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공포, 후쿠시마가 자꾸 떠올라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5.0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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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정부, 시민사회 반핵 요구에 제4 원전 건설 전격 중단

“정부와 당은 제4 원전의 안전검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1원자로를 봉쇄하고 2원자로의 건설을 즉각 중단한다.” 4월27일 타이완 집권 여당인 국민당 판장타이지(范姜泰基)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수년간 논란이 되어온 제4 원전 건설을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국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과의 회견을 끝낸 직후 나온 발표였다. 판 대변인은 “제4 원전의 상업적 가동 여부는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에너지 공급의 미래를 보장하고자 조만간 국가급 회동을 갖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수도 타이베이(臺北) 도심에는 12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국반핵행동’이 주도한 시위에 5만여 명이 참가했다. 하지만 시위대 누구도 타이완 정부의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다. 제4 원전은 3300억 타이완 달러(약 11조286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97.5%의 공정률을 보여 완공이 코앞이었다. 1999년 시작한 공사는 올해 끝나며, 2016년 가동을 목표로 매진해왔다. 사업을 책임진 타이완전력공사 황충추(黃重球) 회장은 줄곧 “제4 원전 건설이 중단될 경우 회사는 파산하게 된다”고 읍소했다. 그런데도 타이완 정부는 무슨 이유로 완공을 코앞에 둔 원전 건설을 전격 중단한 것일까.

2014년 3월8일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 도심에서 벌어진 원전 반대 시위. ⓒ EPA 연합
한국과 닮은꼴 타이완의 원전 역사

타이완의 원자력발전 역사는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제1 원전인 ‘진산(金山)’ 1호기는 1971년 착공해 1977년 완공한 후 1978년 12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우리의 첫 원전인 고리 1호기와 착공·완공·상업운전 연도가 모두 일치한다. 수명이 끝났던 진산 원전은 정부의 승인을 얻어 2008년 1호기, 2009년 2호기를 10년간 재가동했다. 이 또한 고리 원전 1호기의 궤적과 똑같다. 현재 타이완은 진산 원전 외에도 1981년부터 제2 원전인 ‘궈성(國聖)’을, 1984년부터는 제3 원전 ‘마안산(馬鞍山)’을 운용 중이다. 타이완이 원전 사업을 시작한 것은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2011년 한국전력공사가 발표한 전력 매입 단가를 보면, 원자력은 39.2원/㎾h로 석탄(67.2원/㎾h)의 58%에 불과하다. 1970년대에는 아직 사용 후 핵연료의 처분 문제가 돌출되지 않아 원자력이 깨끗한 전력원이라는 환상이 만연했다.

1974년과 78년 일어난 석유 파동은 전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 붐을 불러왔다. 1980년대까지 타이완과 한국은 군사정권이 집권하고 있어 반핵(反核) 움직임을 철저히 짓밟았다. 타이완에서 원전의 위험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87년, 38년 동안 지속된 계엄령이 해제되면서부터다. 한 해 전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민주화 물결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원전 가동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1992년 제4 원전인 룽먼(龍門) 건설이 결정되자 반핵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학자·대학생 등이 중심이 된 타이완환경보호연맹과 여성단체인 타이완주부연맹이 건설 반대 운동을 펼쳤다.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당 정부는 제4 원전 건설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제4 원전은 착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타이완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건설 중단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듬해 타이완 대법원은 “행정부의 결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고, 국민당은 건설 중단 반대 결의문을 입법원(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건설에 참여한 외국 기업들까지 공사비 위약금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위협하자 결국 천 총통도 뜻을 접었고 건설을 재개했다. 2003년 천 총통은 원전 건설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의 5%가 서명해 발의하고 정부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며 전체 투표율이 50%가 넘어야 하는 복잡한 절차로 국민투표 역시 유야무야됐다.

제4 원전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타이완은 일본과 같은 지진대에 위치해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1999년 9월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해 2060명이 죽고, 8672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규모 4 이상의 지진이 매달 발생했다. 섬나라에다 지진 다발국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타이완인들이 느낀 불안과 공포는 다른 나라보다 더욱 컸다.

크고 작은 반핵 시위로 타이완 전역이 떠들썩했지만 타이완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타이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안정적인 전력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제4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타이완은 전체 전력량의 19%를 원전에, 77%를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타이완 정부는 “건설이 중단되면 2018년부터 제한 송전이 불가피해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대체 에너지 개발을 등한시해왔다”며 “국민당이 관련 업계와 강력한 카르텔을 맺어 원전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성토했다. 실제 타이완은 섬나라인 데다 일조량이 많고 바람이 풍부해 태양열·풍력·해양 에너지를 개발할 입지조건이 뛰어나다.

타이완 정부는 끓어오르는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었다. 제4 원전의 운명을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투표율 기준을 낮추자고 맞섰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 이상이 제4 원전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총 유권자의 50% 이상이 참가해야 유효한 현행 국민투표를 기준으로 할 경우, 투표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총통 선거를 제외한 입법원 의원 및 지방자치 선거의 투표율은 50%를 갓 넘는 수준이다.

싸다는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 확인

4월22일 반핵운동가인 린이슝(林義雄) 민진당 전 주석이 제4 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면서 갈등은 고조됐다. 25일에는 마 총통과 쑤전창(蘇貞昌) 민진당 주석이 TV 생중계로 ‘끝장 토론’을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시민사회단체는 한층 강력한 행동에 나섰다. 체르노빌 사고 28주년인 26일 총통부 앞에서는 3만명이 참석한 반핵 집회가 열렸다. 다음 날 타이완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가장 큰 이유는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원전 건설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 총통은 중국과 맺은 경제협력협정(ECFA)의 서비스 분야 추가 개방 문제로 곤욕을 치렀고 현재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하다. 제4 원전 건설을 계속 밀어붙일 경우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타이완이 원전을 도입하고 확산시켜가는 과정은 한국과 흡사하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더딘 상황에서 원전은 분명 효율적인 전력원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이 확인됐다. 원전은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비용과 원전 해체 및 환경 복구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이런 비용을 합산하면 원자력의 발전 단가는 ㎾h당 154.3원으로 올라간다”고 발표했다. 타이완에서 벌어지는 논란은 원전 건설에 별다른 저항이 없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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