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의견은 ‘뒷전’, 안보 사업엔 ‘열중’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5.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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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재단, 국민 성금 편중 사용 논란…세월호 성금 모금에 반면교사

“동의하지 않은 성금 모금을 당장 중지해주세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가족이 4월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성금 모금 중단을 요청했다. 유가족대책위원회는 “현재 사조직이나 시민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금 모금은 유가족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에 성금을 하신다면 투명한 방식으로 한 라인을 구성해 모금액 전액을 장학금으로 기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잇따르고 있다. 대형 참사를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진 국민의 따스한 손길이 성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의 모금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성금 액수는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천안함 인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 4월15일 백령도 해상에서 함미가 크레인에 올려져 바지선에 적재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성금 모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체 실종자의 생사가 아직까지 확인되지도 않았고 배가 침몰한 원인과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조사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금 모금은 자칫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패막이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 성금 허투루 쓸까 걱정, 재단 설립 반대”

그런 측면에서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후 진행된 성금 모금 과정과 사용 내역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민 성금 모금운동은 KBS가 주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에 성금을 전달했다. KBS는 구조 수색 작업이 한창이던 그해 4월11일부터 특별 생방송을 통해 모금운동에 나섰다.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라를 지키다 발생한 사고로 젊은 장병들이 희생됐는데 정작 정부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사고 수습도, 원인 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모 방송과 모금운동이 펼쳐지는 데 대해 황당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 성금 모금운동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올렸다. 모금 총액이 395억5000만원을 넘겼다. 그런데 이렇게 거둔 성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KBS 내부로부터 유가족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할 경우 금액이 과다하게 돌아갈 수 있어 부작용이 있을 것 같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천안함 희생 장병의 한 유족은 “당시 모금이 생각보다 많이 됐다. 이 돈을 전부 가족에게 전달하면 이전 사건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기고 향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공동모금회에서 국민 성금 배분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주요 기탁자 대표, 시민공익 대표, 공동모금회 대표, 유족 대표 등 9명으로 구성됐다. 일단 유가족에게 지급할 조위금 액수부터 결정했다. 공동모금회는 2010년 5월31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유가족과 구조 작업 중 사망한 고 한주호 준위 유가족에게 5억원씩,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한 금양호 희생 선원 중 내국인 7명의 유가족에게 2억5000만원씩, 금양호 인도네시아 국적 선원 2명의 유가족에게 1억2500만원씩 등 총 255억원을 지급하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나머지 성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놓고 이견이 표출됐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유족들에 따르면, 위원회 내 다수는 호국정신을 기리는 ‘천안함재단’을 설립하자는 의견을 낸 반면 유족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위원회에는 유족 2명이 들어가 있었다. 당시 유족 대표로 위원회에 참여한 박형준씨는 “재단이 유가족의 뜻과 달리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방만한 운영이나 다른 사업 추진을 이유로 또 국민과 기업에 손을 벌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유족들 내부에서는 ‘우리를 위원회에 들러리 세운 게 아니냐’는 불만까지 제기됐다고 한다.

특별위원회와 무관하게 유족들 사이에서는 이미 국민 성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장학재단을 만들자’ ‘방위성금으로 내자’ ‘복지단체에 기부하자’ 등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족은 “가족들이 관리하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컸다. 돈이 욕심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국민 성금이 허투루 쓰일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동모금회에서 성금의 사용처는 기탁자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애당초 유족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없었던 셈이다”고 설명했다.

모금운동을 추진한 주최 측에서 처음부터 재단 설립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국민 모금을 주도한 KBS와 기업 모금을 맡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단을 만들자고 나서는 상황에서 유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재단 설립 얘기가 흘러나오자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희생자 유족들에게 전달해달라고 성금을 냈는데 왜 엉뚱한 곳에 사용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한 야당 정치인의 표현대로 ‘국민의 참담한 심정이 모은 고래 심줄 같은 돈’이었기에 사용처에 대한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재단 임원진 처음부터 한쪽으로 치우쳐”

우여곡절 끝에 천안함재단은 2010년 12월3일 공식 출범했다. 국민 성금 모금액 중에서 희생자 유가족 위로금을 제외한 잔여 성금 및 이자 146억7000여 만원이 설립 재원이 됐다. 논란은 계속됐다. 우선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 구성이 도마에 올랐다. 대전국세청장 출신으로 한국세무사회 회장을 맡고 있던 조용근 세무법인 ‘석성’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조 이사장은 평소 기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기부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2008년 4월9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점, 이듬해인 2009년 초 한상률 국세청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날 때 유력한 후임 국세청장으로 거론됐던 점 등을 볼 때 재단의 성격과 취지에 잘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이사장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로서 조용기 원로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복지재단 ‘사랑과 행복 나눔’ 감사를 맡기도 했다.

이사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신종익 사무처장, 기업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 엄치성 국제본부장, 해군본부 인사근무처장을 맡고 있던 오계록 해군 제3함대 부사령관, KBS 최초 여성 임원인 지연옥 KBS비즈니스 이사 등 4명이었다. 이들 중에서 오 부사령관이 2011년 후반기 인사에서 별을 단 후 물러났고, 그 자리에 변남석 해군본부 인사1차장이 앉았다. KBS 청주방송총국 국장을 지낸 유중근씨가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돌았다. 유 총장이 당시 김인규 KBS 사장과 가까워 천안함재단에 자리를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인규 전 사장은 현재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천안함재단에서 고문을 맡고 있다. 유 총장은 2013년 11월 예비역 준장인 박래범 총장으로 교체됐다.

한 천안함 희생 장병의 유족은 “재단에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분들이 모여들면 안 된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정치권의 입김을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균형이라도 맞춰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처음부터 한쪽으로 치우치니까 제대로 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암함재단에 유족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 하나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2011년 9월2일 유족 대표로 이인옥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 회장이 이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시사저널이 2011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열린 천안함재단의 이사회 회의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인사 관련 안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회의가 안보 교육 및 홍보 관련 안건으로 진행됐다. 2012년 5월 열린 이사회에서는 ‘안보 체험 실시 건’이 부의 안건으로 올라왔고, 의견 내용으로 ‘안보 체험 소요 예산 500만원 예상’이라고 돼 있다. 2013년 3월에 열린 이사회에서는 ‘예비비 사용을 위한 회계 처리에 관한 건’이 논의됐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대국민 안보 의식 고취 지원 사업에 새로운 목(진중문고 도서 기증)을 만들어 예비비를 사용하기로 함’이었다.

지난해 9월15일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46용사 묘역에 새로운 문구가 적힌 ‘오석 묘비’가 놓여 있다. ⓒ 연합뉴스
2013년 5월에 열린 이사회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금지 가처분신청에 따른 변호사 비용 지급에 관한 건’이 회의석상에 올라왔다. 가처분신청을 진행하고 있는 유족협의회에서 변호사 비용을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왔다는 것인데, 이사회는 재단에서 300만원을 유족협의회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한 달 뒤인 6월에 열린 이사회에서는 ‘영화 <NLL연평해전> 제작 후원 요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에 대해 이사회는 보고 사항이었던 <NLL연평해전> 제작 후원 요청 건을 부의 안건으로 변경한 후 1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같은 해 8월 이사회에서는 ‘천안함46용사 묘역 상석 교체 제작에 따른 지원 건’을 놓고 회의를 가졌다. 이사회는 1200만원을 지원해 묘역 상석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9월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천안함46용사 묘역 표지석이 교체됐다. 표지석에 새겨진 글 가운데 ‘서해안 임무 수행 중 희생된’이라는 문구가 ‘NLL 수호 업무 수행 중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전사한’으로 바뀌었다.

각종 안보 사업 ‘집중’, 생존 장병 지원엔 ‘인색’

천안함재단의 지출 내역을 살펴봐도 재단이 원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천안함재단은 천안함46용사 추모 사업과 유가족 지원 사업, 생존 장병 지원 사업, 호국정신 선양의 홍보·계승·보전·육성 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2011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천안함재단의 전체 수입은 이자 수익을 포함해 16억7000여 만원이다. 이 기간 전체 지출은 관리·운영비 4억6000여 만원에 고유 목적 사업비 11억5000여 만원을 더해 16억1000여 만원이다. 지출된 비용의 27.5%가 관리·운영비로 쓰인 셈이다.

고유 목적 사업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내역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안보 체험, 안보 강연 등 안보 관련 사업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비용을 합치면 전체 고유 목적 사업비 11억5000여 만원 중에서 4억2000여 만원이 ‘안보’에 집중 지출됐다. 생존 장병 지원에도 3억9000여 만원을 쓴 것으로 집계됐지만, 2011년 1월 2억9000여 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한 이후 이렇다 할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매달 지출 항목으로 잡혔지만 사용된 비용은 대부분 ‘0원’이었다. 학업과 취업, 치료와 멘토링 등에 지원한 금액은 모두 합쳐 5000만원 정도였다. 생존 장병 지원 사업에 포함된 수기집 출간에 2000만원 가까운 돈이 사용된 점을 감안할 때 젊은 장병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안함재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를 꺼리던 한 유족은 “조 이사장이 재단 운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임원 구성에서부터 설립 목적에 맞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사실 기대를 버린 지 오래됐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세월호 성금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희생자가 워낙 많아 성금 배분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학금 기탁의 경우 학생이 아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유족은 “일단 사고 수습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에 따질 것은 따지고, 고칠 것은 고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을 겪고 나서야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범래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천안함재단은 어느 단체보다 투명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며 “재단 설립 목적 범위 내에서 보편타당하게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총장은 “예산을 배정해도 집행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예산은 가용 예산으로 넘어가서 사업 계획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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