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개꿈이네”
  • 김형자│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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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성향 사람이 악몽 잦아…현실 세계 위험이나 위협 반영

왼손잡이는 창의력이 진짜 더 뛰어날까.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는 것은 사실일까. 언뜻 황당한 말 같기는 하지만 일부 과학자는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한때 전자담배와 음이온 팔찌가 금연과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퍼지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문득문득 갖게 되는 궁금증은 너무나 많다. 이번 호부터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가 연재를 통해 생활 속 궁금증을 과학으로 풀어본다.

“돼지꿈을 꾸면 운이 좋기 때문에 복권을 산다.” “악몽을 꾸면 그날 하루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개꿈이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해몽들은 아마 실제 개꿈을 꾼 사람과 돼지꿈을 꾼 사람들의 현실과의 관계성을 조사한 이후 통계적으로 뽑아낸 얘기일 것이다. 누구나 꾸는 개꿈과 악몽은 어떻게 다를까.

ⓒ honeypapa@naver.com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 희생자 가족이나 이미 구조된 사고 당사자들은 밤마다 악몽을 꾸며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원하지 않는데도 사고 장면이 자꾸 떠오르거나 꿈에 나타나는 증상을 겪고 있다. 수면장애를 20년째 연구하고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안토니오 자드라 교수는 사고 당시의 흉측한 꿈을 꾸다 놀라서 잠을 확 깨면 악몽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깨지 않고 계속 자게 될 경우 개꿈(bad dream)이라고 정의한다. 악몽은 꿈의 내용이 격렬하기 때문에 잠을 깨는 원인이 되지만, 개꿈은 잠에서 깨어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줄거리가 도통 생각나지 않거나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기분 나뿐 꿈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악몽에 더 많이 시달려

악몽의 가장 일반적인 패턴은 신체 공격이다. 쫓기거나, 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 꿈꾸는 사람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 특히 공격성이나 성적인 상황이 악몽의 세계를 휘젓는다. 이때 남자든 여자든 꿈꾸는 사람은 가해자보다 피해자로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 어떤 일을 생각할 때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적인 개꿈은 대인 갈등에 시달리는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보통 반복적인 악몽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화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큰 사고나 충격을 받은 후에 생길 수 있고,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약물의 영향으로 꿀 수도 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고생스러운 상황,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나타날 수 있다.

악몽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자주 꾸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이 꾼다. 꿈을 꾼 횟수가 같은 상태에서 비교해볼 때, 여성의 경우에는 34% 정도가 악몽이다. 남성 중 악몽을 꾸는 이는 19%에 불과하다. 악몽의 내용에서도 남녀는 차이를 보인다. 남성은 지진·전쟁·홍수 등 자연재해에 휘말리는 악몽을 주로 꾸지만, 여성은 인간관계의 심각한 의견 대립, (배우자에 대한) 부정에 관한 악몽을 남성보다 2배 이상 자주 꾼다. 여성이 타인과의 갈등이라는 심리적인 문제에 더 격렬히 반응하는 이유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감정을 바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좋지 않았던 감정을 계속 기억하다 보니 무의식중에 악몽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악몽은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도 내용이 달라진다. 서구의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우파나 극우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악몽을 많이 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신이 느끼는 현실세계의 위험이나 위협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파와 좌파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뇌의 인식 구조가 다르다. 그 때문에 꿈도 다르게 나타난다. 평소 우파적 성향의 사람은 우리 편과 남의 편의 경계가 분명해 잠들기 전과 잠든 상태의 경계가 명확하다. 피해의식도 상대적으로 강하다. 반면 좌파인 사람은 우리와 남의 경계가 모호한 성향이 있어 연속된 스펙트럼 같은 비몽사몽 양상을 보인다.

이유야 어쨌든 악몽을 꿨을 때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는다. 보통 악몽을 꾸고 깼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65%나 되고, 개꿈을 꾸고 나서도 45% 정도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려움 다음으로 많은 감정은 슬픔, 분노, 혼란스러움 등이다. 우리가 실제로 꿈을 꾸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럼에도 마치 수많은 일을 겪은 것처럼 기억되는 것은 여러 요소가 꿈속에서 한꺼번에 합쳐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꿈의 압축 작용’이라 말한다. 책을 언뜻 읽을 때 중간 중간의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오더라도 사실 행간에 많은 의미가 들어 있듯이, 꿈의 이미지도 그 속에 중첩되어 있는 무의식적 표상들이 복합적이며 무궁무진하게 나타난다. 꿈 해석은 압축된 것을 풀고 표상들 간의 연관성을 찾는 작업이다.

인간이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꿈은 여전히 수수께끼 현상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뇌의 복잡함 때문이다. 뇌의 신경원세포인 1000억개의 뉴런은 각각 수천 개의 뉴런과 무작위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런 접속 공간(시냅스)이 100조개 이상에 달한다. 뉴런의 상호 연관관계를 따지기에는 그 복잡성과 데이터 규모가 천문학적인 셈이다. 뇌파 검사 역시 극히 일부의 신호만 잡아낼 뿐이다. 따라서 악몽이나 개꿈을 꾸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많은 꿈 전문가의 노력에 의해 그 이유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개꿈과 악몽은 뇌의 재정비 과정

몬트리올 대학의 토레 닐센 교수에 따르면, 개꿈은 우리의 나쁜 기억을 없애주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좋지 않은 기억들이 꿈으로 다시 나타날 경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의식화하지 않도록 뉴런 네트워크가 막아 자세한 꿈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같이 반복되는 작용을 통해 불필요한 기억들을 버리면서 우리 뇌를 재정비하게 된다는 얘기다. 만일 이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겨 과잉 반응을 하게 되면 개꿈이 악몽으로 변한다고 닐센 교수는 설명한다.

어떤 학자들은 악몽은 꿈에 담긴 내용이 특별히 중요하고 가치 있기 때문에 내용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보통 개꿈은 깨어났을 때 어떤 선명한 이미지 없이 그냥 기분 나쁜 꿈을 꿨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게 한다. 반면 악몽은 개꿈을 꾼 이후와는 확연히 다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의 내용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공포의 사건처럼 느껴질 수 있고 마치 “주의를 기울여!”라고 말하는 것 같아 잊고 싶어도 잘 잊을 수 없는 게 악몽이다. 이렇듯 우리는 악몽이든 개꿈이든 매일 밤 꿈을 꾼다. 이 세상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억하는 꿈이든 기억나지 않는 꿈이든 그것이 병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에 따라 잠드는 게 두려울 정도로 매번 악몽을 꾸는 사람일지라도 치료가 가능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우리 마음가짐이 중요할 뿐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듯이 꿈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고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하는 현상이다.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꿈을 꾸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꿈꾸고 더 나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꿈이 없다면 삶은 너무 재미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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