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격성, 춤으로 풀어내다
  • 김진령 기자 · 심정민 무용평론가 (jy@sisapress.com)
  • 승인 2014.04.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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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현대무용과 접목한 <유도> <활쏘기> 공연

일반 관객에게 최근의 현대무용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같은 고전 발레나 <오네긴> <카르멘> 같은 현대 발레는 이해할 수 있는 데 비해, 현대무용은 도대체 뭘 말하려는지 아리송하다. 하지만 약간의 사전 지식만 가지면 현대무용이 얼마나 자유롭고 개성 있는 춤인지 알 수 있다. 현대무용은 일정한 틀을 갖춘 기교와 표현에서 벗어나 무용가의 상상력과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매력적인 춤이다. 다만 무용가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보니 일관적 범주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최근의 현대무용을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라고 한다. 컨템포러리 댄스는 말 그대로 ‘동시대의 춤’이다. 무용의 경계와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컨템포러리 댄스는 워낙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범주화하기 쉽지 않지만 실험과 혁신을 위한 일종의 공식이라고 한다면 ‘개별적인 관조로 이루어낸 해체와 재구성’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현대무용에다 다른 움직임 영역을 융해하기도 하며 무용·음악·연극·영상 같은 다른 분야를 복합하기도 한다. 각각은 새로운 것이 없는 요소지만 이것을 해체해서 재구성해놓은 결과물은 충분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스포츠 유도와 현대무용이 결합된 의 안무가 박순호가 4월9일 연습실에서 무용수들과 연습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해체와 재구성으로 탄생한 컨템포러리 댄스

안무가이자 현대무용가인 박순호(브레시트 무용단)가 올 상반기와 하반기에 선보일 <유도>와 <활쏘기>는 현대무용의 영역 안으로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마셜 아트(Martial Art)로 불리는 동양 무술은 특유의 공격성을 룰로 제어하면서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왔고, 박순호는 유도의 공격성에 주목해 무용 언어로 재구성했다. 일반 관객에게는 낯익은 유도 동작의 다이내믹한 변주가 현대무용을 어렵다고만 여기는 대중에게 호기심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컨템포러리 댄스에서 움직임은 기존의 기교와 표현 방법을 해체하고 다양한 영역의 신체 활동을 흡수해 새롭게 재구성해놓은 결과물이다.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독특한 움직임을 만들어낸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10년 내한한 요 스트롬그렘은 <축구예찬>에서 축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과 몸싸움, 규칙을 춤으로 승화시켰다. 지난해 우리 무대를 찾은 시디 라르비 세르카위와 데미안 잘렛은 <바벨(Babel)>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합체 로봇을 연상케 하는 증강된 신체 움직임을 보여준 바 있다. 오는 5월 말에 내한하는 필립 드쿠플레는 현대무용에 서커스를 접목하는 작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동양 무술도 컨템포러리 댄스에서 훌륭한 움직임 재료로 꼽힌다. 박순호가 오는 4월18~19일 LIG아트홀(강남)과 5월3일 LIG아트홀(부산)에서 선보이는 <유도>의 전신은 2008년 발표한 <패턴과 변수>다. <패턴과 변수>는 현대무용에 여러 유도 동작을 끌어들여 탄력 있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창출해 특히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박순호는 기존의 20분짜리 작품을 50분으로 확장하면서 여성 무용수를 빼고 남성 무용수 다섯 명만 출연하는, 더욱 과감하고 다이내믹한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 시사저널 박은숙
<유도>는 단순히 현대무용에 유도를 섞은 것만이 아니다. ‘접촉 즉흥’이라고 하여 둘 이상의 무용가가 서로 신체의 일부를 접촉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원리는 박순호 춤의 근간을 이룬다. 이렇게 무용가가 맞닥뜨리면서 인간의 공격성과 스포츠의 엄격한 규칙을 그려낸다는 전개에다 도취나 무아지경을 이끌어내는 몰입 놀이란 뜻의 일링크스(ilinx) 개념까지 도입해 나름으로 복잡하고 중첩적인 구성을 시도한다.

박순호는 “작품은 내가 추구하는 대로 만들지만 관객이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몇 년 전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합해서 무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선 현대무용에서 몸이라는 언어를 통해 스포츠를 어떻게 해석해냈는지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말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합한 무용’은 이미 그의 작품 목록에 있다.

2008년작 <패턴과 변수>, 2010년작 <긴장과 이완-조자룡 활쏘는 대목>, 2011년작 <조화와 불균형> 등에서 판소리·유도·바둑·활쏘기·사물놀이 등 다양한 요소를 현대무용 안으로 끌어들였다. 판소리를 끌어들인 <조화와 불균형>에서 판소리 내용을 춤에 반영한 곳은 딱 한 대목이고 나머지는 음향적이고 박자적인 요소로 판소리를 활용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외국에서 더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우루과이 공연 이후 현지 언론에 ‘박순호의 춤은 동서양 문화 요소를 섞어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리뷰가 실리기도 했다. <조화와 불균형>의 해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아트 프로듀서 김신아씨(전 시댄스 사무국장)는 “<조화와 불균형>에선 판소리와 현대무용의 밸런스가 기가 막히다. 이를 외국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지난해 브라질·우루과이·인도 공연도 그쪽에서 먼저 제의가 와서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인기 비결로 “자기 색깔이 명확하다는 점, 그쪽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을 보여주면서 안무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점, 한국 타악의 힘과 스피드한 춤의 매력적인 결합”을 꼽았다.

ⓒ 시사저널 박은숙
다양한 장르 구성 요소 끌어들여 춤으로 재탄생

결과적으로 보면 판소리나 활쏘기 등 전통적인 요소를 쓴다는 점에서 그가 전통 문화의 옹호자처럼 보이지만 그가 이를 현대무용 안으로 끌어들인 출발점은 다른 데 있다. 박순호는 “네덜란드의 유럽무용개발센터에서 공부할 때 유럽 친구들이 우리말의 음성 요소와 억양을 재미있어 했다. 그래서 이런 억양을 활용해보자고 생각한 게 판소리를 이용한 <조화와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해놓고 보니 가족들이 내 작품을 처음으로 좋아하더라. 이런 게 대중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도>에선 스포츠의 공격성을 풀어냈다. “흔히 스포츠 안에 사람과 드라마가 있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하는데, 그런 포장된 이야기 대신 격투 종목 관람을 통해 인간이 공격적인 성향을 충족시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작품에선 무용수의 피지컬한 에너지가 전면에 드러난다. 유도 요소를 담다 보면 무용수가 쓰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한다. 전방 낙법이나 후방 낙법은 무용 동작에 없던 것이니까. 무용수가 굉장히 힘들다.”

현대무용이 어렵다고 여기는 이에게 유도와 록클라이밍이라는 재미 요소를 두루 끌어들인 <유도>가 관객을 얼마만큼 현대무용으로 ‘유도’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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