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일류지만 관리들은 이류에 불과”
  • 김원식 뉴욕 통신원 ()
  • 승인 2014.04.3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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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보도에 비친 ‘세월호 참사’…“제3세계 재난 보는 듯”

“최근 이틀 동안 발견된 희생자들의 손가락은 부러져 있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이 최후의 순간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벽이나 바닥을 기어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4월24일 로이터통신-

 

“한국은 급성장하다 보니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지름길(shortcut)들이 만들어졌다.”

-4월24일 뉴욕타임스-


로이터통신이 4월24일 전한 이 가슴 아픈 기사는 전 세계 외신을 타고 다시 보도돼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에게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같은 날 미국 뉴욕타임스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사고의 근원과 관련해 외형적인 급성장에 급급했던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 CNN, 영국 BBC 등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연일 한국에서 발생한 이번 여객선 참사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면서 대한민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사고 발생 초기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의 방대함에 초점을 맞추던 외신들은 선장이 먼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한 사실이 알려진 후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마디로 초기 대응 체계 미비와 선원들의 직업적 윤리의식 부족을 전면에 다루면서 한국은 겉으로만 성장했지 속살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외신 촬영기자가 세월호 침물 일주일째인 4월22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 붙은 신원 확인자 명단을 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적 참사에도 지지율·직위 유지 의문”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사고 조사 전문가인 제임스 셜리의 말을 인용해 “사고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까지 2시간 반 동안 승객들을 밖으로 내보낼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왜 승무원들이 배 안에 있으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어 “승무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면, 승객들을 배가 침몰하기 전 밖으로 내보내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최소한 그들은 구명조끼와 함께 바다에 떠 있었을 것”이라며 사고 당시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대응 잘못을 질타했다. 이어 뉴욕타임스는 1970년대 남영호 침몰 사고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도 수백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면서 한국은 20년 전의 대형 사고에서 교훈으로 삼은 게 없다고 꼬집었다.

CNN을 비롯한 거의 모든 외신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먼저 탈출한 선장의 행위를 지난 2012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 사고 당시 선장이 도망친 행위와 비교하며 비난했다. 한 외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과 어린이가 먼저’라는 규범이 또 무너졌다”며 세월호의 선장은 이탈리아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선장과 함께 해양사의 겁쟁이 대열에 합류했다”고 비꼬았다. 이번 대형 참사는 인재에서 비롯된 총체적인 문제점을 지닌 해난 사고라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실종자 중 생존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한국 정부의 사고 대응 능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고 당일 미국 정부는 인근에 있던 미 해군함정인 ‘본험 리처드’함을 급파하고 구조 헬기를 보냈으나, 구조 헬기는 결국 사고 현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이례적으로 미 해군 당국은 4월17일 공식 자체 뉴스를 통해 “미군 수륙양용 11함대 헤이디 에글 제독은 ‘우리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즉각적인 지원을 위해 항로를 변경하고 지원에 나섰지만, 한국의 대응 효율성이 우리 (군사) 자산의 즉각적인 이용을 떨어뜨렸다’고 말했다”(‘When we were alerted to the accident, we immediately diverted to the scene to render assistance,’ said Capt. Heidi C. Agle, commodore of U.S. Amphibious Squadron 11. ‘However, the efficiency of the Korean response eclipsed the immediate need for our assets.’)고 보도하면서 사고 초기 한국 정부의 대응이 미숙했음을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미 해군함정인 ‘본험 리처드’함에서 구조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 AP 연합
“‘빨리빨리’ 한국적 문화에서 아직 못 벗어나”

주요 외신들은 이러한 정부의 대응 미숙에 대한 비난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침몰 선장의 행동을 ‘살인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한 점도 집중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월21일 “세월호 승무원들을 살인죄로 선언함으로써 미리 판결을 내린 것은 확실히 그릇된 일”이라며 “6월4일 지방선거가 두려워서인가”라는 비판 의견을 게재했다. 영국 가디언도 21일 박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서방 세계에서 아마 어떠한 지도자라도 이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국가적 참사에, 그렇게 느린 대응을 하고도 지지율이나 직위 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가디언은 “징벌을 바라는 희생자 부모와 대중의 바람은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책임과 고의적인 의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라며 “부주의에 의한 죽음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살인자’로 낙인찍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라며 박 대통령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번 참사의 원인에 대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LA타임스는 24일 “한국이 절망적인 가난에서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이번 사고는 마치 ‘제3세계의 재난’을 보는 듯하다”고 썼다. 이 매체는 “이번 참사는 한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으며 오바마의 방한을 준비하고 있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LA타임스는 “젊은이는 연장자에 대해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선장의 선내에 있으라는 지시를 그대로 따라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 큰 파문을 몰고 왔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24일 “‘재난의 땅’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대형 사고가 잦았던 한국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192명이 사망한 이래 대형 참사가 없었지만, 이번 사고로 이러한 저주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른바 ‘빨리빨리’라는 구호로 일을 단시간에 끝내려는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한국에서 3000여 명의 학생을 포함해 매년 약 3만1000명이 사고로 사망해 전체 사망자의 12.8%를 자치한다”며 “이는 주요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상당히 높은 비율에 속한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은 이번 국가적 참사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표시하면서도, 아직도 안전 문제에 관해 국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실을 수치스러워한다. 세계 시장을 압도하는 스마트폰 등 일류 기술을 가졌지만, 정부 관리들의 안전에 관한 법 집행은 이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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