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공동체가 평화 유지에 큰 도움”
  • 우루과이=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5.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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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에서 만난 전직 대통령들이 강조하는 주변 강대국과의 공존 법칙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는 한국에서 땅을 파고 내려가면 나타나는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곳이다. 브라질·아르헨티나처럼 넓고 웅장하지는 않아도 유럽풍의 도시를 비롯해 곳곳에 천혜의 아름다움을 지닌 해변이 있다. 넓은 초원에서 뛰노는, 우루과이 인구 숫자보다 더 많은 소를 볼 수 있으며 자연과 인공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푼타 데 에스테 등 세계적인 휴양지가 즐비하다.

수도 몬테비데오는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라 플라타 강을 사이에 두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 도시 전체의 느낌은 다소 가라앉아 있지만, 꽤나 번성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시내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백 년 된 유럽 양식의 건물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몬테비데오를 찾는 관광객들의 첫 방문지는 아마도 대부분 독립광장일 것이다. 몬테비데오의 중심지이자 이곳을 경계로 몬테비데오 시내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기 때문이다. 독립광장 중앙에는 우루과이 독립 영웅 아르티가스의 17m 높이 기마상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우루과이 대통령궁도 이 광장을 끼고 있다. 광장 북쪽에는 우루과이 최초의 5성급 호텔인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4월22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ILC 국제지도자회의.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각자의 마음속에 평화가 숨 쉬고 있다고 확신한다. 평화를 굳게 믿으며, 평화란 각자의 삶의 모습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 저와 국민 모두가 이웃들에게 평화의 씨를 뿌리는 평화대사가 되기를 기원한다.”

남미 자유무역시장 ‘메르코수르’ 평화에 기여

2014년 4월22일 빅토리아 플라자 호텔에는 ‘평화의 비전’을 말하고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국경과 인종, 종교의 벽을 허물고 평화를 정착하자는 큰 틀을 논의하기 위해 천주평화연합(UPF)이 주최하는 국제지도자회의(ILC)가 이곳에서 열렸다. 천주평화연합은 통일교 창시자인 고 문선명 총재가 2005년 설립한, 민간 차원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초종교 비정부기구(NGO)다. 이날 ILC에는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78)·루이스 알베르토 라칼레(73) 우루과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남미의 거물급 지도자와 국회의원, 가톨릭 신부와 개신교 목사, 여러 종교를 망라한 성직자 등 300여 명이 모였다.

수많은 인사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는 두 우루과이 전직 대통령인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와 루이스 알베르토 라칼레였다. 두 사람은 우루과이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정치인이다. 상기네티 전 대통령은 1985~90년, 1995~2000년 두 번 대통령을 역임한 거물이다. 그 사이인 1990~95년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 라칼레 전 대통령이다.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 상대로 맞붙기도 했던 두 사람이 20세기 마지막 15년간 우루과이를 이끌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공통의 업적을 갖고 있다. 라칼레 대통령의 재임 시절 우루과이는 남미 자유무역시장인 ‘메르코수르(Mercosur)’ 설립에 참여했다. 상기네티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만든 메르코수르에 가입하며 지역 공동체 확산에 주력했다. 메르코수르는 남미의 결속력을 강화해왔다. 1995년 1월1일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4개국이 무역 장벽을 전면 철폐하면서 시작된 메르코수르는 현재 경제적 공동체를 넘어 정치적 결사체로까지 발전하고 있어 주목된다.

2008년 5월23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남미 대륙 12개국 정상과 정부 대표들은 정상회의를 통해 ‘남미국가연합(UNASUR)’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남미국가연합의 모태 역시 메르코수르다.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를 한 축으로 하고, 볼리비아·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가 회원국인 ‘안데스공동체(CAN)’를 다른 축으로 해 이 둘을 합친 게 남미국가연합이다.

주변 4대 열강 둔 한반도에 시사점 커

두 사람은 메르코수르와 같은 지역 공동체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자신들의 업적이라서가 아니다. 모국인 우루과이처럼 주변에 강대국을 낀 소국의 경우 지역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라칼레 전 대통령은 “우루과이는 작은 나라다. 주변국들은 우루과이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늘 주시하고 있다. 이것이 우루과이의 국제 정책 기조다. 작은 나라는 국제 정책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며 주변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채널로 메르코수르를 활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미·중·일·러 등 세계 4대 열강을 주변에 두고 있는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셈이다.

우루과이의 마지막 전쟁은 1903년에 끝났다. 당시 우루과이에서는 1868년부터 이어져온 내란이 계속됐다. 1865년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우루과이·브라질 사이에 발생한 전쟁 이후로는 주변국과도 별 마찰이 없었던 곳이다. 상기네티 전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우루과이는 평화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국제법도 잘 따르고 있는데, 작은 나라는 국제법을 따르는 것이 국가안보와 연결된다. 브라질·파라과이·아르헨티나·칠레와의 분쟁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주변국과의 평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자 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반도 마련됐다. 상기네티 전 대통령은 “메르코수르는 평화로운 기간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회원국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달라 경제적 통합이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할 순 없지만 경제적 공동체가 평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은 경제 공동체지만 향후 정치적 결사체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이런 게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한다. 2012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메르코수르 회원국 정상들에게 4월2일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포클랜드 전쟁 30주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냈다. 영국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450㎞가량 떨어진 영국령 포클랜드 섬을 두고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전쟁을 벌였고, 영국이 승리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2012년 다시 한 번 포클랜드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조성됐는데 아르헨티나 뒤에 서준 국가가 바로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이었다. 브라질·우루과이·파라과이 등은 포클랜드 깃발을 단 선박의 자국 내 항구 이용을 금지하기로 했고, 특별성명을 통해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영유권 분쟁에서 합법적인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경제적 공동체가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메르코수르는 우리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일본 등 주변국과 갈등 상황에 놓인 한국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다. “국제기구를 통해 서로 협력하라. 평화를 위해 국가가 싸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상기네티 전 대통령)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 우루과이 전 대통령.루이스 알베르토 라칼레 우루과이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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