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마르 미안해, 이번만은 응원할 수 없어”
  • 브라질=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5.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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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월드컵 회의론…빈민가 곳곳 반대 시위

“미안해, 네이마르. 그래도 말이지, 이번만큼은 당신을 응원할 수 없어. TV에서 우리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는 데 지쳐버렸어.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자신들만 생각하지.”

2014 브라질 월드컵이 5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개최국 브라질에서는 지금 이런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 브라질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국민 아이돌과 다름없는 네이마르를 응원할 수 없다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6월13일 개막전이 열릴 ‘상파울루 아레나’는 이런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다. 기자가 4월17일 도착한 브라질 최대 도시이자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라고 하지만, 부유층과 빈민층이 뒤섞인 모습, 불결함과 새로운 번영이 혼재한 풍경은 상파울루가 만만치 않은 곳임을 직감하게 했다. 그런 상파울루의 중심지를 한참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하면 거대한 건축물과 마주할 수 있다.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상파울루 아레나다. 아직 완전하게 위용을 뽐내지 못한 채 공사 중이다.

4월18일, 월드컵 개막을 50여 일 앞두고 아직도 공사 중인 상파울루 아레나. 4월24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월드컵 개최 반대 시위대(작은 사진)와 경찰이 충돌했다.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EPA연합
상파울루 도처에 빈민가가 있지만 특히 동부 지역은 더 가난하다. 동부 지역에만 약 600만명이 산다. 하지만 정돈된 거리보다는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과 그래피티 아트를 닮은 낙서가 인상 깊은 곳이다. 이런 지역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희고 웅장한 상파울루 아레나는 이 지역을 낙후에서 건져줄 구세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여러 번 ‘옐로카드’를 받았다. 공사가 늦어져서다. 카드를 꺼낸 심판은 FIFA다. “공사가 늦어진 정도가 아니라 일정에 차질이 생길 만한 수준”이라는 게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의 생각이다. 경고를 받을 때마다 브라질 월드컵조직위원회는 자신만만했다. 심지어는 지난해 말까지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개막이 50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공사장에서는 굉음을 내며 기계들이 돌아가고 있다. 조감도에 그려진 휘황찬란한 모습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주경기장은 굉음 내며 기계 돌아

4월17일 취재진을 실은 차량은 상파울루 아레나에 접근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경기장이니 제대로 된 입구조차 없다. 구경이라도 해보려고 하면 일단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경비원에게 관람 허가증을 들이밀고 나서야 지하 주차장을 통해 조심스레 상파울루 아레나의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공사 중이니 안전모는 필수다.

그라운드에서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푸른 잔디와 하얀 천장이 눈에 띈다. 하지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골조, 관중석 공사와 씨름 중이다. 6만8000석 규모지만 아직 1만8000석이 설치되지 못한 채 빈 상태다. 내부 시설도 공간만 마련됐을 뿐 채워지지 못했다. 마치 새로 이사 간 텅 빈 집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룸은 좌석과 기자회견을 위한 단상만 배치됐다. 기사와 화면 전송을 도울 그 어떤 인프라도 구축되지 못했다. 보통 국제 스포츠 행사를 순조롭게 보도하기 위한 IT 시설을 구축하려면 2~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차에 올라 경기장 주변을 한 바퀴 돌면 비포장 지대가 가득하다. “진입은 어떻게 하지?” “주차장은?” 함께 본 사람들의 입에서는 의문이 터져나왔다. 이 경기장은 우리에게도 선을 보일 예정이다. 6월26일 우리 축구 대표팀이 벨기에와 일전을 치를 장소다. 상파울루 아레나의 월드컵 예비 리허설은 5월17일 벌어지는 SC 코린치안스와 피게이렌시의 시범경기다. 브라질 월드컵조직위는 공사가 끝나지 않더라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준비 기간에 비해 더딘 공정은 그만큼 브라질의 월드컵 준비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14년 3월을 기준으로 브라질이 월드컵경기장과 주변 시설을 정비하는 데 사용한 돈은 약 70억 달러다. 4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지출한 금액의 4배에 달한다. 브라질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총지출 예산은 FIFA에서 받은 지원금을 포함해 110억 달러다. 원래 10억 달러로 예상됐던 12개 경기장 개장 비용으로 이미 35억 달러가 사용됐다. 나머지 75억 달러는 56개 인프라 프로젝트에 쓰인다. 여기에는 공항·지하철 등의 건설도 예정돼 있다. 그런데 현재 완성된 프로젝트는 겨우 7개에 불과하다. 대다수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있다.

월드컵 개최가 확정됐을 당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월드컵 준비를 위해 공적 자금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개발은행(Brazilian Development Bank)은 월드컵 개막까지 브라질의 월드컵 관련 부채가 3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금 낭비하지 말라” 빈민층의 분노

“아름답고 큰 경기장을 건설하지만 학교와 병원은 거의 붕괴되고 있다.” “삶은 골보다 가치 있다. 브라질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월드컵 개최에 항의하는 시위는 브라질 각지에서 발생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부동산 버블을 틈타 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비포장도로와 상·하수도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낡은 벽돌집에서 아파트를 바라보고 사는 빈민가 사람들이 시위의 선봉에 섰다. 파라이조폴리스 등 상파울루의 빈민가, 콤플레소 다 마레 등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세금을 낭비하지 말라”로 집약된다.

실제 기자가 브라질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브라질 TV는 이들의 시위와 경찰의 진압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었다. 4월22일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 부근 빈민가에서 항의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경찰과 충돌했는데 시위대 중 한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정부는 치안 불안의 원인으로 꼽히는 빈민가를 ‘청소’하기 위해 중무장 경찰을 투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브라질의 인터넷 매체인 ‘메가브라질’ 아소 마사토 편집장은 “이들 빈민층은 브라질의 급속한 경제 성장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축적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에게 축구는 여전히 즐거운 오락이지만 월드컵을 유치한다고 해서 형편이 개선될 리 없다는 점은 비극이다. 마사토 편집장은 “브라질에서 공립병원의 진료는 무료다. 그런데 공립병원 앞은 빈민가 환자가 장사진을 이루고 짧은 진료를 위해 여러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시설이 좋은 사립병원에서 진료하는 데 필요한 민간 의료보험은 보험료가 높아 국민 4명 중 1명만 가입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새로운 경기장보다 병원 건설을!”이라는 시위대의 호소는 예산 배분 순위에 항의하는 정직한 외침인 셈이다.

월드컵을 두 달여 앞둔 4월8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 중 월드컵 개최에 찬성하는 사람은 48%, 반대하는 사람은 41%였다. 축구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이 같은 결과는 국제 스포츠 행사를 앞둔 브라질의 민심이 사나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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