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현수의 죽음, 비극은 계속된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4.1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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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양 실태 민낯 드러나…미국인 양아버지, 거물급 변호사 내세워 혐의 부인

“미국은 해외 입양을 사적인 기관이나 영리 기관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입양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비영리 기관들마저도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을 위해 입양아를 찾는 과정에서 영리 기관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입양 자체에 그들 조직의 존립을 기대고 있기 때문에 입양아를 위한 최고의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입양 가족을 위한 아이들을 찾는 것에 몰두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입양아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있다.”

작가이자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TRACK)’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42)는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단호했다. 그 스스로가 1972년 미국 미네소타 주의 한 시골 마을에 입양됐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입양인들의 인권을 대변 중이다. 제인 정은 미국 입양이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 이 과정에서 입양아들의 인권이 완전히 무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정부가 해야 할 입양아 관리 외부에 맡겨”

미국 입양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은 잊을 만하면 반복된다. 지난 2월12일 미국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검찰은 브라이언 패트릭 오캘러헌(36)을 1급 살인과 아동학대죄로 기소했다. 한국에서 입양한 세 살배기 현수를 무참하게 폭행해 사망하게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한국 담당자로 오랫동안 일한 적이 있는 오캘러헌은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부검 결과 현수는 두개골 골절 및 내부 출혈이 일어나 타살 정황이 뚜렷했지만 오캘러헌은 “현수가 목욕탕에서 넘어져 생긴 것”이라며 “그 다음 날 갑자기 코피를 흘리고 구토하는 것을 발견해 병원으로 데려간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최고급 변호사를 고용해 현수가 입양 전에 뇌수막염을 앓았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제인 정은 “만약 오캘러헌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입양아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병을 앓고 있었다면 사전에 현수를 병원에서 치료해야 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캘러헌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에 입양된 한국 어린이가 살해된 사건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 2007년에는 13개월 된 정희민이 입양모인 레베카 캐리의 손에 살해당했다. 당시 캐리는 살인죄 판결을 받았지만 플리바게닝(유죄 인정 협상)으로 중범죄 혐의를 벗었고, 13개월 된 영아를 살해한 죗값으로 단 3년의 수감생활만 하고 석방됐다. 2008년에는 미국에서 한국 어린이를 4명이나 입양했던 남성인 스티븐 세플이 입양아 모두를 야구방망이로 구타해 숨지게 한 후 아내마저 살해하고 자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한 가정의 비극적인 결말로만 다루어졌을 뿐 입양아들의 인권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입양아들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은 비단 한국계 입양 아동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으로 향하는 전 세계 입양아들이 똑같은 위험에 놓여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입양 아동들의 실상을 다룬 로이터통신의 기사는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 거주하는 한 커플은 말레이시아에서 입양한 아동을 키우기 어려워지자 온라인에 광고를 냈다. 아이는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온 일리노이 주의 또 다른 커플에게 넘겨졌다. 생면부지인 커플 사이에 어린 입양아가 인수인계되는 과정은 간단했다. 관련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만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상품’처럼 주고받는 대상 된 입양아들

이런 미국 입양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제인 정은 “미국에선 입양아들의 등록이나 관리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관련 기관에 외주를 주고 있다. 주마다 법도 달라 입양아들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원래 미담에 관심이 많은 법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꿈을 이룬 일부 입양아 출신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성공한 인생이 조명을 받을수록 어두운 현실은 외면받기 마련이다.

로이터통신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이런 형태의 재입양(re-homing) 알선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재입양된 아이들 가운데 이전 양부모에게서 성적 학대 및 인권 유린을 당한 사례를 폭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국에서 입양된 한 소녀는 다른 가정에 재입양된 후 “이전 양부모들이 자신의 무덤을 만들겠다며 직접 땅을 파게 했다”고 폭로했다. 러시아에서 입양된 13세 소녀는 두 번이나 성폭행을 당하면서 6개월 동안 세 차례 재입양됐다. 입양 아동들이 온라인 광고를 통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애완견처럼 인도되거나 팔려가는 현실은 미국 입양의 또 다른 민낯인 셈이다. 문제는 미국에만 있지 않다. 한국에서 버려지는 3000여 명의 아이들은 입양을 주선하는 아동 위탁 기관에서 출생 등록을 하다 보니 신분이 세탁된다. 부모가 버젓이 있지만 위탁 기관의 장이 고아로 간주할 권리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입양 아동의 인권침해는 미국에서 계속된다. 특히 현지 입양 에이전시의 자료에만 의존하는 미국 등 해외 입양은 현수처럼 비극을 발생시킬 여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입양을 보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더욱 철저한 사후관리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좀 더 치밀한 관계 당국의 해외 입양 대책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현수의 죽음은 국외 입양 과정에서 아동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입양특례법을 개정한 지 1년 반 만에, 한국 정부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서명한 지 9개월 만에 일어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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