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특권층 아파트 각별히 챙긴다
  • 이영종│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 ()
  • 승인 2014.05.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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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 평양 로열패밀리 주거 시설…자재·장비 부족으로 날림공사 이어져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마식령 속도’를 향한 사랑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6월 강원도 문천 마식령스키장 건설을 계기로 등장한 이 구호는 지금 북한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12개 슬로프를 갖춘 대형 스키장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완공한 데서 따온 마식령 속도란 표현이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속도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난 5월13일 평양 평천구역 고층 아파트 붕괴 참사도 김 위원장의 건설 드라이브를 가로막지 못했다. 92세대가 완공 전 입주했던 23층 아파트가 한꺼번에 붕괴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김 위원장이 주춤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공사에 동원된 내무군 총책임자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은 물론 김수길 평양시 당 책임비서 등 5인방을 주민들 앞에 세워 사과 모임을 하게 한 것도 김 위원장에게 피해 주민들의 원망과 비난이 쏠릴 것을 우려한 조치로 해석됐다. 리더십 타격을 우려해 건설 기간 단축을 직접 닦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기대였다.

북한 로동신문은 5월18일자 보도에서 지난 5월13일 평양시 평천구역의 살림집(주택) 건설장에서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는 북한 간부. ⓒ 연합뉴스
부동산 투기로 부 축적하기도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김정은 위원장은 사고 직후 웃는 모습으로 축구 경기와 예술공연을 보러 다녔고, 이 장면은 로동신문 등 관영 선전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에는 붕괴 건물보다 2배 높은 46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방문해 “21세기 공격 속도, 마식령 속도를 창조한 부대는 역시 다르다”며 빠른 진척에 만족을 표시했다. 마식령 스키장 건설을 맡은 북한군 267부대 군인 건설자들이 이 아파트 공사에 투입된 걸 염두에 둔 말이다. 김 위원장은 김책공대 교수를 위해 짓고 있는 이 아파트를 500채 더 지으라고 즉석에서 지시했다. 또 김일성대 교수를 위한 아파트도 500가구 추가 건립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떤 희생과 난관이 따르더라도 건설과 건축 부문에 대한 자신의 집착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의 건설 부문 책임참모였던 마원춘 노동당 부부장을 붕괴 사고가 알려진 직후부터 국방위 설계국장으로 호칭하도록 하고, 군 중장(한국군의 소장에 해당) 계급을 부여해 수행토록 한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평양의 고층 아파트는 김정은 정권을 떠받치는 권력 핵심층에 대한 시혜 차원의 주거 지원 성격을 띤다. 김책공대가 핵 개발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기술 관련 전문가 집단이란 점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위성과학자를 위한 별도의 아파트 건립도 진행 중이다. 평양에서는 수년 전부터 재정 확보를 위한 아파트 분양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수만 달러의 현금을 내고 아파트를 사는 자본주의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붕괴 사고가 난 안산1동 고층 아파트도 시장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 자본가나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의 직계가족이 새로 분양받아 입주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 당 간부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던 창광거리 아파트 등이 낡아 살기 불편해지면서 새로 짓는 아파트로 옮겨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이 거래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부동산 투기와 유사한 현상까지 나타나자 주민들 사이에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은 물론 평양에서도 권력과 돈을 함께 거머쥔 세력이 고급 주택이나 새 아파트를 선점하면서 김정은을 겨냥해  ‘특권층 챙기기’란 비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5월21일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육자 주택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 전용별장 ‘특각’ 수십여 채 소유

김정은 위원장과 로열패밀리 멤버들의 주거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다. 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집무 시설로 중심가인 중구역 창광산지구에 있는 특정 시설을 지목하고 있다.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불과 2㎞ 정도 떨어진 곳이다. 김 위원장의 집무실은 노동당 전문 부서와 만수대의사당(국회) 등 경비가 삼엄한 기관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김 위원장은 평양에 이 밖에도 3~4개의 집무 공간을 더 갖추고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경호 문제를 의식해 특정 지역을 계속 이용하지는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이 고조되던 지난해 3월 국방부는 사거리 1000㎞의 ‘현무3’ 미사일을 공개하면서 “김정은 집무실 창문도 겨냥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압박했다. 정보 당국자는 “과거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일 당시 알카에다 세력이 미군의 무인공격기 등에 의해 궤멸되는 걸 목도한 북한은 경호는 물론 최고 지도부의 집무실 방호 시설 보완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3월에는 북한이 김정은의 집무 공간 중 하나로 추정되는 시설의 내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한·미와 대립각을 세우던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통한 미국 타격을 위한 작전회의를 열었다며 집무실 책상에 앉은 김정은의 사진을 드러냈다. 당시 책상 위에는 애플 컴퓨터가 올려져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1년 1월 후계자이던 김정은이 자신의 집무 공간인 15호 관저를 리모델링하는 데 모두 1억 파운드(약 1734억원)가량을 썼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정은이 생모 고영희가 주거 공간과 집무실로 쓰던 이 건물에 사무실을 꾸렸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런 집무 시설에는 미사일 공격 등에 대비한 방호 시설과 경비 체제는 물론 유사시 탈출과 이동이 가능한 지하통로 등도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전용별장인 ‘특각’도 북한 전역에 수십여 채 갖고 있다. 김일성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고, 김정일이 마지막 여자였던 김옥과 함께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난 장소인 묘향산 특각은 대표적인 전용별장이다. 후계자 지위를 굳혀가던 김정은이 이복형인 김정남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보위부 요원을 투입해 습격했던 우암각은 ‘평양판 왕자의 난’ 현장이 됐다. 이곳은 1970년대 납북됐다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머물렀고,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이 이용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의 집도 김정은 집무실과 같은 창광산지구에 있다. 지난해 12월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처형되기 직전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주목받은 곳이다. 이 집은 장성택이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은 1995년 11월부터 살았던 곳으로 김정일이 선물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배우 최은희씨는 1978년 2월 초 김경희의 당시 집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서울 귀환 이후 펴낸 책을 통해 밝혔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권유로 김경희의 집에 함께 갔는데 그리 크지 않은 단층 양옥집이었다고 전했다. 7~8평 정도 되는 응접실에서 인삼차를 접대받았다는 것이다.

집권 초 스키장·물놀이장 등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치중하던 김정은이 권력의 지지 기반인 특권층을 챙기기 위해 주택 건설을 각별히 챙기고 있다. 로동신문은 최근 김정은의 아파트 건설현장 방문 소식을 잇따라 전하면서 “천년을 책임지고 만년을 보증할 건설의 질”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자재·장비 부족으로 인한 날림공사와 공기 맞추기식 부실이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무너져내릴지 모를 모래성을 쌓으면서 김정은은 마식령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속도전이 다다르게 될 종착점이 어디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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