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피아’의 칼로 ‘관피아’ 도려낸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5.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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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거듭된 법조인 중용…당·정·청 수뇌부 법조 출신 일색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법조인’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무한 사랑과 신뢰가. 법조인 전성시대다. 법조인 출신은 청와대와 내각, 여당의 요직에 배치돼 있다. 법과 원칙을 국정 운영의 핵심가치로 꼽았던 박근혜정부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력한 이너서클을 형성한 법조계가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밀고 당겨주며 고위직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천명한 박근혜정부가 ‘법피아(법조계+마피아)’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법조인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에 검찰 출신인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고시 12회)이 있다. 김 실장은 법피아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실장은 지난해 8월 현 정부의 두 번째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조금 늦게 입성했지만,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 그룹인 ‘7인회’ 멤버로 정권 출범 이전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안대희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7기)의 총리 발탁에도 김 실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왼쪽부터 권영세 주중대사, 김기춘 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합성한 사진. ⓒ 시사저널 포토
현 정부에서 법조인 아니면 요직 꿈도 못 꿔

행정부의 2인자인 국무총리는 법조계의 독무대였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무총리 내정자였다가 낙마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고시 9회)부터 현 총리인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사법연수원 4기), 신임 총리 내정자인 안대희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7기)까지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김 전 소장은 판사, 정 총리와 안 내정자는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파트너인 집권 여당 대표 역시 법복을 입었던 인물이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후 초대 대표에 선출된 황우여 전 대표는 사법고시 10회로 서울·춘천·제주 등지에서 판사를 역임했다. 이로써 당·정·청 수뇌부가 모두 법조인 출신으로 채워졌다. 

사정기관 역시 법조계 차지였다. 감사원은 정부의 예산 적정성을 검증하는 회계검사,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위법·비위를 따지는 직무감찰 권한을 가진 최고 사정기관이다. 부총리급인 감사원장에는 지난해 12월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사법연수원 12기)이 임명됐다.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역시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월22일 사표가 수리된 군 출신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후임을 두고도 정·관계에서는 하마평이 무성했다. 그중에서도 검사 출신인 권영세 주중대사(사법연수원 15기)의 이름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가장 많이 회자됐다. 

‘친박(親박근혜)’ 실세 그룹에서도 법조인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12년 대선에서 대변인을 지내면서 친박 신주류로 급부상한 조윤선 전 의원(사법연수원 23기)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여성부장관에 임명됐다. 박 대통령의 각종 소송을 도맡아 처리해 ‘박근혜의 법률 대리인’으로 불리는 김재원 의원(사법연수원 26기)은 현재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유기준 의원(사법연수원 15기) 역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지금은 다소 소원해졌지만,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과 현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진영 의원(사법연수원 7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안 내정자와 연수원 동기이자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사법부 독립 훼손…대형 로펌 전성시대

법조계 출신들이 박근혜정부에 중용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우선 현직 법관과 검사들이 행정부 고위 관료에 임명되면서 3권 분립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관과 검사들이 현직에 있으면서 권력에 ‘줄서기’를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 감사원장은 임명 당시 현직 서울중앙지법원장이었다. 사법부의 주요 보직인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대통령 직속인 감사원장에 앉히는 것을 두고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 재판이 한창이었다. 이와 관련해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의 실무를 총괄하는 책임자(황찬현)가 몇 단계를 뛰어넘어서 중책을 맡게 됐다. 대단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사법연수원 13기)은 차관급인 춘천지법원장을 지낸 인물로, 장관급 예우를 받는 대법관에 수차례 낙마했다. 대법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가운데 장관급인 방통위원장에 임명됐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관계자는 “법관이 행정부 고위 관료로 승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면 어떤 법관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사법연수원 23기)은 반대의 경우다. 인천지검 부장검사로 재직하던 이 전 비서관은 지난해 3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이 전 비서관은 ‘검사는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 비서실의 직위를 겸직할 수 없다’는 검찰청법 조항에 따라 검찰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전 비서관은 지난 5월 초 청와대를 떠나면서 다시 검찰에 복귀했다. 사실상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 금지 조항을 어긴 것으로, 이는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발표한 검찰 개혁안 중 “법무부 또는 파견 기관을 통한 정치권의 외압을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중용된 법조인들이 대부분 대형 로펌 출신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행정부의 주요 요직을 대형 로펌 출신들이 차지하면서 로펌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법조인을 많이 기용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법조인은 많이 기용됐다. 문제는 현 정부의 경우, 판검사로 권력 중심에만 섰던 대형 로펌 출신 몇몇 특권층 법조인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병우 전 대검 기획관의 민정비서관 발탁이 상징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정홍원 총리는 ‘로고스’ 대표변호사를 역임했고, 황교안 법무부장관(사법연수원 13기)은 3대 대형 로펌 중 하나인 ‘태평양’ 출신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대형 로펌 출신 일색이다. 홍경식 민정수석(사법연수원 8기)은 3대 대형 로펌인 ‘광장’, 김종필 법무비서관(사법연수원 18기)은 태평양 변호사 출신이다.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사법연수원 18기)과 김학준 민원비서관(사법연수원 21기)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발탁됐다.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고위 공직과 로펌의 회전문 인사를 오가는 법조인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가 척결해야 할 과제다. 박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청와대 로펌으로 탈바꿈시킨다면 국가개조, 적폐 청산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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