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아이들 뒤 ‘어른들 싸움’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04.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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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근절 카페 ‘하늘소풍’과 피해 아동 친부모 간 갈등

지난해 10월 일어난 일명 ‘서현이 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계모가 소풍을 가고 싶다는 여덟 살 된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했던 사건이다. 4월11일 열린 1심 판결에서 가해자인 계모 박 아무개씨(40)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검찰이 여론에 힘을 얻어 기소했던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가 적용된 결과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항소장을 제출했다. 아이의 배를 때려 사망케 한 ‘칠곡 계모 사건’, 골프채로 아이를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건희 사건’ 등 아동학대와 관련된 재판이 열릴 때마다 피켓 시위와 함께 낮은 형량에 대한 거센 항의가 잇따른다. 친부모와 지인들뿐 아니라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단체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인터넷 카페 모임 ‘하늘소풍’이다.

많은 사람이 아동학대 가해자의 행동에 울분을 토한다.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서명운동도 지역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현이 사건’ 이후 국민들이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진 결과다. 그런데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이면에서 어른들의 갈등과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소풍’ 카페 회원들과 피해 아동 친부모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현이 사건’ 공판이 열린 4월11일 ‘하늘소풍’ 회원들이 계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늘소풍’ 카페가 내 아이 이용해 이득 취해”

지난 3월4~5일, 국회에서 열린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사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쪽의 갈등은 극명하게 표출됐다. 학대 피해 아동 친부모들이 국회와 아동보호 전문 기관 등에 공문을 발송해 “아이들의 사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사진전을 공동 주관한 ‘하늘소풍’ 카페 회원들은 반발했다. “사진전을 처음 열려고 한 취지가 서현이·성민이·건희 사건 때문이었는데, 서명운동 때는 사진 사용을 허락한 친부모들이 갑자기 이제 와서 사진 사용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게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전화가 전시회를 주최한 해당 의원실로 걸려왔고, 사진전을 유치하려 한 의원 비서관이 친모 한 명에게 욕설을 듣는 일까지 일어났다. 결국 사진전은 해당 아이들의 사진은 뺀 채, 다른 학대 피해 아동들의 사진만으로 진행됐다.

양측의 갈등 표출에는 그동안 쌓여왔던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한편에는 ‘돈’ 문제도 있다. 피해 아동 친모들은 국회에 보낸 공문에서 “‘하늘소풍’ 카페가 이익을 취한다”고 주장했다. 서현이의 친모 심 아무개씨는 자필로 작성한 공문을 통해 “내 아이를 이용해 회원들에게 모금까지 하였고, 지금은 내 아이를 포함해 다른 아이들까지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사진전과 관련해 아이의 사진을 쓰겠다는 연락이나 통보를 전혀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의 사진이 전시되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하늘소풍’ 측은 “울산시청 대집회 비용을 마련하려고 스태프의 계좌로 모금을 한 적은 있다. 300만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계좌를 연 지 사흘 만에 1380만원이 모였고, 금액이 너무 많아 급히 계좌를 닫았다”며 “지금까지 모금된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 모금을 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관련 행사, 국회 간담회에 참가하기 위해 든 교통비나 숙식비 외의 지출은 전혀 없었다는 설명이다.

피해 아동 친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천사들의 둥지’ 측은 “분명 ‘하늘소풍’이 처음에 세웠던 원칙과 다르게 간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천사들의 둥지’ 운영진 이 아무개씨는 “(‘하늘소풍’의) 공 아무개 대표(여)가 모금은 절대 없다고 했고, 정치권과의 결탁도 없다고 했다”며 “서현이의 49재 때 도움을 준 정치인에게도 당시 공 대표는 ‘정치와 연계하지 않는다’며 인사도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연계된 사진전을 열고 복지부 예산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카페가 부각되고 커지면 본인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정치권의 러브콜도 받았다고 한다”는 상대 측의 주장에 대해 ‘하늘소풍’의 공 대표는 “당적을 뒀다는 소리도 있더라. 말이나 되는 소리냐. 글을 썼는데 (취업 캠프 관련 내용이 수록된) 블로그가 연결된 적은 있다”며 “나중에 외부 강사를 초빙해 부모 교육 등 가족 캠프를 하면 좋겠다는 얘기는 했다. 생업도 내려놓고 있어 업체 홈페이지도 죽어 있는 상탠데 이 일을 가지고 무슨 돈을 벌겠느냐”고 반박했다.

3월4~5일 국회에서 열린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사진전’(위)과 친부·친모들이 국회에 보낸 ‘사진 전시 불가 통보서’(아래). ⓒ 연합뉴스
“친부모 이익 위해 ‘하늘소풍’ 노고 배신”

양측의 갈등은 ‘비영리 민간단체’ 설립 문제로 불똥이 옮겨 붙었다. 이씨는 ‘천사들의 둥지’ 이전에 활동했던 ‘아동학대 피해 가족 지원센터’ 게시글을 통해 처음 ‘비영리 민간단체’를 언급한 바 있다. “비영리 단체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공익 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영리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단체를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다는 것이다. “1·2차 운영진이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성민이의 친부와도 상의해 결정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에 대해 ‘하늘소풍’ 측은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기부금 모금의 근거가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가를 받은 비영리 법인은 기부자에게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줄 수 있고, 정부 등 공공 부문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비영리 법인 중 사회복지 법인의 경우, 법인의 설립 목적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다. ‘하늘소풍’ 측은 “비영리 법인은 공식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내야 하기 때문에 서명운동이나 국회 사진전을 그쪽에서 직접 하려고 (우리가 하려던 것을) 방해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공 대표는 “‘하늘소풍’ 운영진이었던 이씨가 간혹 복지 법인 이야기를 했다. 이를 우리가 거절하자 친부모들을 데리고 ‘아동학대 피해 가족 지원센터’를 따로 만들어 복지 법인을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천사들의 둥지’ 회원인 성민이의 친부는 “내가 해보니 아동학대 피해 가족이 혼자 (소송 등을) 진행하기는 너무 힘들었다”며 “피해 가족이 초기 대응을 잘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뿐 아니라, 홍보 영상과 전단지 등을 만들어 학대 자체를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비영리 단체를)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진 이씨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나 법인은 아니었다. 저쪽에서는 우리가 이미 법인으로 등록했고, 친모들이 이사로 등재돼 월급을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며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될 것 같아 비영리 단체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령 모금 등의 활동을 하더라도 그쪽은 되고 이쪽은 안 되는 이유가 있느냐”며 “자기들의 행동만 옳다는 식의 주장을 용납할 수 없다”며 ‘하늘소풍’ 측에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양측의 갈등은 인신공격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피해 아동 친부모들의 책임론이 나오고, 양측의 사생활까지 이슈화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 아동 친부모들이 속한 ‘천사들의 둥지’ 카페 운영진은 “아이를 부모와 분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친부모들이 더 반성하고 있다. 잘못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 죽음의 원인이 친모들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피해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초 ‘아이’를 위해 시작된 카페에서 친부모들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카페의 한 회원은 “자식을 보낸 부모는 아무리 잘했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며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건희의 친모는 “‘하늘소풍’이 사실무근의 말을 만들어 저를 모욕했다”며 “누명을 씌워 카페에서 쫓아냈다”고 공문을 통해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소풍’의 공 대표는 “건희의 친모에 대한 이야기는 ‘천사들의 둥지’ 운영진 이씨가 먼저 한 것이고 그것 때문에 건희 친모의 카카오스토리에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며 “그 이후 뜨끔한 이씨가 탈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내가 ‘하늘소풍’ 운영진으로 있을 때 건희 친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맞지만 공 대표와 친분있는 회원에게 들은 것이었다”며 “공 대표도 ‘같이 서로 깠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모든 친모들의 과거를 내가 밝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 아동 친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카페가 따로 있는 만큼, 더 이상 자기 아이들을 ‘하늘소풍’에서는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친부모와 아이를 분리한 점, 카페 회원들에게 친부모들의 사생활을 공개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늘소풍’ 측의 입장도 확고하다. 처음에 전국에서 서명지를 받을 때는 사진 원본까지 보내줬던 친부모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원들의 눈물과 노력을 배신하고 카페 활동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아동학대와 관련한 여러 재판을 앞두고 관련 단체들이 자중지란에 빠질까 우려된다.


‘서현이 사건’ 재판이 불신의 시작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인터넷 카페 모임 ‘하늘소풍’ 회원들과 학대 피해 아동 친부모 간 감정 대립은 왜 발생한 것일까. 시간은 2월11일 ‘서현이 사건’의 제3차 공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늘소풍’ 측은 서현이의 친모 심 아무개씨가 이 재판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것에 대해 회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고 주장한다. ‘하늘소풍’ 측에 따르면, 심씨는 서현이의 친부가 학대사실을 인지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심씨가 재판에서 “친부가 아이 학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냐”는 질문에 “몰랐다고 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고, 그러한 심 씨의 태도에 실망한 회원들 사이에 여러 말들이 돌면서 대립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늘소풍’ 측은 “앞으로 친부모와 아이들을 분리하겠다”며 피해 아동만을 보고 행동할 것임을 공지했고, 친모들의 등급을 강등했다고 한다. 친부모 측의 주장은 다르다. 인터넷 카페 모임 ‘천사들의 둥지’ 운영진 이 아무개씨는 “검사가 (서현이의 친부를) 자극하면 안 된다고 해서 (심씨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호칭을 ‘서현 아빠’라고 부른 것도 일부러 그런 호칭을 씀으로써 (친부의) 입을 열게 하자고 공 대표와 친모들이 같이 계획한 것”이라며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서현의 친부에게 다정한 호칭을 썼다’ ‘위증을 했다’고 카페 회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회원들이 심씨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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