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최민식 “할리우드야 놀자”
  • 하재근│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4.04.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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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5> <루시> 출연…배두나 <주피터 어센딩>, 비 <더 프린스> 캐스팅

이병헌이 <터미네이터5>에 출연한다. 정확히 어떤 배역인지는 현재 비밀이지만 핵심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터미네이터5>는 시리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장차 지구를 구원하게 될 존 코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을 없애려는 사이보그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병헌이 백인인 존 코너의 아버지 역할로 나올 리는 없기 때문에 사이보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병헌은 그동안 <지아이조> 시리즈, <레드2> 등에 출연해왔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캐스팅됨으로써 국제적 인지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최민식은 <레옹> <제5원소> 등으로 유명한 뤽 베송의 신작 <루시>에 출연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어벤져스>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세계적인 스타 스칼렛 요한슨, 미국의 연기파 배우 모건 프리먼 등과 함께 작업한다. 비는 할리우드 복귀작인 <더 프린스> 촬영을 마쳤고, 배두나도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남매의 신작 <주피터 어센딩>에 참여했다. 그 밖에도 전도연·하지원·하정우 등 한국 배우들이 잇따라 할리우드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 제공
왜 할리우드는 갑자기 한국 배우에게 주목하는 것일까. 탄탄한 영어 실력과 연기력, 배우로서의 성실함 등이 일차적인 원인이겠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배우는 다른 나라에도 많을 것이다. 특히 최민식이 참여한 <루시>는 배경이 타이완이어서 중화권 배우를 섭외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런데도 굳이 한국인 배우를 선택한 것은 한국이 그만큼 주목받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 스타는 아시아의 비틀스”

이병헌이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한 후 관계자들과 함께 일본에 갔을 때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이병헌의 엄청난 인기에 할리우드 관계자는 “여기선 이병헌이 비틀스다”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류 스타의 영향력을 실감한 것이다. 그 후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은 더욱 탄탄해져갔다. 최근엔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이민호·김수현 등이 중국 공항에서 연일 마비 사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돼가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마케팅을 위해 아시아 배우 캐스팅을 고려할 때 한국 배우가 1순위로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쪽에서 한국 시장이 점점 거대해지는 것도 한국 배우를 선택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박찬욱·봉준호 감독 등의 활약으로 한국이 예술적으로 인정받은 것도 한국 배우의 아우라를 형성했다.

한국 배우를 캐스팅할 뿐만 아니라 제작팀이 직접 한국으로 오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할리우드는 한국을 철저히 무시해 블록버스터의 배경은 주로 뉴욕·런던·파리 등이었고 아시아에선 도쿄·베이징·상하이·홍콩 정도였다. 한국은 아예 안 나오거나 잠깐 나와도 미개발의 신비한 곳 혹은 북한과 대치 중인 위험한 곳 정도로 비쳤다. 그런데 <어벤져스2> 제작진이 내한해 서울의 첨단 도시 이미지를 담는다고 해서 화제다. 건국 이래 최초의 사건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 성장, IT 코리아로 상징되는 기술 발전, 한류에 의한 문화 중심국 이미지, 한국 영화 시장의 성장 등이 <어벤져스2> 제작진을 한국으로 불렀을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악의 무리’와 히어로가 오는 데 대한민국이 건국하고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태국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는 한국에서 찍어 자국에서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얼마 전엔 미국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인 <베첼러>가 한국에서 촬영됐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최근 한국을 촬영지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 내에서 매 시즌 400만~500만명 정도의 시청자가 보며 세계적으로 180여 개국에서 방영되는 <도전! 슈퍼모델> 팀도 얼마 전 내한했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뉴욕·파리·로마·상하이 등 ‘주목받는 도시(it city)’에서 특별 촬영을 해왔는데 이번엔 한국을 선택해 5회 분량을 찍었다고 한다. 진행자인 타이라 뱅크스는 “최근 주위에 K팝을 듣고, 한국 음식을 먹고, 서울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호기심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울에 왔다. 이젠 전 세계의 소년·소녀들이 우리 방송을 본다. 이들을 매혹할 도시를 찾아야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서울이었다”고 했다.

아시아 넘버원이 바로 월드 넘버원

영상뿐 아니라 팝 시장에서도 한국을 주목한다. 21세기의 마돈나라고 불리는 레이디 가가는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던 K팝 공연장을 찾았고 그 공연 모습이 뉴욕타임스를 장식했다. 한국 걸그룹 크레용팝이 레이디 가가 투어 오프닝 무대에 설 예정이기도 하다. 올해 그래미상에서 가장 주목받은 가수 퍼렐 윌리엄스는 지드래곤에게 먼저 SNS 팔로잉을 하며 ‘한국 예술은 대단하고 앞서 나간다. 이제는 콜라보레이션(공동 작업)을 할 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스틴 비버는 SNS에 ‘사랑해요 한국’이라고 올리며 하회탈과 한글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

놀라운 것은 크레용팝의 레이디 가가 투어 오프닝 무대가 국내에서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세계적인 팝스타 투어에 한국 가수가 참여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화제였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레이디 가가 측에서 투어 전체를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크레용팝 측에서 국내 활동 스케줄 때문에 일부만 함께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투애니원의 새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61위에 올랐고, 미국의 유명 온라인 사이트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세계의 걸그룹 11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큰 화제는 되지 않았다. 지드래곤이 빌보드의 2013년 연간 차트 월드앨범 아티스트 9위에 오른 것도 조용히 넘어갔다. 이제 그 정도는 덤덤히 넘길 정도가 된 것이다.

이상의 사례를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대폭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국내 문화 시장의 성장, 박찬욱 등 스타 감독의 활약, K팝 스타의 분투, 아시아 한류의 폭발 등이 한국을 ‘핫’한 나라로 만들었다. 당분간 서구권에서의 주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이 새삼 한국을 주목하는 지금이 우리에겐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막상 지켜봤더니 별것 없더라’는 반응이 나오면 주목은 곧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 창조적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만이 문화적 국격 상승이란 추세를 이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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