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자들이 머물 곳은 더 이상 없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4.04.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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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티베트·위구르 난민…태국·네팔, 중국 위세에 눌려 본국 송환

히말라야 산맥 남면에 위치한 세계의 지붕 네팔. 북으로는 중국 티베트(西藏) 자치구와 1236㎞의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동·서·남으로는 인도에 둘러싸여 있다. 네팔에는 사시사철 히말라야를 등산하려는 외국 관광객이 몰려온다. 비단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팔에는 또 다른 손님이 줄지어 찾아온다. 바로 중국을 탈출해 내려온 티베트의 망명객들이다.

티베트인들은 해발 6000~8000m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로 온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있는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로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다수 티베트인은 인도로 가지 못한 채 네팔에 발이 묶여 있다. 무려 2만여 명의 티베트인이 네팔 곳곳에 있는 난민촌에 흩어져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네팔 정부가 티베트인의 인도행을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국경에서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지기 때문이다.

지난 4월1일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네팔로 탈출한 티베트인에 대한 구금·구타 등이 심해졌고 일부는 강제 송환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HRW는 ‘중국의 그림자: 네팔에서의 티베트인 학대’라는 보고서에서 “네팔 당국이 티베트인에 대한 배척을 넘어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3월15일 위구르 난민 소년이 태국 남부 송클라 주에서 경찰차에 감금되어 있다. ⓒ 모종혁 제공
티베트인 발목 잡고 놓아주지 않는 네팔

본래 네팔은 대표적인 친(親)티베트 국가였다.  과거 네팔 정부는 피난 온 티베트인들에게 정치난민 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자국민과 똑같이 대우했다. 난민증을 소지한 티베트인은 자유로이 직장을 갖고 사회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금세기 초부터 난민촌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신분증 발급을 거부하기 시작하는 등 네팔 정부는 티베트인들에게 조금씩 냉담해졌다. 1996년부터 10년간 지속된 마오이스트 게릴라들과의 내전을 종식한 뒤 반(反)티베트인 정책을 더욱 노골화했다. 중국이 강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원조 공세를 벌이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중국 지도자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네팔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는 향후 3년간 1억1900만 달러를 원조하기로 합의했다. 지원되는 돈은 발전소 및 도로 건설 등 인프라 확충에 쓰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에 불과한 네팔 입장에서는 엄청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네팔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자국으로 넘어오는 티베트인들을 막고 있다. 특히 2008년 3월 티베트 라싸에서 발생한 대규모 독립 시위 이후 중국이 국경 관리를 강화하자, 네팔도 이에 적극 따르고 있다. 과거 티베트인들은 네팔을 거쳐 인도로 이주하거나 제3국으로 망명했다. 그 숫자가 2008년 이전에는 매년 2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2012년에는 355명, 2013년엔 171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제3국으로 가려는 티베트인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등에 망명을 신청한 5000명의 티베트인이 허가를 받았지만 네팔 정부의 방해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팔에 남아 있는 티베트인에 대한 감시와 탄압도 강화되고 있다. 2011년 네팔 정부는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국 내에서 반(反)중국 시위를 금지했다. 부동산 소유를 금지하거나 운전·여행 등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지난 3월10일 중국의 티베트 점령 55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티베트인의 ‘반중 항쟁일’ 시위도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다. 수백 명의 티베트인이 수도 카트만두의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 1000여 명의 경찰과 보안요원을 배치해 단속했다. 과격한 행동을 벌인 티베트인 9명은 현장에서 체포돼 구금됐다. 티베트청년회(TYC) 네팔 지부 대표 체왕 돌마(여)는 “과거에는 체포돼도 당일 밤에 풀어줬으나 지금은 구금 기간이 길어졌다”며 “활동가를 불시에 체포하거나 난민촌에 대규모 경찰 병력을 배치해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날이 불안한 탈출자는 티베트인들만이 아니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차별을 못 견뎌 중국을 탈출한 위구르인의 신세도 마찬가지다. 3월12일 태국 경찰은 남부 송클라 주의 한 고무 농장 뒤 산속 정글에 숨어 있던 일단의 사람들을 적발했다. 어린이 90명을 포함해 213명에 달했다. 터키어를 사용하면서 터키인이라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터키로 망명하려는 위구르인이었다.

며칠 후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댄 사깨오 주에서도 112명의 위구르인을 적발해 방콕으로 이송했다. 태국 언론에 따르면, 이들 위구르인은 밀입국 알선 조직의 주선으로 중국을 탈출해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쳐 태국에 들어왔다. 이는 탈출자들이 중국을 탈출할 때 이용하는 루트다. 중국 남부와 국경을 맞댄 아세안 국가에선 과거에도 위구르인들이 밀입국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건 발생 후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들의 망명 의사를 확인했다. 미국 국무부도 논평을 내고 태국 정부에 신중하게 처리해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태국은 위구르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과 서구 국가들의 압력을 받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9년 미얀마와 캄보디아가, 2011년 카자흐스탄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자국으로 피신했던 위구르인들을 강제 송환했다. 세계위구르회의(WUC)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송환당한 위구르인 20명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이 중 4명에겐 사형, 나머지에겐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위구르인 송환은 아세안 명예에 먹칠한 것”

HRW의 브래드 애덤스 국장은 “과거에 송환된 위구르인들은 고향에서 모진 박해를 받았다”며 위구르인들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토록 촉구했다. UNHCR의 비비안 탄 대변인은 “위구르인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 영자 일간지 ‘더네이션’도 사설을 통해 “과거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위구르인들을 송환한 것은 아세안의 명예에 먹칠한 행위”라며 태국 정부에 대해 인도적인 처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태국이 위구르인들을 중국에 되돌려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자국 내 다른 난민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국은 과거 자국으로 피신한 라오스의 몽족과 미얀마의 로힝야족을 강제 송환한 바 있다. 무엇보다 G2로 성장한 중국의 위상을 무시하기 힘들다.

분리 독립 성향이 강한 티베트인과 위구르인에게 해외 탈출은 마지막 피난이다. 하지만 중국과 밀착한 주변 국가들의 태도 변화로 이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서구 국가들도 망명 허가 조건을 까다롭게 정해놓고 있어 제3국행도 쉽지 않다. 끊임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티베트인과 위구르인. 별다른 출구가 없는 한 티베트인은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위구르인은 무차별 테러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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