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윈스키 귀환은 ‘힐러리 구하기’?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5.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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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섹스 스캔들 주인공 르윈스키 등장 파문

“이제 베레모를 불태우고 블루 드레스를 묻을 시간이다.”

모니카 르윈스키(40)가 돌아왔다.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섹스 스캔들’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는 르윈스키가 대중에게 돌아오면서 던진 첫 일성은 이랬다. 5월6일 르윈스키가 미국의 연예 잡지인 ‘배너티 페어’와 독점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는 심정을 밝혔다”고 앞다퉈 전했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첫 마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가 말한 베레모는 과거 백악관 시절 클린턴 전 대통령과 포옹하는 사진이 찍힐 때 자신이 썼던 모자다. 미국 국민의 기억에 강하게 남은 사진이다. 파란색 드레스는 클린턴의 정액이 묻었다는 옷이다. 섹스 스캔들이 발생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그는 아직까지 이 사건을 지우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5월6일 미국 잡지 ‘배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지퍼 게이트’에 대해 소회를 밝힌 모니카 르윈스키 전 백악관 인턴. ⓒ 연합뉴스
힐러리는 이번에도 ‘무시’ 전략

당시 스캔들 이후 르윈스키의 인생은 사라졌다. 자신은 자살 충동을 느끼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클린턴가(家)는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의 강력한 대권 후보로 거론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르윈스키도 이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은둔 생활을 했었다”며 “하지만 힐러리가 다시 대선에 나선다고 앞으로 8~10년 동안 내 인생을 또다시 봉인해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언론 인터뷰를 줄곧 사양하다 10여 년 만에 다시 입을 연 르윈스키는 화려하게 귀환했다. 빌 클린턴의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의 위상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의 귀환 작전은 성공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삽시간에 퍼졌다.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정치권의 반응도 뜨겁다. 그의 주장에 관한 찬반론은 연일 여러 매체를 통해 등장한다.

그를 향한 러브콜은 그동안 뜨거웠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과거 1200만 달러(약 123억원)를 제안하며 책을 출판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거부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미국 대선이 진행되고 있던 2012년 9월, 미국 정가에서는 <모니카의 복수(Monica’s revenge)>라는 자서전이 출판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당시 언론은 “르윈스키가 클린턴에게 썼던 연애편지와 함께 클린턴의 탐욕스러운 성적 욕구를 폭로하고 그가 힐러리를 어떻게 다뤘는지 소상하게 밝힌 책을 펴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논란이 분분했던 그의 책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르윈스키의 화려한 귀환에 가장 예민할 법한 힐러리 클린턴 진영은 현재 철저하게 무시 중이다.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논란의 재발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힐러리는 16년 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르윈스키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리고 남편을 옹호했다. 섹스 스캔들 사건이 발생했던 1998년 2월,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와 가장 친했던 친구인 다이엔 블레어는 아칸소 대학에 기증한 기록을 통해 “당시 힐러리가 르윈스키를 자기도취에 빠진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고 밝혔다. 블레어는 당시 힐러리가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려 했지만 이미 사태가 확대됐고 그것은 실수였다. 실제로 보면 관계도 아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르윈스키도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힐러리가 자신을 ‘자아도취에 빠진 미치광이’라고 평가한 사실을 언급했다. “만약 그것이 그가 내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이라면,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이해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 당시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때 나는 검사의 도청 제의도 거부했다. 어리석고 용감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아도취에 빠진 미치광이는 아니다.”

친(親)공화당 성향의 매체들은 다시 빌 클린턴을 등장시키고 비난하며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맹공 중이다. 현재 공화당 대선 주자 중 가장 앞선 이는 랜드 폴 상원의원이다. 그는 “이번에도 어린 여성 인턴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없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약탈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명료했다. “빌 클린턴의 부인이자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정치적인 기부를 하지 말라”는 게 폴 의원의 얘기다.

일각에서는 “힐러리에 선물 줬다” 평가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르윈스키의 등장은 민주당에는 비극이고 공화당에는 호재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워싱턴포스트는 “르윈스키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이번 스캔들 회고는 오히려 힐러리 클린턴에게 호의적으로(favor)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공화당 출신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부인 린 체니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르윈스키가 힐러리에게 유리한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공화당에 르윈스키 사건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을 옭아맬 비장의 무기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빠르게 르윈스키가 등장하면서 셈법이 헝클어졌다. 겉모양은 르윈스키의 이야기로 힐러리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듯하지만 이번 기고는 공화당이 공격할 거리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인턴을 성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이 핵심인데 르윈스키는 “클린턴과의 관계는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해 깨끗하게 정리해버렸다.

게다가 성추문 사건 이후 클린턴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았던 공화당이 직후에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았던 일도 아픈 기억이다. 클린턴가의 끈끈함도 공화당에 걸림돌이다. 보통 섹스 스캔들이 발생할 경우 당시에는 남편을 옹호하더라도 결국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클린턴 부부는 거꾸로 지금까지 강력한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발이 먹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공화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르윈스키는 이번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목적이나 돈 때문에 등장한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앞으로는 나처럼 마녀사냥을 당한 희생자들을 돕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이제는 독점 인터뷰가 불가능할 정도로 몸값이 치솟고 말았다.

여전히 그를 향한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에서는 “어린 나이에 당한 그의 피해를 되새겨 인권 신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옹호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돈과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다시 등장했다”고 공격한다. 어쨌든 르윈스키가 선거철을 앞두고 화려하게 귀환했고, 그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미국 정가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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