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일가 페이퍼컴퍼니 더 있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5.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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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무리·TCM·스카이 등 정체불명 회사…수백억 거래 때마다 등장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정조준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4월28일 유 전 회장 측이 운영한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회사 2곳을 포함해 총 4곳을 압수수색했다. 문제의 페이퍼컴퍼니들이 하지도 않은 컨설팅을 빌미로 수년간 계열사들로부터 수수료 200억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에 연루된 페이퍼컴퍼니는 총 3곳이다. 대구의 ‘붉은머리오목눈이’, 서울 강남구의 ‘SL PLUS’와 ‘키솔루션’이다. 유 전 회장, 장남 대균씨와 차남 혁기씨가 각각 소유한 법인들이다. 이들 법인은 정식 등기가 되어 있지 않다. 다른 계열사의 감사보고서에 ‘특수관계자’ 등으로 일부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제대로 된 간판이 없는 등 정체가 은폐돼왔던 이들 개인 법인이 압수수색을 계기로 실체를 드러냈다.

그런데 현재까지 드러난 것 외에도 유 전 회장 측이 특정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다수 운영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주)세모·천해지 등 핵심 계열사가 옛 세모그룹으로부터 유 전 회장 일가로 다시 인수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회사들을 추가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 4월28일 서울 청담동 키솔루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연 매출 1억 회사가 200억여 원 동원

과거 세모그룹의 모기업이었던 (주)세모는 1997년 부도를 맞았다. 이후 2008년 초 법정관리를 벗어났다. 다판다, 문진미디어, 새무리, (주)세모 우리사주조합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주)세모를 인수하면서다. 모두 유 전 회장 일가와 밀접하게 관련된 곳들이다. 다판다는 유 전 회장 장남 대균씨가 최대주주다. 문진미디어는 차남 혁기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당시 구성된 컨소시엄의 이름은 ‘새무리 컨소시엄’이었다. (주)세모의 당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주주들에 대한 무상감자, 유상증자 및 출자전환 등으로 2000억원 상당의 채무가 정리된다. 특히 출자 전환을 통해 가장 많은 1155억원의 부채가 사라졌다. 이때 ‘새무리 컨소시엄’은 유상증자된 주식 336만9000주를 매입해 (주)세모를 인수했다. 총 168억원 상당의 돈을 투자했다. 2000억원이 넘는 부채를 안았던 회사를 그 10%도 안 되는 돈만 쓰고 인수한 셈이다. 그 결과 다판다(31%), 새무리(29%), 문진미디어(20%) 순으로 (주)세모의 대주주가 새로 구성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과정에서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새무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법인 등기부등본 등에 따르면 새무리는 2006년 3월 설립된 법인이다. ‘건강기능식품 관련 제품의 방문 판매’가 주요 사업 목적이다. 2007년 당시 자본 총액이 4억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법인 설립 후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2007년 12월, 은행권으로부터 223억원이라는 거액을 단기 차입한다. ‘인수 자금’ 명목이었다. 다판다 등은 이 과정에 부동산을 담보로 연대보증에 나서는 등 ‘들러리’를 섰다.

이뿐이 아니다. 2008년 초 (주)세모 인수가 마무리된 후 그해 새무리의 차입금 223억원이 깨끗하게 상환된다.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연 매출 규모 1억원대에 자본금 4억원에 불과한 회사가 어떻게 이렇듯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컨소시엄을 주도한 새무리가 (주)세모를 인수하기 위한 페이퍼컴퍼니가 아니었나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 전 회장 측이 (주)세모 인수를 위해 내세운 ‘바지 회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새무리가 수백억 원을 자체 동원할 정도로 독립적인 회사가 아니라는 정황이 다수 확인된다. 2006년 4월 등기 당시 새무리 본점의 주소는 (주)세모의 본점 주소와 일치했다. 2006년 12월 옮긴 본사 역시 (주)세모 본점과 차로 10여 분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건강식품 생산을 주로 하는 (주)세모와 방문 판매를 사업 목적으로 하는 새무리 간에는 연관성이 깊다. (주)세모 인수 자금이었던 단기 차입금 223억원을 상환한 바로 그해, 새무리는 운영 자금 2000만원을 다름 아닌 (주)세모로부터 차입하기도 했다.

4월29일 취재진이 직접 찾은 새무리 본점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옆 사무실의 한 직원은 “중년 남성과 여성 단둘을 제외하고는 출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청소를 하러 온다. 청소 도중 문이 열려 있을 때 안에 건강식품이 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황 아무개씨는 과거 세모의 생산부장으로 일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등기상 주소지에 회사 존재 안 해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회사는 또 있다. 새무리 컨소시엄이 구성돼 법정관리가 끝나기 전까지 (주)세모는 ‘TCM KOREA INVESTMENT LTD(TCM)’라는 회사가 정리채권의 최종 권리자였다. (주)세모 본점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TCM은 아일랜드에 있는 해외 법인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TCM이 정리채권의 최종 권리자이던 당시 아일랜드의 회사 주소지를 수소문해본 결과, 현재 그곳에 관련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TCM은 2004년 당시 과거 (주)세모가 소유했던 부동산의 근저당권 지분을 다판다 등에 양도·이전했던 이력이 있다.

TCM처럼 정체불명인 투자회사는 주요 계열사인 천해지의 설립 과정에서도 보인다. 천해지는 과거 (주)세모의 조선 부문을 인수해 2005년 설립된 회사다. 천해지는 설립 직후 경남 고성의 토지 13만755㎡ 등을 담보로 559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받는다. 그런데 은행이 직접 근저당권자가 되지 않고, ‘스카이인베스트먼트제일차유한회사’(스카이)라는 회사가 중간에 낀다. 스카이가 해당 부동산의 근저당권자가 되고, 다시 스카이가 은행에 대해 559억원의 채무를 지는 식이다. 2007년 7월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

스카이는 법인 등기부등본에 천해지와 세모 간 조선사업본부 영업양수도 대금 관련 자금의 대출이 사업 목적으로 기재돼 있다. 등기상으로는 해산되거나 청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 있다. 본점 주소는 서울 중구의 한 대형 은행 본사다. 취재진이 직접 이곳에 찾아가 문의한 결과, 관련 주소에 해당 법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주)세모·천해지 등 과거 세모그룹의 핵심 사업 분야가 재인수되는 과정에서 ‘의문의 회사’들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수백억 원대의 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거래는 없었던 것인지 의문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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