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강호동 ‘쑥스러운’ 시청률 4%
  • 정덕현│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4.05.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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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케이블·종편 예능에 밀려 콘텐츠 베낀다는 비판도

최근 스타 예능 MC인 유재석은 KBS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나는 남자다>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남자를 위한, 남자에 의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토크쇼로 250명의 남성 방청객이 참여한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고작 4.1%. 유재석이라는 스타 MC가 오랜만에 선보인 파일럿 프로그램치고는 너무 낮은 시청률이 아닐 수 없다.

봄철 개편을 맞아 강호동 역시 MBC에서 <별바라기>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팬클럽과 스타가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토크쇼로 흥미를 끌었지만 역시 시청률은 고작 4.2%에 머물렀다. 신동엽이 KBS에서 새롭게 시도한 <미스터 피터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신동엽의 야외 예능 프로그램 시도라는 관심거리가 있었지만 시청률은 4.4%에 불과했다. 내로라하는 스타 예능 MC인 유재석·강호동·신동엽이 포진한 데다, 지상파 편성이라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처럼 4%대의 저조한 시청률에 머무른 까닭은 도대체 뭘까.

KBS MBC ⓒ KBS·MBC
케이블·종편 ‘참신’, 지상파 ‘구태의연’

몇 가지 이유가 지목된다. 첫 번째는 스타 예능 MC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관찰 예능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연예인보다 일반인이 훨씬 더 이목을 끌고 있는 것. 영상이 일상화되면서 누구든 영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는 방송에서도 일반인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슈퍼스타K> <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안녕하세요>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일반인 참여 토크쇼, 그리고 <진짜 사나이> <사남일녀>같이 연예인들이 등장하지만 일반인과의 교감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야-백년손님>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같이 연예인 가족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연예인에서 일반인으로 넘어가는 추세에 과도기적인 예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의 후광을 얻고 있고 검증받지 않은 일반인보다 훨씬 안정적인 인물군이 연예인 가족이기 때문이다.

스타 MC를 내세우면서도 지상파 예능이 고개를 숙인 데는 트렌드 변화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케이블과 종편 같은 새로운 채널이 참신한 아이디어의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내면서 상대적으로 지상파 예능의 주도권이 상당 부분 그쪽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지상파와 케이블·종편 사이에 놓인 구조적인 차이와 최근 TV 시청 패턴의 변화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상파는 지금껏 TV 실시간 방송 시청에 맞춰 보편적 시청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다채널·다매체화되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대중은 자기 취향에 맞춰진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보길 원하고 있다. 그러니 ‘보편적’ 시청층이란 과거의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50%를 넘기는 국민 드라마, 30~40%를 넘겼던 국민 예능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시청률이 비교적 높게 나오는 사극조차 20%를 넘기기 어렵고 예능은 10%가 어려운 시대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은 지금 지상파 예능이든 케이블·종편 예능이든 시청률 편차가 그다지 나지 않는 상황이다. 지상파 예능의 시청률이 점점 하락하면서 4%대에 머무르는 반면, 케이블(6~7%의 시청률을 내는 <꽃보다 할배>)이나 종편(5% 시청률의 <히든싱어>) 예능이 지상파를 앞서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지상파·케이블·종편이 비슷한 시청률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청률에 대한 체감은 다르다. 이 시청률은 지상파 예능으로서는 굴욕이지만 케이블·종편에서는 대성공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시청률보다 중요한 건 지상파·케이블·종편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다. 대중에게 케이블·종편 콘텐츠는 무언가 새롭고 실험적인 참신함으로 다가가는 반면, 지상파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지상파는 케이블·종편 콘텐츠를 베끼기 바쁘다는 인식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로 <꽃보다 할배>가 방영돼 실버 세대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자 KBS가 부랴부랴 편성한 <마마도>는 베끼기 논란이 나오면서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KBS 콘텐츠는 케이블뿐만 아니라 지상파까지 전 방위적으로 베끼기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MBC의 <아빠! 어디가?>가 주목을 받자, 같은 시간대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편성하는 식이다. SBS가 새롭게 시작한 <룸메이트> 역시 2012년부터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후지TV <테라스 하우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SBS 하승보 예능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어차피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트렌드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사정은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SBS를 필두로 지상파 드라마들은 본격 장르물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상파에서 스릴러 같은 장르물은 더 깊은 몰입을 필요로 하는 장르적 특성상 기피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가 반영되면서 <신의 선물 14일> <쓰리데이즈> 같은 본격 장르물이 시도됐다. 하지만 타임슬립 같은 설정이나 장르적 성격이 강한 드라마는 이미 케이블에서는 익숙한 콘텐츠다. tvN에서 방영됐던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몬스타> 같은 드라마는 참신한 시도로 인기를 끈 대표적인 콘텐츠다.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밀회> 같은 드라마는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의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그 안에 상류층의 속물근성을 낱낱이 해부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지상파에서 막장 드라마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불륜 소재가 전혀 다른 결과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지상파는 언젠가부터 주도권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그저 대중의 느낌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청률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다품종 콘텐츠의 춘추전국시대

지상파가 케이블·종편 같은 새로운 도전자에게 전 방위적으로 콘텐츠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데는 미디어 환경 변화 탓이 가장 크다. 지상파가 과거에 해왔던 대로 보편적 시청층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케이블·종편은 그 태생적 성격상 좀 더 타기팅 된 시청층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콘텐츠를 이른바 ‘마니아 콘텐츠’라고 부르며 깎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다양한 채널에서 무수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시청자 역시 능동적이고 선택적인 시청을 하는 시대에는 낮은 시청률이라도 정확한 소구층을 갖는 콘텐츠가 훨씬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점점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 다양성은 각자의 다른 취향과 기호, 라이프스타일을 저마다 다루는 데서 담보된다. 과거 몇몇 소품종의 콘텐츠가 전체 방송 시장을 압도하며 대량의 시청률을 가져가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 다품종 콘텐츠가 춘추전국시대를 이루며 저마다 소량의 시청률을 거둬가는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다품종 소량’은 이제 제조업만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에서도 중요해졌다.

지상파는 과거의 국민 드라마, 국민 예능으로 불렸던 시대의 압도적인 시청률의 영광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을까. 케이블·종편과 동등한 입장에서 다양한 콘텐츠 생산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지상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케이블·종편 따라 하기’라는 굴욕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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