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짐승 매력을 뿜다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05.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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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표적>에서 ‘액션 머신’으로 돌아온 류승룡

‘류승룡=웃기는 배우’의 공식이 성립된 건 몇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카사노바 장성기로 분한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이나 바보 용구를 연기한 <7번방의 선물>(2013년)의 여파가 워낙 컸던 탓이다. 이전에는 영화 속에서 <최종병기 활>(2011년)의 쥬신타처럼 과묵하고 웃음기 없는 류승룡의 얼굴을 발견하는 게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표적>은 최근 몇 년 사이 류승룡이 쌓았던 코믹한 이미지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가벼운 배신감마저 느낄 만한 작품이다. 류승룡은 살인 사건 용의자 ‘여훈’을 연기한다. 영화의 첫 장면, 배에 총상을 입은 여훈이 도망치고 누군가 긴박하게 그를 쫓는다. 이후 여훈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후송된다. 다음 날 그의 담당 의사인 태준(이진욱)의 아내가 납치되고 태준은 괴한으로부터 여훈을 병원에서 몰래 빼내라는 조건을 전해 듣는다. 태준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여훈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위험한 동행을 시작한다. 형사 영주(김성령)와 광역수사대 반장 기철(유준상)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이들을 뒤쫓는다.

영화 ⓒ CJ 엔터테인먼트
극 중 류승룡은 감정이 좀체 읽히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다. 말수도 적다. 허균을 연기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서조차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부드러운 유머를 구사했던 류승룡이 아닌가. 한데 이번엔 다르다. ‘이러다가 어느 한 곳에서는 웃겨주겠지’라는 기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뤄지지 않는다. <표적>에서 그는 시종 침착함을 유지하며 극을 이끈다. 그는 “대사가 이렇게까지 적은 캐릭터는 오랜만이다. 대신 표정이나 눈빛으로 감정을 드러내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미세한 차이에도 감정의 크기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적정선을 찾으려 창감독(<표적>의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훈은 말이나 표정이 아닌 액션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인물이다. 예전에 <거룩한 계보>에서 불도저 같은 인물 순탄을 연기한 적이 있다. 여훈은 그의 10년 후 모습 같은 캐릭터다.”

바람둥이와 바보 역으로 성공

창감독은 “류승룡을 통해 꽃미남 배우와는 다른 중년의 멋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 멋이란, 다름 아닌 짐승 같은 매력이다. 류승룡은 “이 영화 때문에 나도 내 복근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냥 매끈한 몸이 아닌, 투박하고 둔탁한 ‘중년의 몸’을 만들어야 했다. 140일간 소금과 탄수화물을 끊었고, 복근을 공개하는 신을 촬영하기 3일 전부터는 물도 끊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복근은 단 14일 만에 모조리 사라지더라(웃음).”

속도감은 <표적>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치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사건 전개에 조금의 지체도 없다. 반전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과하게 플롯을 꼬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단순하고 빠르게 달려나간다. 숏을 잘게 나눈 편집과 속도감 있는 화면 전환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보통 액션영화를 촬영할 때 4~5개의 합을 짜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30~40합을 짰다고 한다. 하나의 액션 장면을 몇 분짜리 롱테이크로 촬영한 후 편집에서 잘게 쪼갰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배우의 고생이 심했겠지만, 덕분에 <표적>에서는 멋지게 포착한 액션이 아닌 실감나는 ‘진짜 액션’을 목격할 수 있다.

중년의 투박한 근육을 눈빛으로 보완

그 안에서 ‘액션 머신’ 여훈의 활약이 빛을 발한다. 여훈의 정체는 과거 동티모르에서 활약했던 용병. 액션의 쾌감을 전달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류승룡은 이를 위해 러시아 무술 시스테마를 익혔다. “이제 40대인데 앞으로 액션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오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나리오는 심플한데 그 안에 긴박감이 가득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저 없이 <표적>을 선택한 이유다.”

알려진 대로 <표적>은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2011년)의 리메이크다. 원작 역시 간결하고 액션은 거침없다. 설정을 조금씩 손본 부분은 있지만 <표적> 역시 이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때문에 이 영화로 배우의 연기를, 특히 주인공 여훈을 연기한 류승룡의 연기를 논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표적>의 류승룡을 이야기할 때는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었느냐가 아닌, 액션 배우로서의 활약이 성공적이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영화로 류승룡은 어떤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일단 <표적>은 인물과 관객 사이에 감정적 스킨십이 강한 영화는 아니다. 맥락상으로는 인과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장면인데, 인물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회상이나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여훈이 분노와 슬픔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하지만 정보로 이해하는 것일 뿐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잘 가늠되지는 않는다. 인물에 심리가 밀착되지 않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액션은 그저 기능적인 나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눈이 시원하긴 하지만 감흥이 크게 이는 액션은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웃음기를 거두고 정극 액션을 선보인 류승룡이 얼마나 가깝게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흥행은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은 상황이다. 이 영화는 류승룡이 연기도 액션도 가능한 전천후 배우라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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