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남서쪽으로 약 90㎞ 떨어진 섬 굴업도. 뱃길로 3~4시간이나 걸리는 이 섬은 생태학적으로 희귀한 동식물이 대거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까지 불린다.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이 순식간에 대립과 격돌의 장으로 변하고, 결국 한 남성이 의문의 죽음을 맞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2012년 2월 굴업도에서 50대 남성의 사체가 발견됐다. 그는 굴업도 개발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한국녹색회 이승기 정책실장이었다. 이 실장은 ‘굴업도의 영원한 지킴이’로 불릴 정도로 굴업도 사랑이 남달랐다. 그의 사망 원인은 당시 굴업도에서 산호초를 촬영하던 중 불의의 실족사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실장 측에서는 타살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당시 기자와 만난 녹색회 관계자는 타살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이 실장의 유지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도 이 실장의 사망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청해진해운, 굴업도 땅 녹색회에 무상증여
고 이승기 실장이 굴업도 개발 반대 운동을 주도한 이유는 CJ그룹의 계열사인 씨앤아이레저산업이 굴업도에 골프장·호텔·요트장 등 관광단지를 건설하는 ‘오션파크 개발 계획’을 2006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녹색회가 즉각 반발했다. 녹색회는 인천의 환경·시민단체 모임인 시민단체 연석회의와 연대해 개발 반대 운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해나갔다. 환경운동 경험이 일천한 녹색회가 굴업도 개발 반대 운동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구원파의 관계사로 알려진 청해진해운의 도움 때문이었다.
이번 참사를 겪은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2005년 굴업도 땅 1만3260㎡를 4억2000만원에 사들였다. 당시 청해진해운은 2004년까지 3년간 적자에 허덕이다 2005년에야 비로소 8억여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중 절반 이상을 뚝 떼어내 뜬금없이 서해의 한 외딴 섬에 투자한 것이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1년 후 이 섬은 CJ의 개발계획이 알려지면서 들썩이기 시작했다. 청해진해운 입장에서 보면 땅값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호재임에 틀림없었다. 실제로 당시 굴업도 인근 섬인 덕적도의 주민들은 개발 보상을 염두에 두고 CJ의 개발계획을 적극 찬성했다. 청해진해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생각지도 않은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청해진해운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2009년 7월 청해진해운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녹색회에 무상 증여한 것이다. 그 이유는 CJ의 개발 사업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굴업도에 ‘해양환경센터’를 건립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녹색회와 인천환경운동연합 등은 2010년 3월 ‘한국녹색회 소유 굴업도 토지에 관한 보존협약’을 맺기까지 했다. 녹색회 소유의 토지는 굴업도 선착장 인근에 위치해 이 땅을 빼고는 개발이 사실상 어렵다.
이때까지만 해도 녹색회의 굴업도 개발 반대 운동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녹색회는 2012년 이후부터 명확한 이유 없이 사실상 모든 사업을 중단했다. 이승기 실장의 죽음 이후 굴업도 반대 운동에 대한 녹색회의 입장은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당시 녹색회와 함께 굴업도 개발 운동에 반대했던 인천환경운동연합 측에 따르면, 녹색회의 강력한 요청으로 협약을 맺고 개발 반대 운동을 함께 진행했으나, 섬 전체 콘셉트와 친환경 예술마을을 제안하는 국제 공모전에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인천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던 조 아무개씨는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 모임’이 주관해 공모전을 개최했고, 심사를 해서 당선작을 뽑았다. 그런데 녹색회는 당선자에게 설계권을 주기로 한 애초의 약속과 달리 공식 행사에 불참하는 등 갑자기 발을 빼 파행으로 치달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중간자 역할을 했던 이 실장 사망 이후 녹색회와 직접 접촉했으나, 녹색회는 그간의 과정을 모두 없던 일로 돌리고 자신들의 땅에 전혀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굴업도 관련 영화 <아! 굴업도>가 환경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됐을 때도 녹색회의 반대로 상영이 중단됐다. 결국 굴업도를 지키는 시민단체 연석회의가 2012년 7월 성명서를 통해 ‘녹색회가 굴업도 보전 운동에 걸림돌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녹색회와의 연대 운동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음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문제가 됐던 것일까. 녹색회와 다른 환경운동단체가 맺은 ‘한국녹색회 소유 굴업도 토지에 관한 보존협약’에 따르면, 해양환경센터는 ‘공용화’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굴업도 환경을 위한 연구소만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녹색회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굴업도 이장이었던 서 아무개씨는 “환경보호를 위해 굴업도 개발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특정 종교단체를 위한 시설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며 해양환경센터의 사용 목적을 분명히 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굴업도에 특정 종교단체 시설 환영 안 해”
마을 이장이 ‘특정 종교단체’를 거론한 것은 상당히 주목된다. 당시 굴업도 관련 영화 제작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종교단체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이 결속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이승기 실장이 사망하고 난 후 녹색회가 본격적으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녹색회는 유병언 전 회장 및 ‘구원파’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실에 따르면, 정윤재 녹색회 회장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청해진해운의 지분 4.81%를 보유한 대주주였다. 또 그는 구원파의 소식지 ‘글소리’에 대학교 4학년 때부터 구원파 신자가 됐음을 밝히는 글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회가 설립 초창기부터 유 전 회장과 관련성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발견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한국녹색회 발행 월간지 <원두막> 제2호(1984년 3월25일 발행) 및 3호(1984년 4월29일 발행)를 보면, “제호 ‘원두막’은 삼우트레이딩 유병언 사장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윤재 회장 및 다수의 구원파 신도들이 유 전 회장이 실소유하고 있는 회사들의 대주주 또는 임원과 녹색회 임원 등 주요 직책을 겸직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정 회장과 유 전 회장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다. 녹색회가 ‘구원파 왕국’, 더 나아가서 ‘유병언 왕국’ 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녹색회는 굴업도를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해답은 경북 청송에서 찾을 수 있다. 취재진은 녹색회가 ‘보현산영농조합법인’의 이름으로 매입한 경북 청송 지역을 직접 찾아가봤다. 천문대를 지나 올라가다 보면 보현산의 최정상인 시루봉이 나온다. 정상 풍경에서 산의 끝자락으로 시선을 옮기면 산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철조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철조망은 정상에서부터 갈천리에 이르는 2~3㎞ 구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현산영농조합법인이 땅을 매입한 후 설치한 것이다. 기자는 청송 주민들을 통해 “구원파가 폐쇄적 집단시설을 건설하려 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녹색회는 2002년부터 보현산과 관련한 환경운동을 시작했고 2003년에는 7건에 이르렀다. 땅을 매입한 시기부터 청송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이다. 녹색회는 환경친화적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명목으로 갈천리·무계리의 토지와 주택, 임야를 매입했다. 그런데 매매 과정에서 가옥과 임야 외에 노귀재 휴게소, 주유소, 여관, 식당, 소방차와 앰뷸런스까지도 매입한 점이 눈에 띈다. 안동 길안면에 위치한 폐교인 묵계초등학교도 매입했다. 당시 녹색회의 유입을 반대했던 지역 현안 사항 대책위원회 관계자 박 아무개씨(71)에 따르면, 묵계초등학교에는 경기도 안성의 금수원에 있는 것과 유사한 폐기차가 비치돼 있으며 그곳에서 모임 활동(구원파의 예배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 녹색회는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청송군 현서면의 가옥들을 매입했다. 마을 주민들은 “집 한 채에 1억5000만원을 제시했다” “2억~3억 얘기까지도 나왔다”고 증언했다. 빚에 허덕이던 주민 다수는 매매에 응했다. 녹색회는 ‘보현산영농조합법인’(대표이사 오태환)의 이름으로 등기를 이전했고 마을에는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반발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삶의 터전에서 낯선 타지 사람들에 의해 종교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데 대한 반감이 확산됐다. 현재는 대책위원회의 강력한 반대 운동으로 10명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다.
마을 폐쇄 위해 도로 공사도 반대
녹색회가 청송 부지를 매입한 자금은 80억원에 달한다. 2003년 당시 ‘환경운동연합’의 1년 예산이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녹색회라는 작은 단체가 이와 같은 막대한 토지 구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을까. 땅을 매입하기 전 청송군 산업소득과장과 현서면장 등을 안성으로 초청해 “우리가 보현산에 가면 청송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호텔 한 달 수입이면 청송군 1년 예산과 같다”고 유 전 회장이 말한 사실을 보더라도 기독교복음침례회가 당시 운영하던 세모그룹 계열에서 자금을 조달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고 대책위는 주장했다.
또한 마을 입구의 컨테이너를 산불 예방 명목으로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는 ‘본 통행로는 법인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녹색회가 들어오기 전부터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는 주민 정 아무개씨(68)는 “마을 주민들이나 방문객들이 산나물을 뜯기라도 하면 증거 사진을 찍고 구타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녹색회가 도로 공사를 반대한 것도 결국 마을을 폐쇄적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현산영농조합법인이 매입한 갈천리와 무계1, 2리 땅을 돌아보면 임야가 병풍처럼 일대를 둘러싸고 있어 자기들만의 ‘구원파(유병언) 왕국’을 만들려 했다는 정황을 뒷받침해준다. 도로가 개통되면 35번 국도에서 보현산의 기상대까지 최단거리로 올라갈 수 있어 많은 외부인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까지 받아 자연 훼손에도 지장이 없었던 도로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전국 각지의 녹색회 회원 15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고, “천혜의 절경인 보현산을 망치는 것”이라 주장해 결국 도로 공사가 중단됐다는 것이다. 현재 보현산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공사가 중단돼 끊겨 있는 상태라 더 이상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청송 주민들의 지속적인 반대로 난관에 봉착해서일까. 녹색회는 보길도·노화도·백령도 등 섬을 사들이는 쪽으로 눈을 돌린다. 굴업도 역시 그런 맥락으로 2005년에 청해진해운이 사들이고, 이를 녹색회가 2009년에 인수했다. 외부인의 접근이 웬만해선 쉽지 않은 도서 벽지 굴업도. 이 섬에는 지금 여전히 긴장감과 미스터리가 남아 있다. 굴업도 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이재현 CJ 회장과 아들 선호씨, 딸 경후씨가 모든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 회장 일가의 가족 회사다. 하지만 현재 이 회장이 횡령과 탈세 혐의로 구속되면서 굴업도 개발 사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 2 시사저널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및 유병언 전 회장의 유족과 합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두 번째 통합 정정 및 반론보도를 게재합니다. 1. 오대양 사건 및 5공화국 유착 관련 보도에 대하여 2. 구원파의 교리 폄하 및 반사회적 집단 이미지 보도에 대하여 3.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구원파 신도라는 보도에 대하여 4. 구원파의 내부 규율 및 각종 팀 관련 왜곡선정 보도에 대하여 5.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의 유병언 전 회장 지위 관련 보도에 대하여 6. 금수원 관련보도에 대하여 7. 유병언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설 및 경영개입 보도에 대하여 8. 유병언 전 회장 작명 관련 보도에 대하여 9.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유병언 전 회장 도피 관련 보도에 대하여 11. 유병언 전 회장 재산 및 대출 관련 보도에 대하여 13. 유병언 전 회장 신도 지시 보도에 대하여 14. 기독교복음침례회 모금 관련 보도에 대하여 15. 유병언 전 회장 개인 신상 보도에 대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의 좀 더 자세한 입장을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http://klef.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