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의 천국’ 이대로 둬선 안 된다
  • 이현우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4.05.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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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 타파 위한 혁신적인 방안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퇴직 관료의 관련 기관 취업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기 오래전부터 언론이 수없이 이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절대로 고쳐지지 않은 뿌리 깊은 관료들의 복지 방책이었다. 고급 관료들이 퇴직 후 관련 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사회 곳곳에서 비리와 비효율은 지속될 것이다. 최근 언론이 작심한 듯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의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이미 보도된 것만 해도 모피아(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피아(금융감독원)·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조피아(조달청)·해피아(해양수산부) 등 일반인은 이름조차 생소한 비밀 조직들이 퇴직 공무원들의 후생복지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언론의 일회성 고발 기사가 과연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관료 구조에 대한 이해와 관료들의 사적 이득 추구를 방지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철의 삼각형’ 모형, 관료 속성 잘 보여줘

미국 정치에서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 모형이 관료제의 속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관료들이 이익집단 및 의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 이 모형의 핵심이다. 관료들은 이익집단의 로비를 받는 대신 낮은 수준의 규제와 편향적 혜택을 제공한다. 관료들은 재선을 목표로 하는 의원들에게 정보 제공이나 정책 수행을 통해 개별적 혜택을 주고, 의원이나 위원회로부터 예산 배정을 포함한 정치적 지지를 획득해 관료 권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간다. 또한 관료들은 이익집단을 통해 의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민주 국가에서 이익집단이 이익을 표출하고 의회가 이를 반영해 법을 제정하며 관료는 법에 근거해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기본 틀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관료가 이익집단이나 의회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되어버렸다. 국가의 행정이 확대될수록 관료들의 전문성과 조직의 세분화가 심화되고, 관료 조직에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권력 증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4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사과를 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료의 영향력이 커지고 퇴직 후 이들의 재취업이 야기하는 부작용을 제대로 짚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관료 개인에 대한 규범적 비난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개인의 사적이익을 추구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관료들에게 이를 억제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 마피아 조직을 와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공무원이 퇴직한 후 공직 시절의 정보나 지위를 이용해 관련 기업에 취업하려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영국·독일 등 관료제가 발달한 다수의 국가에서 퇴직 공무원의 업무 관련 기관 취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적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직위에 해당하는 업무 관련성을 고려해 취업 제한 기간을 영구 제한, 2년 제한, 1년 제한, 적용 제외 등 다양하게 정하고 있다. 적용 대상도 사안에 따라 모든 행정부 공직 퇴직자, 고위직 또는 특정 지위자, 입법부 구성원의 적용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특히 퇴직 후 취업 제한은 사적 부문에 종사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수행하는 업무 유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효과가 크다고 하겠다. 위반 시 처벌 규정이 엄격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정을 갖고 있다. 취업 유예 기간을 퇴직 후 2년 이내로 하고, 사전 승인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범위를 영리 사기업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영리 조직이라도 유급으로 종사하는 경우에는 취업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명시해두고 있다는 점에서 재취업의 범위를 좀 더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우리와 유사한 내용의 연방공무원법을 두고 있다. 취업 제한은 일반적으로 퇴직 후 3년이며, 조기 퇴직자는 5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 취업 제한 대상 업체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으나, 자문 형태의 취업도 퇴직 전 5년간 담당한 업무에 의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규정을 어길 경우에는 연금 박탈이나 연금액 삭감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단순하고 즉각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 이전에 이미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상당수 있지만 아직 본회의에서 심의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취업 제한 기간과 관련해 퇴직일부터 2년 동안 퇴직 전 5년간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 등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을 퇴직일부터 3년으로 늘리자는 법안이 있다. 현행법상 공직 퇴직 후 사기업 취직 시에만 적용되는 취업 제한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출자·출연·보조를 받는 기관·단체 및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단체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법률안이 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퇴직 공무원 재취업 현황 정보 공개돼야

취업 제한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무원이 퇴직 후 취업이 제한되는 사기업체 등에 취업하려는 경우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취업 제한 여부의 확인을 요청하거나 취업 승인을 요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취업 제한 건수는 전체 요청 310건에서 22건, 2012년 205건에서 6건, 2011년 164건에서 17건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는 과연 심의위원회가 제대로 심사를 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따라서 먼저 심사 결과를 공개하도록 해 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별로 흩어져 있는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심사 기능을 통합해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취업 제한 심사위원회 신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퇴직자 재취업의 악영향은 결국 전관예우의 관행이 핵심이다. 현직 관료가 선임자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데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개인적 관계도 작용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향후 자신도 그 같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시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독점적 충원 방식이 관료 집단 내부의 결집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이들 간의 사적 이익 추구 도모를 용이하게 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무원 충원의 개방이 필요하다. 정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한 공무원 충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직책에 순수한 민간인 충원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다. 이뿐만 아니라 개방 형식으로 충원된 공무원이 고시를 통해 충원된 공무원들로부터 ‘왕따’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직 충원 경로를 다양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 다양한 개선 방안들이 강구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기본적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 과정에서 과정의 공개성과 처벌의 엄격성이 반영되어야 한다.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현황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고, 아울러 재취업에 대한 심사가 있었다면 심사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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