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사용한 선거 문자 전화기 팝니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5.07 14: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보자들의 진화하는 선거법 피하기 꼼수 백태

대선, 총선, 지방선거 가운데 특히 지방선거에서 부정이 난무한다. 투표율이 낮고 지역 민심이 중요해 지역 유력 단체나 세력들에 의해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큰 까닭에서다. 이를 잘 아는 선거관리위원회도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금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백신이 개발되면 진화를 거듭하는 바이러스처럼 갈수록 교묘해지는 ‘선거법 피하기 꼼수’를 적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사저널은 오랜 기간 정당 내에서 선거법 관련 업무를 맡아온 당직자를 비롯한 정치권 및 선관위 관계자들을 통해 날로 진화하는 선거법 피하기 수법들을 들어봤다.

선거법 안 걸리는 마법의 전화기 있다?

선거철만 되면 삼성전자 갤럭시S나 애플 아이폰보다 더 인기가 많아지는 전화기가 있다. 선거 문자를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보낼 수 있는 ‘선거용 전화기’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나 후보는 ‘자동동보통신’ 방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자동동보통신은 컴퓨터 등의 장비를 이용해 같은 내용의 문자를 다수에게 보내는 것으로 이런 경우 문자를 보낼 때 총 5회를 넘기면 안 된다. 또 ‘선거운동 정보’ 표시와 수신 거부 방식도 함께 넣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20인 이하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우에 대해서는 횟수를 무제한으로 허용하며 ‘선거운동 정보’와 같은 문구를 넣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경우는 자동동보통신 방식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 최길수
이 허점을 이용해 ‘무한 문자’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게 선거용 전화기다. 한 번에 전화번호를 수십만 개씩 저장해 20개씩 쪼개서 문자를 수동으로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컴퓨터와 전화기에서 모두 문자를 작성할 수 있다. 해당 방식은 공직선거관리규칙 제25조 4의 1항 1호에 의해 자동동보통신의 예외 방식으로 분류된다. 선거운동원들은 이를 이용해 선거법을 무력화한다.

해당 전화기를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대량의 선거운동 문자를 보낼 수 있다. ‘선거운동 정보’나 ‘수신 거부 방법’이라는 문구를 넣지 않아도 되고 ‘5회 이하’가 아니라 무한정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자동동보통신보다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선거 때만 되면 많은 후보가  전화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보통 직접 구입하기보다는 대여하는 방식을 쓴다.

이 전화기는 극소수 업체가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는 그중 독보적인 곳으로 꼽히는 한 업체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봤다. 들어가자마자 팝업 창에 뜨는 것은 선관위와 해당 업체가 주고받은 질의서였다. 쉽게 말해 ‘우리 업체 전화기를 이용해도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으니 안심하고 쓰시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다. 메인 화면에는 ‘대통령도 사용하던 선거 문자 전화기’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다. ‘합법성’과 ‘효과성’ 면에서 ‘자신 있다’는 것을 고객에게 알리고 있는 셈이다.

ⓒ 일러스트 최길수
“나중에 합류할 테니 먼저 모여 있어”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가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 가서 밥값을 계산하게 되면 공직선거법 113조에 의해 처벌받는다. 그러나 이를 피해 ‘한턱 쏘는’ 후보자들이 있다.

우선 지역에서 후보자의 친한 친구가 동창 모임 등을 주선한다. 이들이 먼저 모여 단체로 식사를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주선자의 친구인 후보자가 “지나가다 들렀다”며 나타나 합석한다. 이후 주선자가 해당 밥값을 계산하고 자리를 마무리한다. 며칠 후 후보자가 주선자를 따로 만나 그에게 비용을 보전해주면, 결과적으로 후보자는 선거법을 피해 밥값을 지불한 것이 된다. 물론 자리에 모인 사람들 역시 해당 자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입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향응을 제공받은 자 역시 과태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일에 조용히 ‘표심’만 보여주면 된다.

실제로 선거철이 되면 이런 일이 많다고 한다. 정당에 몸담으며 오랜 기간 선거법 전문가로 활동해온 한 관계자의 말이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 상대 당 후보가 음식점에 모여 ‘심상치 않은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곧바로 현장에 갔지만, 당시 해당 후보자는 지나가는 길에 합류했다며 본인이 주선한 자리가 아니라고 발뺌했다. 결국 빤히 알면서도 그냥 힘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국회에 파견 나와 있는 중앙선관위 여의도지원단의 한 관계자 역시 “심증이 분명해도 발뺌을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난감하다. 선거법 공소시효는 6개월로 짧아 후보자는 돈이 오간 후에도 그 기간만 잘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 최길수
이름만 빼면 기부 행위도 ‘OK’

선거에 출마할 정치인이 지역구 양로원을 방문해 쌀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면 선거법에 위반될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쌀에 성명 등이 써 있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특정 정치인이 전달한 것으로 추정되더라도 이름이 표기돼 있지 않으면 법망을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제3자가 전달할 경우 법 적용이 더욱 엄격하다는 점이다. 후보자의 지인이 양로원을 방문해 후보자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쌀을 전달하면 공직선거법 115조(제3자의 기부 행위 제한)에 의해 처벌될 공산이 크다. 해당 법은 후보자가 쌀을 전달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보자는 차라리 직접 물품을 기부하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재력이 있는 정치인들은 평소 양로원 등 지역 시설에 자신의 이름이 삭제된 ‘구호물품’을 전달한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 지역의 한 국회의원이 지역구 시설에 쌀 등을 전달한 것을 상대 당이 선관위에 고발했으나 해당 의원 측은 오히려 “선거법을 준수한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누가 봐도 그 의원이 기부하는 것으로 ‘추정’됐지만 포장지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갈수록 음성적으로 위반이 이뤄져 단속이 힘들지만, 신고 포상금을 늘려 내부 고발을 활성화시키는 방법 등으로 부정 선거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