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잘되는 꼴은 절대 못 본다”
  • 김현일│대기자 ()
  • 승인 2014.04.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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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안상수 ‘앙숙 2라운드’…경남지사 경선 곤욕 치른 홍 지사의 복수전

“홍준표와 안상수의 앙숙 관계가 드디어 막을 내리는가 보다.”

역설적이지만, 지난해 불거졌던 안상수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의 경남도지사 경선 도전은 홍준표 현 지사와의 앙숙 관계 청산의 서막으로 비쳤다. 몇 개월의 경선 기간 동안은 두 맞수의 혈전이 불을 보듯 빤할 테지만, 일단 여당 공천 후보가 확정되면 두 사람 간의 갈등이 ‘공식적’으로는 종식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월6일 안 전 대표가 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180도 돌변했다. 도지사 도전은 포기했으나 대신 창원시장에 나서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홍 지사의 다른 도전자인 박완수 당시 창원시장을 도지사 후보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자기 대신에 박 전 시장을 내세워 홍 지사의 연임을 저지하겠다고 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정말 앙숙답다”라는 말이 무성했다.   

“명색이 여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기초단체장에 나서는 게 격이 맞느냐”는 우려도 상당했지만, 어쨌거나 안 전 대표는 도지사 불출마 선언을 통해 앙숙 청산이 아닌 ‘제2 앙숙 시대’ 개막을 알렸다. 이런 표현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선 경남도와 창원시의 관계 때문이다. 지금의 민선 도지사와 민선 시장 관계는 예전 임명직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행정 직제상 상하 관계에 있다지만, 엄격한 상명하복의 사이는 아닌 것이다. 더구나 경남 도청이 자리한, 330여 만 경남 인구의 약 3분의 1이 밀집해 있는 통합 창원시의 수장은 도지사라고 해서 함부로 하기 어려운 존재다. 재정 보조나 인사권 일부를 무기로 흔들 대상이 아닌 것이다. 시장이 작심하고 치받으려 든다면 지사로서는 여간 낭패가 아니다. 차라리 앓는 이를 달고 사는 게 나을 정도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4월1일 창원시 한 호텔에서 열린 명사 초청 강연회에 나란히 참석한 ‘맞수’. 특강을 위해 창원에 온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가운데) 좌우에서 안상수 창원시장 예비후보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 지사, 배한성 전 시장 밀며 ‘안상수 견제’

‘제2 앙숙 시대’가 실제 도래하려면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홍준표 지사가 6·4 지방선거 본선에서 승리하고, 창원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안 전 대표 역시 새누리당 경선에 이어 본선에서도 당선돼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홍 지사는 4월14일 실시된 당 경선에서 대의원·당원·일반국민 등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52.5%를 얻어 47.5%를 얻은 박완수 후보를 꺾었다. 하지만 신승이었다.

홍 지사가 애를 먹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당시 고분고분하지 않은 홍 지사에게 불만이 가득했던 새누리당 중앙당은 노골적으로 박 전 시장을 지원했다. 홍 지사가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것도 한 요인이었다. 박 전 시장은 안상수 전 대표와 친박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거세게 추격했고, 지역에서는 박 전 시장이 홍 지사를 꺾는 이변을 연출할 것이란 전망도 심심치 않았다. 위기를 느낀 홍 지사는 박 전 시장을 공공연히 지원하는 도내 지역구 여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2년 후 총선 때 되갚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야 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제 관심은 새누리당 창원시장 후보 경선에 쏠린다. 세월호 참사로 연기된 경선은 지명도에서 안 전 대표가 앞선다지만, 경남도지사 경선만큼이나 예측을 불허한다. 경남도지사 경선이 박완수 전 시장을 ‘앞세운’ 안 전 대표의 대리전이었다면, 창원시장 경선은 배한성 전 창원시장을 ‘내세운’ 홍 지사의 대리전 양상이다.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앙숙다운 혼전이다.

본래 새누리당 창원시장 예비후보 등록자는 7명이었으나 후보 단일화, 자진 사퇴, 경선 불참이 이어지면서 이제 안상수 전 대표와 배한성 전 시장 두 사람만 남았다. 그런데 배 전 시장은  ‘홍준표 사람’이다. 2012년 경남도지사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홍 지사는 배 전 시장을 경남개발공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지원해왔다. ‘반(反)안상수 연대’를 표방했던 배 전 시장과 이기우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4월17일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론조사에서 앞선 배 전 시장이 단일 후보가 됐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창원시장 경선은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해 시장까지 된 지방 공무원 출신과 집권 여당 대표 출신의 한판 승부로 좁혀졌다. 경남도지사 후보 경선 당시 박완수 전 시장과 안 전 대표를 싸잡아 ‘보온병 연대’라고 비아냥거렸던 홍준표 지사의 반격 기회가 온 셈이기도 하다. ‘보온병 연대’란 안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북한의 포격이 가해진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 보온병을 북한이 쏜 포탄처럼 언급한 것을 희화화한 말이다. 병역 미필자라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기도 한데, 홍 지사는 2010년 당 대표 경쟁을 하던 안 후보를 공격할 때면 항상 ‘보온병’과 ‘개 소송’을 들고나왔다. 개 소송이란 안 전 대표가 이웃 집 개가 시끄럽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꼬집은 것으로 그의 기본 자질이 부족하다는 험구였다.

안상수-배한성 양자 대결로 압축된 새누리당 창원시장 경선은 마산시와 진해시가 흡수돼 통합 창원시가 된 2010년 이래 줄곧 불협화음이 이어지는 창원권과 마산권의 지역 대결 양상을 띤다.

‘반안상수 연대’를 결성했던 배한성(오른쪽)·이기우 예비후보가 4월17일 배 후보로 단일화했다. ⓒ 연합뉴스
창원-마산, 뿌리 깊은 지역 갈등까지 가세

창원 원주민들 모임인 삼원회 이사장을 지낸 적이 있는 배 전 시장은 창원권이 지지 기반이다. 안 전 대표는 마산에서 초·중·고교를 나왔고 마산지검 검사로 근무하는 등 마산권에 연고가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절대 안 된다”며 온갖 수모를 감내하고 창원시장으로 진로를 선회했던 안상수 전 대표와, 턱 밑에서 자신을 괴롭힐 게 빤한 ‘안상수 창원시장’의 존재를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홍준표 지사 간 물밑 전쟁의 치열함은 웬만한 당 대 당 싸움과 비교도 안 된다. 안상수-배한성 대결에서 배 전 시장이 승리한다면 ‘제2 앙숙 시대’는 제1장을 열다 말고 잦아들 소지가 크다. 반대로 안 전 대표가 이긴다면 본격적인 ‘제2 앙숙 시대’가 전개될 게 분명하다.

안상수 전 대표가 홍준표 지사보다 8년 위지만, 똑같이 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고, 15대 국회 때 같은 당 소속으로 금배지를 달았고, 4회 연임을 했고, 똑같이 18대 국회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났다. 어디 그뿐인가. 원내대표와 당 대표최고위원 자리를 물려받은 사이다. 고향마저 이웃이다. 두 사람의 이력만 얼핏 살피면 아주 친밀한 지기(知己)처럼 보인다. 하지만 견원지간도 이렇지는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 으르렁거린다. 그런 두 사람이 정치 인생 후반 고향에서 마주쳤다.

한번 마음먹으면 물러서지 않고 독설도 마다않는 ‘홍준표 지사’와 노련한 경륜으로 되치기에 능한 ‘안상수 시장 후보’가 벌일 ‘제2 앙숙 시대’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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