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3명 중 1명 4대 권력기관 출신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4.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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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62개 그룹 상장사 255곳 전수조사 경영 감시보다 방패막이 전락 우려

#1.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 1월 재계 순위 13위인 신세계그룹과 공정위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은밀히 조사를 벌였다. 이마트가 조직적으로 공정위 직원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문건은 구체적이다. 이마트 지점별로 지역 공정위 사무소를 전담 관리하며 돈을 뿌렸다. 명절 선물은 물론이고 직원 단합대회 때도 이마트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마트는 로비에 필요한 돈을 복리후생비에서 조달했다는 내용이었다. 공정위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얼마 후 문제가 된 간부 한 아무개씨와 최 아무개씨를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조용히 사건을 덮었다.

2013년 4월 취임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해당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다. 공정위는 문제가 된 직원들과 신세계그룹의 유착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퇴직 직원들을 통해 내부 정보가 유출된 사실도 확인했다. 공정위는 7월 해당 직원들에게 재차 경고하고 대기 명령을 내렸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퇴직 직원들의 사무실 출입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검찰 고발까지는 가지 못했다. 로펌에 근무 중인 전직 직원의 입김이 여전했기 때문으로 공정위 내부에서는 보고 있다. 검찰 고발이 무산된 데는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 일러스트 정찬동
신세계·동부,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70%

시사저널은 최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 62곳의 상장 계열사 사외이사 조사 자료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지난해 초부터 10월 말까지 신규 선임됐거나 재선임된 상장사 255곳의 사외이사는 모두 384명이었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7곳의 상장사에 12명의 사외이사가 선임됐다. 이 중 9명이 권력기관 출신이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권력기관 사외이사 선임 비중이 세 번째로 높았다.

국세청장이나 검사장, 공정위 부위원장 등 고위 공무원 출신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마트에는 전형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과 박영렬 전 수원지검 검사장이 사외이사로 있었다. 신세계에는 손영래 전 국세청장과 김종신 전 감사원 사무총장,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광주신세계·신세계인터내셔널·신세계아이앤씨·신세계푸드 등 계열사에도 국세청·감사원·관세청·식약처 출신 고위 인사들이 즐비했다. 그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들 사외이사가 해결사로 나섰을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 비중이 가장 높은 학계 인사가 신세계그룹에는 한 명도 없었다”며 “정부 압력이나 사정기관의 조사를 막아줄 바람막이 사외이사가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62개 조사 대상 그룹 중 권력기관 및 고위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 연합뉴스

#2. 재계 17위인 동부그룹도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동부그룹 상장사 8곳의 사외이사 20명 중 9명이 검찰·공정위·금감원·국세청 등 사정기관과 정부 고위관료 출신이었다. 금융 지주회사인 동부화재에는 김선정 전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위원과 박상용 전 공정위 사무처장이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비금융 지주회사인 동부CNI에는 장항석 전 공정위 상임위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동부하이텍의 사외이사 명단에는 김인철 전 산업은행 본부장이 올라 있다.

동부화재는 거의 매년 금융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지난 3월 기초서류 기재 규정을 위반한 손해보험사 6곳을 적발했다. 동부화재는 6곳의 손보사 중에서 가장 많은 8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지난해에는 고객의 보험금을 편법으로 운용하다 금감원의 제재를 받았고, 2010년에는 실손의료보험 불완전 판매로 김순환 당시 부회장이 문책경고를 받았다.

동부CNI의 상황은 더했다. 이 회사는 현재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20% 넘게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이 48.72%에 이른다. 동부CNI는 매년 동부화재·동부건설 등으로부터 전산시스템 구축 및 운영 사업을 수의계약 형식으로 따내고 있다. 한 해 계약 규모는 250억원 안팎이다. 계열사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회사 실적은 호전되지 않았다. 지난해 동부CNI는 59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됐지만 김준기 회장 일가에게 지급한 배당금을 42%나 늘렸다.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쏠림 심해

계열사들의 실적 악화는 그룹에 전가됐다. 동부그룹은 2009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메탈·동부하이텍 등 계열사 매각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채권단까지 나서 구조조정을 압박할 정도였다. 재계 관계자는 “동부그룹이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힌 것은 외풍 차단과 재무 위기 극복에 도움을 받기 위한 차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의 대기업 사외이사 독식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곳이 법조계다. 전체 384명의 사외이사 중 법조계 출신이 82명(17.9%)이나 됐다. 전직 법무부장관 2명, 법무부 차관 3명, 대법원장 비서실장 1명, 검찰총장 4명, 검사장 3명, 법제처장 2명, 부장판사 10명, 부장검사 1명, 지방법원장 2명, 지방검찰청장 1명, 특허법원장 1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1명 등이다.

CJ그룹의 경우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 각각 법무부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이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GS그룹은 지난해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 전 장관은 현직 시절 고위 공무원의 기업행을 막기 위한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했다. 정작 자신은 개정법 시행 직전 오리온행을 택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박세연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법조인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69곳 중 54곳이 현재 소송 중”이라며 “수출 기업의 경우 특허 분쟁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특허법원장 출신을 선호했다”고 밝혔다. 

국세청·관세청·공정위·금감원·감사원 등 권력기관 출신도 73명(15.9%)이나 됐다. 전직 국세청장 5명, 관세청장 1명, 지방국세청장 10명, 공정거래위원장 1명 등 고위 공직자가 즐비했다. 전형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과 윤종훈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박차석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김창환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김재천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이승재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현재 이마트·현대제철·한솔제지·롯데제과·CJ CGV·두산·신세계인터내셔널·현대건설 등에서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상당수 인사가 두 곳 이상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공정위 출신으로 이병주 전 공정위 상임위원과 장항석 전 상임위원, 박상용 전 사무처장, 허선 전 사무처장, 이동훈 전 사무처장 등이 현대중공업·현대위아·동부화재·웅진씽크빅·롯데하이마트·현대상선·STX 등에 사외이사로 몸담았다.

특히 금감원 및 공정위 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한 15곳 중 8곳은 금융 당국으로부터 제재 조치를 받아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박세연 연구원은 “사정 당국으로부터 반복적인 제재를 받은 회사일수록 금감원이나 공정위 출신 고위 공직자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룹별로 보면 두산그룹(11명), 삼성그룹(10명), 동부·롯데·신세계(9명), 동국제강·현대차·CJ그룹(8명), 동양·SK그룹(6명), 효성·현대·GS·LG그룹(5명) 순으로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높았다. 이 중 두산·동양·롯데·신세계·CJ그룹은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70%대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동국제강과 현대산업개발은 사외이사 전체를 권력기관 출신으로 선임했다.

사외이사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 사외이사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였다. 제도 도입 초기만 해도 전문 지식과 경험이 있는 기업인 사외이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16년이 지나면서 전문성을 갖춘 기업인은 교수나 권력기관 출신 인사로 교체됐다. 전문성이 부족한 만큼 대다수 사외이사는 이사회 정족수를 채우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사외이사가 권력기관에 대한 기업의 민원 해결이나 로비 창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가 만난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참석하기 전에 이미 안건에 대한 설명은 끝낸다. 이사회는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며 “이사회에서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는 경영진이 무능력할 때뿐”이라고 말했다. 한 사정기관 출신 사외이사는 “명망 있는 사외이사에게는 회사 경영진도 섣불리 안건을 올리지 못한다”며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 본연의 순기능이 있음에도 ‘거수기’로 표현되고 있어 답답하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인력풀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로 조언한다. 사외이사 후보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사추위)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결정한다. 하지만 주로 오너나 최대주주 등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누구로 할지를 결정한다. 때문에 오너와 ‘코드’가 맞는 인물을 추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류영재 시스틴베스트 대표는 언론에서 “회사에서 추천한 사외이사만 형식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인물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며 “회사로부터 독립적인 인사를 추천하도록 인력풀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사외이사에게도 부적절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기업들은 현재 면책 보험을 활용하고 있다. 사고가 났을 경우 보험사가 대신 보상을 해주는 자동차보험과 유사하다. 이 보험에 가입하면 경영 실패로 인한 피해를 100% 보상받을 수 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는 “자동차보험처럼 피해 정도에 따라 자기부담금을 부과한다거나 사외이사에게 부적절한 경영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한다면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3명 중 1명 교수…평균 61.7세 


상장 기업 255곳의 주주총회에서 신규 선임되거나 재선임된 사외이사는 모두 384명이다. 직업은 교수가 131명(28.5%)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법조계 82명(17.9%), 관료 출신 73명(15.9%·다수 경력으로 2명 중복 집계), 기업가 61명(13.3%), 협회 및 학교 출신 36명(7.8%), 회계·세무전문가 26명(5.7%), 연구소 26명(5.7%), 언론인 9명(2%), 기타 15명(3.3%) 순이었다. 평균 나이는 61.7세다. SK커뮤니케이션·대우조선해양·한솔케미칼 사외이사인 구태언 전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 검사와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서정호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세심사위원이 45세로 가장 나이가 적다. 동부제철의 사외이사인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이 84세로 최고령자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 곳 이상의 직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사외이사 외에도 한 군데 이상 직장을 갖고 있는 인사가 235명(61.2%)이었고, 두 곳 이상 직장을 갖고 있는 사외이사도 80명(20.8)에 달했다.

사외이사 평균 재임 기간은 2003년 선임일 기준으로 2년이고 임기 만료일 기준으로 4.3년이다. 에스오일의 사외이사인 알 세프란 전 아람코 부사장과 동부제철의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 이건우 전 산업자원부 관리관, 현대홈쇼핑의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동국제강의 윤용섭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최남규 전 외환은행 상무 등이 10년 이상 사외이사로 근무했다. 일부 인사는 계열사를 돌아가면서 사외이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현행 상법은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연임 제한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박세연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일부 회사의 경우 회사 임원과 대표를 거쳐 사외이사를 맡다 보니 재직 연수가 41년 이상인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최근 사외이사 임기가 10년을 넘어갈 경우 주총장에서 재선임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사외이사가 10년 넘게 한 기업에 머무르면 회사와의 유착 관계가 심해져 오너의 경영권 행사를 제어하는 역할을 실질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장기 연임을 하게 되면 경영진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며 “사외이사 본연의 역할인 경영진 견제와 감시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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