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악당이 흉악해져 돌아왔다”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4.1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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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서 <바다와 해적> 펴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고위 공무원이 책을 냈다고 하면 선거용이겠거니 여긴다.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읽어볼 것도 없다며 내팽개치는 식이다. 그런데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현장 경험을 살린 역작을 냈다면 어쩔 것인가. 학계 인사가 아닌 공무원이 낸 연구서를 대할 때 선입견이나 이중적인 태도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다와 해적>이라는 인문 교양서를 펴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49)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책을 낸 의도가 순수(?)하지 않거나 내용이 ‘해적판’ 같을 경우 그의 책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내린다는 것은, 해적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책을 펼쳐 보면서 깡그리 달아났다. 전문가의 역작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평가도 후했다. 고위 공무원이 펴낸 책이라 내용이 딱딱하거나 읽기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비집고 들 틈이 없어 보였다.

김 청장은 지난해 3월 1만 해양경찰의 수장이 된 소감으로 “창설 60주년을 맞는 해양경찰은 해양 주권의 수호자로서 해양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바다를 만드는 데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그의 일성이 빈말이 아님은 10년 넘게 해적을 연구해 그 결과물을 엮어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바다와 해적>을 준비하던 2005년 박사 학위를 따면서 국내 ‘해적박사 1호’라는 별명을 이미 얻었다. ‘해적박사’로서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은 해양경찰로서 현장을 더 깊고 넓게 살피는 계기가 됐고, 그를 해양경찰의 수장 자리에 오르게 하는 쾌속선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시사저널 임준선
대한민국 해적박사 1호

4월7일 오후 인천 송도의 해양경찰청으로 김 청장을 찾아갔다. 그는 이날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감시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국내 선박이든 중국 선박이든 불법 조업으로 해양을 파괴하고 해양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해적질과 다름없을 것이다. 김 청장은 “국제법상 해적이 아니라 해도 위험성에서는 해적이나 다름없어 긴장을 풀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 만큼 해적에 맞서는 자세와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적의 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한 책을 내면서도 당대의 문제로서 해적 문제에 대해 천착한 것은 이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해적으로 인한 피해가 우리나라 경제와 안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기에 좌시할 수 없었다. “해적 문제는 ‘21세기의 재앙’으로 국제사회의 최대 공적이다.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대형 선박은 전 세계 바다 곳곳에서 해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바다와 해적>은 역사 순으로 구성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현대 해적의 활동상이 등장한다. 김 청장은 최근 벌어진 해적 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사례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미국 요트 퀘스트호 사건을 꼽는다. 2011년 2월22일 미 해군 특수부대가 퀘스트호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인질로 잡힌 미국인 4명이 모두 살해됐다.

“역사 속에서 낭만적인 이미지로 비치기도 한 해적이 ‘현대 해적’이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현대 해적은 대항해 시대 해적의 낭만과 환상은 사라지고 해양 질서를 파괴하는 바다의 악당으로서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부활했다. 그것도 현대의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무기를 활용해 더욱 지능화되고 흉악해져 돌아왔다.”

해적에 맞서 선원을 무장시키거나 사설 보안요원을 승선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군함을 파견하는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한다. 김 청장은 오늘날 해적 문제는 여러 가지 국제사회적 요인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고 봤다. 그래서 단편적인 해법이나 군사적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다원적이고 전체적인 접근 방식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적이 발호하는 연안국과 인근 지역 국가의 단호한 퇴치 의지 및 실행력”이라며 각국이 공조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적 문제는 자연재해, 금융 위기, 전염병과 같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국경을 초월하는 문제이기에 국제사회와 지역 국가, 연안국 정부, 해운업계가 긴밀한 공조 체제를 확립해 대응해야 해결할 수 있다. 로마 시대 카이사르가 로마 남쪽 시칠리 섬의 근거지를 공격해 해적을 근절했듯이 먼저 은신처이며 해적의 충원·훈련·보급·생활의 근거지가 되는 육상 기지에 대한 소탕작전이 필요하다.”

“바다 소홀히 한 나라, 식민의 고통 치러”

해양경찰청장실 한쪽 벽면에는 한반도의 남쪽을 위로 올려 바다로 뻗어나가는 기상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다. 해양 강국을 만들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신념이 읽혔다. 그는 “바다에 과감히 진출한 나라는 성공했지만, 그러지 않은 아시아 나라는 식민을 겪었다. 중국과 조선에서 왜구를 두려워해 해금 정책을 시행한 것이 근세 아시아가 서양 세력에 뒤처지고 결국 식민의 역사를 겪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김 청장은 국민 모두가 바다에 대해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해양경찰인의 책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 사명감이 수년 동안 출근 전 새벽 혹은 여가 시간을 반납해가며 집필 활동에 몰두하게 해준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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