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스무 살 청년 옹립한 ‘킹메이커’
  • 이영종│중앙일보 기자 ()
  • 승인 2014.05.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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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당·군 장악한 ‘황병서 천하’…요동치는 김정은 권력

요즘 평양에서 잘나가는 권력 실세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 있다. 북한 권력의 쌍두마차 격인 당과 군부의 핵심 요직을 한 손에 거머쥔 황병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4월 중순부터  김정은 체제 권력 사다리의 정점을 향해 거침없이 올라갔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는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모습이란 표현까지 등장한다.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 실린 그의 모습은 연일 화제가 됐다. 국내 언론들이 ‘황병서가 도대체 누구냐’고 관심을 가지면서 뉴스메이커로 급부상했다.

황병서의 약진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다. 지난 4월26일에는 김정은이 최고책임자를 맡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에서 황병서에게 차수 계급을 부여하는 결정이 나왔다. 4월15일 상장(우리의 중장에 해당)에서 승진해 대장 계급을 처음 달고 나타난 것이 확인됐는데, 불과 10여 일 만에 차수가 된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상장에서 2계급 진급이 결정됐다. 북한군에서 왕별로 상징되는 차수는 대장 위의 계급으로, 김정은이 갖고 있는 ‘원수’ 칭호 바로 밑이다. 차수 계급장을 달고 있는 인물은 군 원로를 중심으로 6명에 불과한데, 대부분 원로에 대한 예우 성격이 강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실세인 황병서의 경우는 각별하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로 건설한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의 노동자 합숙(기숙사)을 시찰했다고 로동신문이 4월30일 전했다. 시찰에는 지난 4월26일 차수로 승진한 황병서(동그라미)와 노동당 간부들이 수행했다. ⓒ 연합뉴스
“예상치 못한 김정은을 후계로 밀어붙여”

노동당 내 황병서의 직위 변화도 관심을 끌었다. 김정일 시대인 2005년 5월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맡은 그는 9년 만인 지난 3월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의 핵심 중 핵심으로 불리는 조직지도부는 권력 주요 포스트의 조직 문제와 인사를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그는 이곳에서 군 고위 간부들의 인사를 챙기는 부부장을 오랜 기간 맡아왔다. 4월 말에는 김정은이 주재한 당 중앙군사위에서 군사위원으로 선출됐다. 정보 당국이 한동안 황병서의 직책을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워낙 전광석화처럼 직책과 계급 변동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통일부·국정원 등 대북 부처는 황병서가 1949년생으로 올해 나이는 65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출생이나 출신학교는 물론 가족관계 등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만큼 권력 전면에 나서거나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황병서의 인물 정보 프로필에는 2004년 12월 ‘김정일의 북한군 제667부대 시찰 시 수행’이란 대목이 가장 나중의 공개 활동 동정으로 올라 있다.

수행원 명단 정도로 등장하던 황병서가 북한 권력에서 출세가도에 접어든 건 2010년 9월 북한군 중장(우리의 소장에 해당)에 오르면서다. 황병서의 당시 중장 승진은 김정은 체제의 등장과 궤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시 26세이던 막내아들 김정은을 자신의 후계자로 추대한 노동당 3차 대표자회가 열린 시점이란 점에서다. 후계 권력을 뒷받침할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황병서가 발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후 황병서는 김정은의 군 관련 활동을 중심으로 밀착 수행하며 권력 안착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김정일 사망 때 황병서는 장례위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김정은 체제의 권력 실세로 부상할 것임을 예고했다. 장례식을 치른 직후 김정은이 2012년 새해 공개 활동 일정으로 평양 근교 105탱크사단을 방문했을 때 수행한 인물이 황병서다. 6·25 당시 소련제 탱크를 서울에 가장 먼저 진주시키며 중앙청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단 105사단을 김정은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걸 두고 북한 관영 선전 매체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오고 있다. 김정은이 그해 3월 판문점에 나타났을 때도 황병서는 김정은의 곁을 지켰다.  

황병서의 급부상을 두고 북한 권력 사정에 밝은 대북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권력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오던 최측근 파워엘리트 진용이 본격적으로 선보일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대북 첩보를 바탕으로 황병서가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 중 사망한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가 자신의 소생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앉히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황병서가 숨은 공신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고영희 사망 때 김정은은 스무 살에 불과했다”며 “어린 막내를 후계자로 삼을 것이란 생각을 한국은 물론 주변국 정보기관들이 못하던 어려운 상황에서 김정은 쪽으로 밀어붙인 게 황병서”라고 설명했다. 이복형인 김정남과 친형 김정철 등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종 낙점을 받는 과정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뛴 황병서를 김정은이 챙기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황병서의 약진은 김정은 권력의 ‘후견 3인방’이 사실상 모두 몰락한 시점에 나왔다. 고모부 장성택은 지난해 12월 국가 전복 혐의로 처형됐다. 장성택 숙청은 아버지 김정일이 만들어준 보호막을 걷어내고 자신의 권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선포였다. 장성택 처형 직후 부인 김경희는 공개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4월 개막한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도 김경희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4월 말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김정일·김정은의 과거 활동 동영상에 김경희가 그대로 등장하면서 숙청보다는 활동 중단 상황이란 해석이 힘을 얻었다.

장성택·김경희 부부가 권력 전면에서 사라진 후 경쟁자가 없는 듯하던 ‘2인자’ 최룡해에 대해서도 최근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2월 김정일 생일 행사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서 건강 이상설에 시달렸다. 북한 TV에 등장한 그가 다리를 저는 모습이 포착되자 당뇨에 걸렸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정보 고위 당국자는 담석증으로 평양 봉화진료소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김정은 한두 발짝 뒤에서 조용한 처신

관심거리는 차수 계급장을 단 황병서가 현재 북한 권력 내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견해는 엇갈린다. 황병서가 최룡해의 권력 내 위상 약화를 틈타 2인자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란 견해가 일단 힘을 얻고 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군부 과외교사 격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축출하고, 장성택을 제거하는 등의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을 최룡해의 권력 내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다는 진단이다. 평양판 토사구팽이란 것이다.

최룡해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건강 문제 등으로 일시적 난관을 겪고 있지만 권력 내 위상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4월26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에서 맨 앞줄에 앉은 인물 중 최룡해가 포착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일부는 “북한 TV 화질 등의 문제로 최룡해가 분명한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권력의 최고 핵심에 바짝 다가섰지만 황병서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노동당과 군부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경쟁적으로 김정은에게 밀착하려 애쓰는 와중에도 황병서는 한두 발짝 떨어져 서 있다.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킹메이커’ 황병서에게 날개를 달아준 김정은의 다음 카드가 무엇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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