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시대 본격적으로 열리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5.2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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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건강 이상으로 승계 관심…경영 능력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호의적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 문제가 갑자기 불거지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그룹 설명에 따르면 이 회장은 현재 안정 상태에서 회복 중이다. 당분간 수면 상태에서 약물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 회장이 고령인 데다, 체력이 약해져 의식이 회복된다 해도 곧바로 경영에 복귀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체제로의 전환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01년 5월이다. 삼성그룹 경영기획팀 상무보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나섰다. 2005년 타계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승지원을 찾은 적이 있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 이 회장과 함께 그를 만났다. 피터 드러커는 나중에 삼성그룹 관계자를 만나 “삼성은 아주 운이 좋다. 유일한 후계자인 이재용 전무가 매우 스마트하고 성품이 좋다. 삼성의 미래가 아주 밝다”고 전했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평판은 호의적이다. 그를 한 번이라도 본 직원은 “겸손하다”거나 “예의 바르다”고 말한다. 회식 자리에서도 직접 폭탄주를 제조해 직원들에게 돌릴 만큼 친화적이라고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 부문 사장(왼쪽부터)이 ‘2012 호암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피터 드러커, 이재용 부회장 성품 극찬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지분 이전도 상당 부분 마친 상태다. 이 부회장은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하는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25.1%)다. 그는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금융 지주회사 격인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있다. 연내 상장될 예정인 삼성SDS(11.3%)나 삼성전자(0.57%)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이 부회장이 보유한 비상장사의 지분 가치는 4000억원을 밑돌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삼성SNS 포함)의 지분 평가액은 각각 2789억원과 867억원 수준이었다. 불과 7년여 만에 이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10배 이상 상승했다. 계열사와의 사업 조정을 통해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덩치가 급격히 불어났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12월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인수했다. 이 부회장의 주식 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패션 부문이 빠져나간 제일모직(전자 및 소재 부문)은 오는 7월 삼성SDI에 편입될 예정이다. 삼성SDS는 지난해 9월 삼성SNS(옛 서울통신기술)와 합병했다.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은 8.81%에서 11.3%로 2.5%가량 불어났다. 최근 연내 상장 계획까지 발표했다. 합병 당시 7만원대였던 삼성SDS의 주식은 현재 장외시장에서 20만원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주식이 됐다.

삼성 계열사들은 “철저하게 사업적인 고려만이 반영됐다”고 지배구조 재편 이유를 밝혔다. 사업 연관성이 큰 계열사끼리 합병해 해외 시장 확대의 기반을 마련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승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이 큰 축이다. 삼성에버랜드나 삼성생명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확고하다. 하지만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의 오너 일가 지분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도 20% 미만이다. 상속으로 지분율이 일부 상실된다고 가정하면 지배력이 취약해질 수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SDS가 상장하면 삼성 3세의 세전 보유 지분 가치는 3조원에 이른다”며 “향후 주식 맞교환이나 담보 설정 등을 통해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 데 필요한 세금이나 계열사 주식 매입에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의 비상장사 평가액만 현재 3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5월16일 현재 장외주식 정보 제공 전문 사이트인 38커뮤니케이션에서 거래된 삼성SDS의 주가는 20만원이다. 이 부회장의 보유 주식 수(870만4312주)를 곱하면 지분 가치는 1조7400억원에 이른다. 올해 상장 과정에서 지분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가치는 삼성SDS보다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에버랜드 지분 5%를 보유한 삼성카드는 지난해 말 회사의 주식 가치를 장부가액 2612억78만5000원으로 평가했다. 주당 209만원 선이다. 물론 제일모직 패션 부문 인수가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후 매입한 골프장 등을 감안하면 에버랜드의 주식 가치는 최대 주당 293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 수(62만7390주)를 곱하면 평가액은 1조838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 회사인 삼성전자의 지분(84만403주)에 5월16일 종가인 141만원을 곱하면 이 부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5조원을 넘게 된다. 이 주식을 활용해 후계 구도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경영 승계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의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비상장사의 지분 매입에 투입한 금액이 불과 200억원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실권한 삼성SDS 주식 177만3000주를 44억3500만원에 사들였다. 1999년 2월에도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47억원(주당 행사 가격 7150원)에 추가로 인수했다. 당시 삼성SDS의 주식은 장외에서 주당 5만4000~5만70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에버랜드·삼성SDS 지분 취득 과정서 홍역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매입 경로도 비슷하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주당 8만5000원대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96억원(주당 7700원)에 매입했다. 이 회장에게 증여받은 60억8000만원이 종잣돈이었다. 이 부회장은 16억원을 증여세로 내고, 나머지 44억8000만원으로 삼성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입했다가 곧바로 되팔았다. 이런 방식으로 563억5200만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 부회장은 그 돈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등의 지분을 취득했다. 1998년 에버랜드가 삼성 계열사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삼성생명의 주식을 인수하면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2007년 10월 변수가 발생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 비자금 문제가 불거졌고, 두 달 후인 12월부터 조준웅 삼성 특검이 삼성의 곳간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특검 수사 기간을 두 차례나 연기했다. 이 부회장은 이듬해 3월 이건희 회장과 함께 경영에서 물러났다. 조준웅 특검이 이 회장 등을 기소하기 한 달 전이었다. 이 회장은 당시 총수 일가 퇴진과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불려온 전략기획실 해체 등 경영쇄신안 10개항을 발표했다. 삼성의 2인자와 3인자로 불려온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도 동반 퇴진했다.

1년여 후인 2009년 5월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삼성SDS의 BW 저가 발행 사건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서울고법은 2009년 8월 이건희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삼성의 승계 논란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백의종군을 약속하며 물러났던 이 회장 일가와 김인주 사장도 경영에 복귀했다.

이 회장은 복귀 일성으로 ‘삼성 위기론’을 강조했다. 해체됐던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마하 경영’으로 다시 한 번 삼성의 변화를 주문했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듯 설계부터 소재까지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포스트 이건희’ 체제에 대한 전망이 아직까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의 승계 시기는 이 회장의 건강 상태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삼성그룹은 현재 이 회장의 치료 상황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대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현재 재계에서도 이견이 없는 상태다.

관건은 아버지에 이어 이 부회장이 삼성의 초일류 기업 토대를 다져나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삼성그룹 제2대 회장에 취임했다.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을 통해 경영 전 부문에 대한 대대적 혁신을 단행했다.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한 당시 이 회장의 발언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세칭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삼성은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게 된다. 1993년까지 삼성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9조원과 8000억원 수준이었다. 지난해 삼성그룹은 매출 380조원, 영업이익 39조원을 기록했다. 20년 전과 비교해 매출은 13배, 영업이익은 50배 가까이 늘어났다. 브랜드 가치도 2001년 세계 42위에서 지난해 8위로 34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이 부회장도 그동안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밟아왔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최근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선 삼성전자에 대한 그룹의 매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그룹 상장사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0조원 남짓이다. 삼성전자 한 회사의 영업이익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이익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편중되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 부문에서만 24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67% 수준이다. 올 1분기에는 70% 선을 넘어섰다. 스마트폰 사업이 흔들릴 경우 삼성전자, 더 나아가서는 삼성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위주의 사업 구조를 극복하고 삼성전자의 지속 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

애플과의 갈등도 이 부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애플과의 1차 특허 소송에서 완패했다. 미국 법원은 삼성전자에 9억2900만 달러(9900억원)의 배상을 판결했다. 2차 소송에선 법원이 사실상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4월 애플이 요구했던 21억9000만 달러(약 2조2500억원)의 20분의 1인 1억1960만 달러(한화 1200억원)만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재계에서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삼성문화 4.0> 저자인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은 “상황에 따라서는 특허 소송이 장기화될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이 애플과의 갈등을 무난히 해결한다면 글로벌 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삼성이 미래전략실 사장들을 삼성전자에 전진 배치한 것도 이런 문제를 직시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삼성그룹은 5월1일 미래전략실의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과 김상균 준법경영실장(사장), 정금용 인사지원팀장(부사장) 등을 각각 삼성전자의 커뮤니케이션팀장과 법무팀장, 인사지원팀장으로 발령 냈다. 그룹의 주력 회사인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함께 이재용 시대를 대비한 포석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5월12일 삼성서울병원 로비에서 이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인 이건희 회장 관련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미래전략실 사장 삼성전자 전진 배치

하지만 이재용 체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일례로 이 부회장은 2000년 5월 이른바 ‘e삼성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봤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삼성그룹의 인터넷 사업이 급격히 부실화됐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이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매입해 논란이 일었다.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e삼성의 지분은 제일기획이 280억원에 인수했다. e삼성인터내셔널 지분은 삼성SDS·삼성SDI·삼성전기 등이 나누어 인수했다. 가치네트 주식 역시 삼성카드·삼성캐피탈·삼성증권이 사주었고, 시큐아이닷컴은 에스원이 매입했다. 참여연대는 2008년 제일기획 등 9개 계열사가 e삼성의 적자를 인수해 손실을 보전해줬다며 이 부회장과 계열사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한 조준웅 삼성 특검은 이를 불기소 처분했다.

e삼성 문제는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거론될 때마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고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임팩트 있는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그룹 임직원뿐 아니라 외국인 주주들에게도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삼성그룹 측은 “세간의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실무 경영에 약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장비, 반도체 등의 사업에서 실무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중남미·유럽·일본 통신사 CEO들과의 담판을 통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정상화를 이끌어냈다”며 “e삼성 사업은 (이 부회장이)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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