정 칼날이 예상을 뛰어넘는 거물급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시 주석이 잡으려는 큰 호랑이의 정체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였다. 저우 전 서기의 성장 배경인 ‘석유(石油)방’과 ‘쓰촨(四川)방’은 초토화됐다. 공안 부서에서도 저우 전 서기의 측근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4월 초에는 아들 저우빈(周濱)과 며느리, 셋째 동생 저우위안칭(周元靑) 부부마저 체포된 사실이 친척들을 통해 확인됐다. 저우 전 서기 부부도 감금되어 조사 중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3월29일 독일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시진핑의 반부패 칼날은 최근 전 정권 인사들을 향하고 있다. ⓒ AP 연합
리펑·궈보슝·허궈창, 위기 몰린 장쩌민 측근

친척들의 전언에 따르면, 저우 전 서기와 그 가족은 부패 혐의를 부정하며 새 최고 지도부가 전 정권 인사들을 상대로 정치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사정의 칼날이 리펑(李鵬) 전 총리 일가, 궈보슝(郭伯雄)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허궈창(賀國强)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가족으로 옮겨가자 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 전조는 3월24일에 나타났다. 중국 최대의 수력발전 댐인 싼샤(三峽) 댐을 관리하는 창장싼샤(長江三峽)그룹의 차오광징(曹廣晶) 회장과 천페이(陳飛) 사장이 전격 해임됐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중반 싼샤 댐 건설을 기획하던 단계부터 일해온 싼샤 댐의 산증인이며 싼샤 댐 건설을 주도했던 리펑 전 총리의 측근들이기도 하다. 리 전 총리의 딸인 리샤오린(李小琳) 중국전력국제발전공사 회장은 이 소식을 접하고 홍콩 출장 중 급히 귀국했다. 리 전 총리 부부와 사안을 논의하며 긴장 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리 회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얼다이’(고위 관리의 자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40대 중반에 국영 전력회사 회장직에 올라 ‘전력의 여왕’으로 불려왔다.

지난 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리 회장이 2005년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2000년 스위스 취리히보험이 중국 보험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브로커 역할을 하며 수백억 원대의 뇌물을 챙겼는데, 그중 일부로 유령회사를 세웠다는 정보까지 떠돌았다. 기업 자산을 빼돌려 중국 최고의 휴양지인 하이난(海南)에 부동산을 대규모로 사들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부패 척결 대상으로 새롭게 떠오른 궈보슝 전 부주석은 전혀 뜻밖의 인물이다. 그는 3조원대의 군 비리로 기소된 구쥔산(谷俊山) 전 총후근부(總後勤部) 부부장에게 300만 위안(약 5억1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받은 뇌물을 딸에게 주어 사업체를 차리게 한 뒤, 각종 물품을 군에 납품해 연간 3000만 위안(약 5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혐의다. 궈보슝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집권 시절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올랐지만, 철저하게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사람이다. 란저우(蘭州) 군구 사령관이던 궈보슝을 1999년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끌어올리고 2002년 부주석으로 임명한 이가 바로 장 전 주석이었다.

올 초부터 사법처리설이 떠도는 허궈창 전 서기는 더욱 극적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둘째 부인 허쯔전(賀子珍)의 조카로 태자당(太子黨) 출신이다. 석유화학 부서에서 20년간 일했고, 장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후원을 받아 성장한 범(汎)상하이방이다. 무엇보다 깨끗한 이미지로 명성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허 전 서기의 두 아들 허진타오(賀錦濤)와 허진레이(賀錦雷)가 뇌물 수수 및 부패 혐의로 기율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다. 2월에는 허진타오가 중국 정부가 출자한 홍콩 화룬(華潤)그룹 쑹린(宋林) 회장의 인사에 적극 개입해 거액의 뇌물을 챙겼고, 대형 이권 사업에 관여해 수백억 원을 챙겼다는 구체적인 사실도 보도됐다.

이처럼 최고위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이 현실화되자, 물러났던 ‘상왕(上王)’들의 반격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장쩌민 전 주석과 리펑 전 총리가 있다. 3월31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장 전 주석이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장 전 주석은 “반부패 캠페인으로 너무 많은 공산당 고위층 가족이나 심복들을 처리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4월3일 BBC는 “사정 한파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1.5% 하락하고 135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도 보고서를 통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공공 사업이 지연되고 명품 시장, 고급 식당 등 소비가 얼어붙어 경제활동이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중화권 매체 ‘보쉰(博迅)’은 “리 전 총리 측이 ‘경제 위기론’을 흘려 시 주석에 대한 반격에 나선 것”으로 분석했다.

권력투쟁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시 주석이 노리는 것은 최고 지도자로서의 권력 강화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숙청 리스트에 오른 호랑이들이 장 전 주석 계열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최측근 링지화(令計劃)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실각 위기에 몰린 점을 들어 후 전 주석과도 알력이 생긴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링 부주석은 아들 링구(令谷)가 페라리를 과속으로 몰다 목숨을 잃은 추문으로 코너에 몰린 상태다. 후 전 주석은 장 전 주석과 달리 2012년 10월 당 총서기직과 군사위 주석직을 모두 시 주석에게 물려줬다. 중국 내 관측통들은 시 주석이 이끌고 있는 반부패 드라이브는 후 전 주석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 속에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의해 일가족 부패 문제가 보도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에 대한 조사가 없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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