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지사는 내가 다 해놓은 것에 도장만 찍었다”
  • 감명국·엄민우 기자 ()
  • 승인 2014.04.2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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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돌아온 김두관 새정치연합 공동선대위원장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돌아왔다. 지난 2012년 “더 큰 김두관이 되어 돌아오겠다”며 도지사직을 전격 사퇴하고 대권 도전에 나섰던 그는 결국 민주당 경선에서 ‘문풍(문재인 바람)’에 밀려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당원이나 대의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던 김 전 지사는 모바일 선거에서 ‘문재인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제주 첫 경선 결과를 보고 ‘아 이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대의원 투표에서 앞섰으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 투표에서 문재인 의원에게 확연히 밀린 탓이다. 처음부터 경선 룰에 대한 불만이 컸으나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는 대선 이후 독일로 떠났다. 그로부터 1년. 지방선거를 2개월 앞둔 시점에 귀국했다. 김 전 지사는 4월11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됐다. 문재인·정세균·손학규·정동영 고문과 함께였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대권 주자와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계파 수장들이 망라됐다. 마을 이장에서 출발해 군수를 거쳐 도지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이력으로 김두관 위원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는 “지방자치에 대한 내 오랜 경험을 이번 선거에 모두 쏟아붓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4월15일 김 위원장을 만났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귀국했다. 일부러 타이밍을 맞춘 것인가.

한국으로부터 ‘6월에 선거가 있어 골치 아픈데 몇 달 연장해서 더 있다가 오라’는 지인들의 전화가 왔었다. 그러나 조그만 부분이라도 내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래도 기초자치 행정부터 광역자치 행정까지 다 경험해본 지방자치 1세대 아닌가. 그런 부분을 살려 당에 기여하고 싶었다. 

독일에서는 학업 외에 주로 무엇을 하며 지냈나.

나는 현장 체질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한 달 만에 나를 불러 “청와대에 들어와서 나를 도와달라”고 하셨을 때도 “저는 현장 야전 체질입니다. 청와대보다는 내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고 말하고 정중히 거절했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현장을 다니며 교민들도 만나고 독일 인사들도 만나고 다녔다.

손학규 고문과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 지냈는데.

자주 봤다. 통일·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특히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손 고문이 연합정치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독일 국회는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연정을 안 한 적이 없다. 제1당이 과반수를 넘은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연합정치를 위한 대화와 타협에 대한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여야를 떠나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은 전임 정권이 하던 것도 승계한다. 독일의 이런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진영의 통합 소식을 독일에서 접했을 텐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조직원과 충분한 토론을 거치는 방법과 지도자의 결단에 의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통합 과정은 후자에 가까운데,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내린 결단이고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개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잘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통합 이후 어떤 식으로 갈지 구체적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선대위원장 제안은 언제 받았나.

귀국하자마자 김한길 대표와 문재인 의원이 보자고 해서 각각 따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때 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당을 위해 힘을 보탤 것을 주문받았다. 이후 김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요청해 수락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을 많이 해서 현장 실천가로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힘을 보태고자 했다. 당이 잘나갔다면 아마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이 어려운 상황인지라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7명의 대규모 선대위원장 체제여서 저마다 역할이 다를 것 같은데 김 위원장은 어떤 역할을 맡았나.

역할 분담을 따로 하진 않았지만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개인적으로 두 가지 부분을 이야기했다. 우선 가장 어려운 지역인 부산·대구 등 영남 지역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과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개혁 공천을 훼손시켜선 안 된다는 부분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성장한 정치인으로서 최근 논란이 됐던 기초선거 공천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원론적으로 말하면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다. 대의정치의 핵심이 정당정치인데 당에서 검증해서 후보를 내놓고 심판을 받은 후 당과 후보가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공천을 하는 게 맞는데, 한국은 강한 지역주의 정서 때문에 사실상 유권자에게 선택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영남에서 새정치연합 기초의원이 나오는 풍토가 되면 그때는 정당 공천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같은 경우는 “우리는 기득권이 있는 호남의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할 테니, 새누리당은 영남의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라”는 식으로 요구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초선거 공천 논란을 계기로 당내에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이도 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의견을 수렴하고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방식에서 (안 대표의) 새로운 리더십을 봤다. 오히려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우(右)클릭’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공감하나.

야당으로서 국정원 관련 문제와 같이 집권 여당이 잘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좀 더 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여당의 세에 밀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산층을 껴안고 가는 것도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대개 당내에서 ‘친노’ 그룹이 좀 더 좌측에, 그리도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좀 더 우측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김 위원장은 어느 쪽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나보고 ‘범(汎)친노’라고들 부르더라. 그런데 난 친노냐 비노냐 하는 논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다양한 정파가 있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자기 정파의 이익을 중심으로 당을 끌고 가려는 게 문제다. 그게 곧 패권주의 아니겠는가. 이 패권주의만 빼면 (정파 구도는) 생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통합 과정에서 친노가 소외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는가.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대표 체제가 출범하며 흔히 말하는 ‘친노’가 당권을 잡았다. 그래서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을 대권 후보로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마지막 꼭지를 잘 따서 대권을 잡았으면 됐을 텐데 어찌 됐건 대선이라는 최종 싸움에서 패배했다. 이에 따라 당권이 지금의 지도부로 가게 됐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친노 입장에서는 소외됐다고 느낄 수 있으나 “우리가 해봤으니 너네도 한번 해봐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당권을 잡은 사람이 (통합을) 주도적으로 하고, 그렇지 않은 쪽이 보조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싸움 붙이기 좋아하는 시각에서 보면 당내 내분이 있다고 한다.

4월11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서 선거대책위원장단 첫 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두관·정세균 선거대책위원장,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문재인·정동영 선거대책위원장. ⓒ 시사저널 이종현
하지만 당내 계파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특히 광주시장 후보 경선을 둘러싸고 광주 지역 의원 5명이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것과 관련해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그렇다기보다는 지역 민심의 흐름을 그 지역구 의원들이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지역구 의원들이 민심을 제일 잘 아는 것은 사실 아닌가. 집단적으로 그렇게 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권 도전을 위해 2년 전 도지사직을 중도 사퇴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다. 경남 지역에서 오히려 유권자들의 반감을 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사실 걱정을 좀 했다. 경남도지사에 도전하는 새정치연합의 김경수·정영훈 후보도 걱정을 했을 텐데, 김두관의 도정을 승계해 뛰어넘겠다는 콘셉트를 잡았다고 들었다. 지금도 도민들께서 중도 사퇴에 대해 섭섭해하시는 게 느껴진다. 특히 홍준표 지사의 도정을 보며 더욱 그런 것 같다. 홍 지사가 거가대교 재구조화를 마치 본인이 한 것처럼 말하던데, 좀 가혹하게 말하면 사실 내가 다 해놓은 것에 홍 지사는 도장만 찍은 것이다. 난 일을 맡으면 몸이 상할 만큼 전력투구한다. (도지사직을 사퇴할 당시) 주변에서 ‘왜 그렇게 미련하게 하느냐. 김문수 지사처럼 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 출마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대선에 출마하면서 양다리 걸치고 임한다는 것은 내 철학상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어쨌든 공식 사과 한 번으로 도민들의 실망을 모두 내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를 평생 따라다닐 문제인데 열심히 좋은 정치를 해서 갚아나가야 한다.

홍준표 지사가 도정을 이어받으면서 진주의료원 문제 등 많은 뉴스가 있었다. 전직 도지사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지난번 도민들께 사과드릴 때 홍준표 지사 도정에 대해서도 사실 할 말이 많았지만 사과보다 비판이 부각될까 봐 말을 안 했다. 홍 지사는 정치가로서의 역할은 했지만, 행정가로서는 점수를 줄 수 없다. 진주의료원을 폐업해서 강성 노조를 잡는다고 했는데, 월급을 몇 달씩 밀려도 참는 게 강성 노조인가. 기본적으로 지역 의료원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하는 기관이다. 진주의료원은 규모를 키우며 설비비가 들어가 적자가 생겼는데, 그게 노조 책임인가. (홍 지사가)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수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혹한 처사였다.

앞서 이번 선거에 영남 지역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했는데, 문재인 의원과 부딪치거나 겹칠 가능성은 없을까.

전혀 없다. 대선 과정에서야 경쟁하다 보니 그렇게 보였던 것이지, 같이 다니자고 얘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서로 편 가를 처지가 아니라 무조건 다 힘을 합쳐야 한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7월 재보선이 이어진다. 김 위원장이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출마할 생각인가.

독일에서 채우는 공부만 한 게 아니라 비우는 공부도 했다. 30년 가까이 되는 정치 활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는데 지나고 보니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하고 욕심낸다고 되는 게 아니고 객관적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일단 지방선거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선거 이후에는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

신당 창당 이후 새 정치의 핵심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다. 내가 독일에서 느낀 건, 독일은 거의 모든 정치인이 김두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조그마한 시에서 시작해 거기서 인정받고, 그래서 주의 각료가 되고 중앙정부로 올라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정당은 당과 현장이 괴리를 보이는데 현장과 네트워크가 돼 있는 당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싶다. 보통 고시에서 합격하거나 다른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이 정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보다는 정치 영역 안에서 기초단체부터 차근차근 커온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다 우리가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업보 아니겠는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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