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배후에 ‘과적 커넥션’ 있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5.2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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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 항운노동자 직격 폭로…청해진해운-하역업체-항운노조 유착 의혹 제기

세월호 침몰 사고 여파가 항만업계 전반의 비리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화물 과적(過積) 배후에 관계자들의 불법적인 유착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과적은 무리한 증축과 함께 세월호가 복원성을 잃고 가라앉게 된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배경에 청해진해운을 중심으로 굳어져온 이른바 ‘과적 커넥션’이 있다는 것이다.

청해진해운 여객선의 항만 작업장에서 선사·하역업체·항운노동조합이 담합해 화물 적재량을 조작해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폭로’의 진원지는 제주항운노조 민주화운동본부다. 노조 집행부의 조합 운영 과정에 비리 및 전횡이 있다며 조합원 일부가 조직한 단체다. 시사저널은 이곳 관계자 ㄱ씨로부터 ‘과적 커넥션’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했다. 항운 하역노동자의 노임은 화물 적재량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그런데 청해진해운 등이 이를 임의로 줄여 기록함으로써 실제 노동량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갑판에 실린 화물 컨테이너가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여객선에 화물을 많이 적재할수록 이윤이 커진다. 화물 하역업체 입장에서는 항운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가 줄어들면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양자의 이해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다. 이 때문에 화물을 과적한 후 그 양을 축소 보고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ㄱ씨의 설명이다. ㄱ씨는 동료 조합원 및 자신이 겪은 바를 토대로 화물 적재량이 조직적으로 축소돼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내선 운항에서는 화물의 물동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하지 않는다. 대신 화물을 싣고 온 차량의 화물 수용 용적(부피)을 기준으로 우선 용적톤수(부피를 기준으로 추정한 무게)를 산정한 후, 이를 실제 무게인 중량톤수로 환산한다. 각 화물의 무게를 일일이 측정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실제 화물 무게보다 훨씬 축소해 보고하는 일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ㄱ씨의 설명이다.

‘차떼기’ 축소 보고가 오랜 관행

‘차떼기’. 화물 중량을 속이는 관행적 수법을 가리키는 업계 용어다. 배에 적재될 화물은 일정 용적의 화물차량에 실려 배 앞까지 당도한다. ‘4.5톤 차’ ‘11톤 차’ ‘25톤 차’ 같은 식이다. 그런데 각 트럭에 실린 화물들의 용적톤수는 실제 그것보다 훨씬 낮게 책정된다고 한다. ㄱ씨는 그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4.5톤 트럭으로 운반한 화물들은 총 10.3톤, 11톤 트럭은 총 14.5톤, 25톤 트럭은 총 17.7톤씩을 용적톤수로 일괄적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실제 화물의 용적톤수는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4.5톤 트럭에 실려온 화물들을 예로 든다면, 서류상에 일괄적으로 기재하는 ‘10.3톤’과는 달리 실제 용적톤수는 20톤을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ㄱ씨는 “용적톤수를 실제 중량톤수로 환산할 때 이를 5분의 1로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화물의 소재가 무엇인지는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20%씩만을 중량톤수로 환산했다는 것이다. 실제 용적톤수가 50톤인 화물들의 경우 일괄적으로 17.7톤으로 축소 산정된 후, 이의 5분의 1인 3.54톤만을 중량톤수로 계산하는 식이다. “과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무게만큼 평형수를 빼 만재흘수선을 맞추었을 것”이라고 ㄱ씨는 말했다. 화물 적재 시 무게를 일일이 측정하지 않는 점을 이용한 불법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ㄱ씨는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할 자료로 청해진해운 하역 현장의 작업반장 강 아무개씨의 발언을 제시했다. 실제로 ㄱ씨가 공개한 녹취 파일 속 강씨의 발언에는 그가 주장한 내용들이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드러나 있다. 녹취된 음성 파일에 따르면, 작업반장 강씨는 “매년 (실제 무게와의) 차이가 커지고 있는데, 문제는 여기(제주)보다는 인천에 있다. 선사가 문제다. 실질적으로 나오는 그대로 매기면 (수익 규모를) 맞추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주항운노조 위원장이나 하역회사 등에 문제제기를 한 적도 있으나, 인천 청해진해운 물류부장 남 아무개씨(구속)가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소용이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도 포함돼 있다. “내가 들러먹거나 봐주거나 무시한 게 아니고, 통상 내려와서 하는 대로 한 것”이라는 말 등에서 차떼기 수법을 과거부터 지속된 관행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항운노조 일부 조합원들은 화물 중량 축소 보고에 따른 노임 손실이 크다고 판단해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지난해 초 항운노조 내부 갈등이 대대적으로 불거졌을 무렵, 부당하게 노임을 책정해온 관행을 고발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ㄱ씨 등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항운노조 측이 이러한 관행을 묵인해왔다고도 주장했다. 하역노동자들의 임금은 해양수산부에서 제시하는 항만하역요율에 근거해 지급돼야 한다. 작업 요건이나 기타 사정을 이유로 그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항운노조는 이를 준수할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ㄱ씨는 유독 청해진해운 현장에서만 차떼기 관행이 심각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선사와 하역회사 그리고 항운노조 지도부 사이의 삼각 커넥션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청해진해운, 현장에서 축소 보고 심해

ㄱ씨는 최근까지 청해진해운 여객선의 화물 하역회사였던 ㄷ해운과 제주항운노조 지도부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ㄷ해운 김 아무개 대표는 제주항만물류협회장을 10년 이상 지냈다. 제주항운노조 전 아무개 위원장 역시 10년 이상 위원장직을 수행해왔다. 김 대표는 전 위원장이 설립한 IT기업 ㅋ업체에 투자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다.” 청해진해운 현장에서 화물 중량의 축소 보고가 심했던 배경과 관련해 이들 사이의 관계 역시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주항운노조 민주화운동본부는 지난 2012년부터 노조 지도부가 취업 사기 및 각종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해왔다. 이상의 의혹에 대해 제주항운노조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시사저널은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5월16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었다.

제주지방검찰청은 지난 5월13일 제주항운노조 조합원 ㄴ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화물 과적 실태 및 항운노조의 개입 정황을 조사했다. ㄴ씨는 9일 세월호를 운영하는 선사 청해진해운의 투명한 화물 적재를 요구하며 제주항운노조를 상대로 1인 시위를 벌인 인물이다. ㄴ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음성 녹취 파일을 수사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운노조 민주화운동본부 측은 “기득권과 돈의 원리에 의해서 세월호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시는 힘의 원리에 의해 땀 흘려 하역한 작업비를 빼앗기지 않도록 선사-하역사-항운노조의 썩은 그물망을 걷어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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