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네거티브,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김황식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4.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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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간 정몽준 후보와 막판 대역전을 노리는 김황식 후보 간 네거티브 공세와 반격의 강도가 세지고 있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 자칫 유혈 참극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진도 앞바다에서 날아온 비보(悲報)로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 정치권은 여객선 침몰 참사에 따른 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앞 다퉈 민심 수습에 나서고 있다. 불과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도 표류하는 양상이다. 여야는 예정된 당내 경선 일정을 순연하거나, 당 소속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시켰다. 당의 방침과 상관없이 각 정당의 예비후보들도 선거 관련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형 참화의 후폭풍에 누가 먼저 휘말릴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초읽기에 들어갔던 지방선거의 시곗바늘이 일순간에 멈춰버린 듯하다.

가열 양상으로 치닫던 지방선거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물밑 움직임은 다르다. 당내 경선 일정이 순연되면서 선두 후보와 격차를 좁히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주자들은 역전을 노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친박(親박근혜)’과 ‘비박(非박근혜)’ 진영이 정면으로 맞붙는 양상을 띠고 있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대표적이다. 선거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승기를 잡는 듯 보였던 정몽준 후보와 경선 내내 열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김황식 후보는 굳히기와 대반전을 꾀하고 있다. 경선 연기가 미칠 파장을 고려하며 분주히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돌발 변수 만난 ‘대세론 굳히기’

당초 4월30일로 예정돼 있던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가 빚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정몽준 후보의 대세론이 상당 부분 고착화됐다는 게 당 안팎의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당내 경선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정 후보가 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경쟁 후보인 김 후보와 격차를 벌리는 데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가상 맞대결 지지율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 후보가 정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문제 삼으며 공략했지만, 별반 효과를 보지 못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일부 친박 인사들은 “김 후보가 저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빈 수레만 요란했다”고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 후보 측은 접전이 예상됐던 당내 경선에서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에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4월15일 정몽준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캠프 관계자는 “외부 평가를 들어봐도 당내 경선은 어느 정도 정 후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으냐”며 “이제는 당내 경선보다는 본선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말하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선거판에는 불문율로 여겨지는 공식이 있다. 선거 당일까지 몇 번의 굴곡이 반드시 생긴다는 점이다. 섣부른 대세론은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경고다. 실제로 이번에도 갑작스러운 돌발변수가 터졌다. 전 국민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린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로 인해 선거의 ‘ㅅ’자도 꺼내기 힘들게 돼버렸다. 지방선거 연기론까지 나올 정도다. 정 후보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지던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황식·정몽준·이혜훈(왼쪽부터)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가 4월15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장 이취임식’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경선 연기에 김황식·정몽준 ‘온도차’

새누리당은 여객선 침몰 사고 이틀째인 4월17일 당내 경선 일정을 전면 연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초 4월30일 열릴 예정이던 서울시장 경선도 5월9일로 미뤄졌다. 당의 경선 일정 연기 결정을 받아들이는 두 후보 캠프엔 온도 차이가 있다. 김 후보 측은 연기를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정 후보 측의 반응에서는 불안감이 비치는 것이다. 정 후보 측 캠프 관계자는 “애초 4월25일 열리기로 했던 경선이 행사 장소를 빌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5일이나 연기됐는데, 다시 9일을 연기하면 원래 일정보다 보름이나 더 늦어진 셈”이라며 “당의 결정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지만, 경선 일정이 늦어지면서 본선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 측으로서는 반전의 시간을 얻은 셈이 됐다. 그동안 김 후보 측은 경선 참여 후발 주자로서 ‘시간적인 제약’ 문제점을 거론해온 터였다. 김 후보 캠프의 최형두 대변인은 “애당초 정 후보의 인지도가 높은 데다 김 후보가 늦게 경선에 합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선은 이미 상당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며 “하지만 차츰 조직력이나 적극적인 지지층을 확보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전 모멘텀을 찾으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에게 좀 더 시간이 주어지면서 한번 해볼 만한 경선 구도가 됐다는 것이다.

김 후보 측의 셈법은 정 후보의 현대중공업 주식(771만7769주) 백지신탁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데서도 읽힌다. 정 후보 측은 그동안 백지신탁 논란과 관련해 “당선 후 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할 문제로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김 후보 측은 4월9일 경선 후보 1차 TV토론회에서 다시 백지신탁 문제를 꺼내들었다. 김 후보 측은 TV토론회 이후인 4월16일 논평을 내고 정 후보를 향해 재차 백지신탁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몰아세웠다.

김 후보 측은 2006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백지신탁심사위원회 결정 후 현대중공업 주식을 매각한 것을 예로 들면서 파상 공세를 퍼부었다. 정 후보 측도 공세가 거세지자 “2006년은 심사위 내부 지침으로 ‘포괄적 직무 관련성’을 적용한 결과이고, 이후 심사위 내부 지침이 ‘개별적 직무 관련성’으로 바뀌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 후보 측은 “김 후보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도를 넘고 있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몽준 후보 되면 전체 선거 판세 악재”

정 후보의 해명에도 백지신탁 문제에 대해 김 후보 측이 집중 포화를 쏟아내는 것은 이른바 ‘정몽준 불가론’을 확산하려는 의도다. 김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백지신탁 문제는 정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라며 “갑작스러운 여객선 참사로 당장은 거론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정 후보가 대기업 오너 지위를 버리겠다는 약속을 하든가, 아니면 이 부분에 대해 끝장 토론을 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 측은 백지신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서울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경기도지사 선거 등 여당의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 후보가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될 경우 여당의 지방선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당심(黨心)’을 자극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김 후보는 새누리당에 우호적인 보수층을 상대로 ‘정몽준 불가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 후보의 과거 이력과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집중 공세를 펼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후보는 정 후보가 2010년 9월15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국민의 70%가 천안함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발언을 거론하면서 안보관을 문제 삼기도 했다. 김 후보는 논평을 통해 “천안함 폭침 사건을 덮자는 발상은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라며 “당 대표까지 지낸 정 의원이 국제합동조사단의 객관적 조사 결과를 흔드는 발언을 한 셈”이라고 공격했다. 김 후보 측은 또 4월15일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장 이·취임식에서 정 후보가 한 ‘노인회 정회원 자격 발언’에 대해서도 “제2의 노인 폄훼 발언”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김황식 후보 둘러싼 의혹 축적돼 있다”

정 후보 측은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이미 대세론이 굳어지는 상황에서 자칫 논란을 확산시키려는 김 후보 측에 말려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경선 일정이 길어진 만큼 정 후보 측도 김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에 네거티브 전략으로 대응하면서 서울시장 경선이 진흙탕 싸움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 후보는 김 후보 측의 백지신탁 공세가 거세지자, 김 후보의 ‘병역 면제 부실 검증’ 의혹을 제기하면서 맞불을 놓기도 했다. 정 후보 측은 1970년과 1971년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병역을 연기하고 1972년 ‘부동시’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례를 거론했다. 정 후보 측은 “(김 후보가) 병역 기피 의혹에 혹독한 청문회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혹을 제대로 해소시킨 적이 없다”면서 “김 후보는 각종 의혹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고 공격했다. 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김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김 후보 역시 후보 검증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며 “김 후보를 둘러싼 의혹도 상당히 축적해놓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4월18일 서울 아산병원 동관 로비에 아산사회복지재단 기부자 홍보 게시판이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4월9일 ‘정의로운시민행동’이란 단체가 서울동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최근 6년간 244억원의 기부금을 무등록 불법 모집해 임의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선 상대자인 김황식 후보가 연일 정 후보의 백지신탁 문제를 집중 공격하는 상황에서, 공익법인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의 불법 기부금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 후보는 현재 이 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다. 안전행정부 민간협력과 관계자는 “자발적인 기탁이거나 금액이 1000만원 이하인 경우는 기부금 등록 대상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모금 과정이나 사용처가 적합했는지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 측과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재단 측은 “(논란이 된) 기부금은 서울아산병원을 내원하는 환자와 가족 등이 자발적으로 낸 기탁금으로 기부금품 등록 대상이 아니다”며 “자발적 기부금품 또한 후원자의 취지에 맞춰 불우 환자 치료비 지원과 환자 치료를 위한 연구에 전액 사용됐다”고 해명했다. 정 후보 캠프의 박호진 대변인은 “재단 측에 확인해본 결과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일축했다.

김 후보 측은 아산사회복지재단 고발과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아산사회복지재단을 고발한 주체가 친여 보수 성향 단체라는 데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기자가 해당 단체의 대표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확인해본 결과, 정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 많았다. 이에 대해 김 후보 측은 “시민단체에서 검찰에 고발한 것일 뿐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단의 불법 기부금 의혹을 문제 삼는 것이 김 후보의 백지신탁 공세와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 후보가 당선된 후 백지신탁 결정이 내려질 경우,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위험을 고려해 백지신탁위원회를 통한 3자 매각보다는 아산사회복지재단 등 정 후보와 관련된 재단 측에 증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기 때문이다. 불법 여부를 떠나 정 후보로서는 백지신탁과 재단을 향한 모든 공격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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