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문용린 “자사고 유지”, 조희연 “폐지 검토”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5.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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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감 후보 공약 검증… 교육시민단체 질의 답변서 분석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수·우·미·양·가 형식의 성적표도 초등학교에서 덩달아 되살아날 뻔했다. 수준별 이동 수업, ‘우열반’도 초등학교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귀족학교’도 태동했다. 1년 학비 1200만원의 하나고와 850명 이상 성적 조작 비리와 입학 비리가 일어난 영훈국제중이 그렇다. 딱 10년 전, 공정택 교육감 당선 이후 생긴 변화다. 학력 신장이 최우선 가치로 인정받으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수월성이 사라지자 학생 인권 시대가 도래했다. 일단 체벌이 금지됐다. 대체 과목 개설 없이 성경·채플과 같은 종교 교육도 금지됐다. 대신 복장과 두발의 자유가 허용됐다. 수업시간 이외 집회의 자유도 보장됐다.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 혁신’이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혁신은 교권 붕괴로 이어졌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한 폭력은 방향을 틀어 교사에게 되돌아왔다. 지도력을 상실한 교사는 학교폭력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교육감 선거는 지역 주민 손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한다는 교육자치의 의미를 넘어선다. 한 세대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당장 70%에서 50%로 줄어든 무상급식을 확대할 수도 있고, 정원미달·입학 부정 비리에 쌓인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문을 닫게 할 수도 있다.

서울의 교육정책을 책임질 교육감 선거가 열흘 안팎으로 다가왔다. 고승덕 전 새누리당 의원과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 4명이 출마했다.

네 후보가 쓴 책에서 엿보이는 교육관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행정고시 수석 합격, 외무고시 차석 합격. 고승덕 후보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한국 교육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런데 고 후보는 교육에 직접 관련된 책을 쓴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낸 10권의 책 내용은 자서전과 주식투자 강의가 전부다. 대표작인 <고승덕 abcd 성공법>(2011년)에서 엿본 그의 교육관은 ‘성공한 자결주의’로 분석된다. 고 후보는 책에서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다는 운명론은 꿈을 빼앗는 거대한 음모론이고,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후천적 결정론은 과거에 초점을 둔 사고”라고 주장한다. “자기 운명은 타고난 운명과 주어진 환경에 관계없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의 인생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꿈과 노력이다. ‘꿈을 꾸며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자칭 꿈을 짓는 농사꾼이라고 표현한다.

그 유명한 ‘비빔밥론’은 그런 노력의 끝판왕이다. “반찬을 먹으려고 젓가락질하면 책을 볼  수 없지만 비벼 먹으면 밥알이 사발로 떨어지더라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씹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질긴 고기는 가루를 만들고, 소화시키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질긴 섬유질은 뱉었다.” 그의 공부법은 여전히 ‘신림동 고시촌의 전설’로 남아 있다.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론’도 눈길이 간다. 성공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교환(희생)하라는 얘기다. “적성이란 흥미와 재미가 아니다. 비교우위다.” 그가 새롭게 정의한 ‘적성’의 개념도 흥미롭다.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는 얘기다.

재선에 도전하는 문용린 후보는 ‘행복교육’ 전도사다. 교육의 목적이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의 30년 교육 연구 결과를 집대성했다는 <행복한 성장의 조건>(2011년)을 보자. “빌 게이츠는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 문 후보는 행복의 조건으로 ‘현재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즐기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선택하고 성공을 부수적으로 얻어라”는 게 문 후보의 주장이다. 고승덕 후보의 ‘트레이드 오프론’과는 배치된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자기보다 잘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깨닫고 실행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고 후보가 말한 ‘적성’과 상반된다.

“자기 파괴적인 과잉 경쟁 교육은 사라져야 한다.” 조희연 후보의 교육론이다. 과잉 경쟁, 불평등과 교육, 자살과 학교폭력. 조 후보가 올 3월에 낸 <병든 사회, 아픈 교육>에서 짚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다. 특히 자살과 학교폭력을 적대적인 과잉 교육 경쟁이 낳은 ‘내면성 파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부모님 연봉=토익 점수=대기업 취직’이라는 신(新)신분제와 ‘자립형 사립고 형태의 기업 부설 귀족학교→명문대’로 이어지는 교육 불평등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력보다 ‘돈의 힘’이 큰 불평등한 현실을 공교육 강화를 통해 지워나가겠다는 게 조 후보의 생각이다.

“일하면서 배운다. 배우면서 일한다.” 이상면 후보의 교육관이다. 올 2월에 낸 <찔레꽃 피는 언덕>에서 그는 4H운동을 주장한다. 지식(Head)·마음(Heart)·손(Hands)·건강(Health)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현장에서 손(Hands)을 통한 노동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지식을 쌓아간다는 운동이다.

특목고·자사고 존폐 여부, 진영 간에 크게 갈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좋은교사운동 등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서울교육감시민선택’이 각 후보에게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차기 교육감 후보의 교육정책을 미리 엿봤다.

이번 선거에서 이슈별로 후보들끼리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현상은 사라졌다. 학생인권조례·무상급식으로 보수·진보 진영 간에 선명한 찬반 구도가 형성됐던 2010년 선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네 후보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강조했다. 학교 옆 호텔 건립도 모든 후보가 반대했다. 반면 혁신학교 설립, 특목고·자사고 폐지, 무상급식 시행, 선행학습 규제 방안에 대해서는 후보별로 온도차가 있었다.

먼저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문용린 후보를 제외하곤 입장차가 거의 없었다. 문 후보는 “혁신학교는 학교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고승덕 후보는 “혁신학교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조희연 후보는 확대, 이상면 후보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혁신학교는 학생 수 25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로 운영되며 입시 위주 교육을 벗어나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에서 자율성을 강화한 학교 형태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도입했다.

진보·보수 후보별로 입장차가 가장 크게 갈린 부분은 특목고·자사고 존폐 여부다. 진보 단일 후보인 조희연 후보는 ‘자사고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서울의 자사고 25개를) 전면 재검토해 재지정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미달이거나 희망하는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고승덕·문용린 후보는 “지정 목적대로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선행학습 규제에 대해서는 조희연 후보가 가장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 후보는 “조례로 학생 선행학습을 금지하겠다”는 입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재래시장 휴무제처럼 학원 주말 휴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후보들은 전반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조 후보만이 “지금의 친환경 무상급식을 GMO·방사능 안전 식품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라진 이념형 공약…관건은 예산 확충

후보별로 차별화된 공약도 눈에 띄었다. 고승덕 후보는 ‘공문 클리너(Cleaner)’를 내세웠다. 교육청에 사무관급 이상 공무원을 ‘공문 클리너’로 임명해 꼭 필요한 공문 빼고는 모두 지워버리는 제도다. 문용린 후보는 ‘캐치업 디바이드(Catch up Divide)’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소득 최하위 10%인 저소득층 학생에게 외국어 현장 교육 및 해외 체험 활동을 무료로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저소득층 20만명에게 200억원이면, 1인당 연 10만원꼴이라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연 후보의 ‘균형 배정제’도 눈여겨볼 만하다. 고교 선택제를 전면 개선해 성적이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이 고르게 분포하도록 하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생 선택권을 제한할 가능성, 학교별 경쟁력 약화로 학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문제는 예산이다. 조희연 후보만이 공약 답변서에 세부 예산 수립계획을 제시했다. 핀란드를 교육강국으로 만든 건 신뢰에 기반한 교육자치 모델이었다. 풀뿌리 교육감·교육의원을 뽑을 날이 불과 1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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