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이 당신의 정자 죽이고 있다
  • 김형자│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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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용품이 정자 세포 파괴…1세기 안에 남자 생식능력 상실할 수도

남성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자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병원의 닐스 스카케백 교수가 발표한 연구가 흥미롭다. 그는 일상용품과 음식 속 환경호르몬이 남성의 정자 세포를 파괴시켜 약골로 만들고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치약 속 환경호르몬이 정자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입증돼 화제다. 음식이나 일상용품이 인간의 정자 기능에 미치는 연관성을 직접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호르몬으로 남성 생식 능력 위기

1992년 스카케벡 교수는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남성의 정자 수가 날로 줄어든다”는 도발적 내용을 발표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남성의 정자 수가 50년 만에 45% 감소했고, DNA가 파괴된 기형 정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카케벡 교수는 북미·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21개국에서 1938년 이후 태어난 1만5000명의 남자를 대상으로 정자 수와 질을 연구한 61개의 문헌을 수집해 검토했다. 그 결과 정자 수가 1940년에는 정액 1㎖당 평균 1억1300만 마리였으나 50년이 지난 1990년에는 6600만 마리로 45% 줄어들었음을 알아냈다. 또 1회에 사출되는 정액 양이 평균 3.4㎖에서 2.75㎖로 현격히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층의 감소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씨가 마른다’는 경고였다.

ⓒ 시사저널 우태윤
학계는 이런 경고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특이 현상은 후속 연구에서도 줄지어 관찰됐다. 스카케벡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프랑스의 자크 아우거 연구팀은 한결 더 심각한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1945년에 태어나 30세가 된 남자와 1962년에 태어나 30세가 된 남자의 정자 수를 비교했는데, 1975년 30세가 된 남자의 정자는 정액 1㎖당 평균 1억200만개였지만 1992년에 30세가 된 남자는 평균 5100만개에 불과해 17년 사이에 50%나 감소한 것이 증명됐다. 인간의 정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남성의 생식 능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얘기다. 정자 수가 정액 1㎖당 2000만 마리 이하로 떨어지면 대다수 남자는 불임이 된다. 이들의 자료대로라면 1세기 안에 남자가 생식 능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감소의 원인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스트레스 및 흡연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남성 불임을 부추기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환경적 요인 때문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스카케벡 교수가 ‘내분비계 교란물질’을 측정해 그 원인을 밝힌 것이다. 스카케백 교수팀은 조사 대상이었던 화학물질 중 3분의 1가량은 정자에 직접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치약이나 샴푸에 사용되는 살균제 트리클로산(Triclosan), 일부 자외선 차단제에 사용되는 자외선 흡수제 4-MBC(4-methylbenzylidene camphor), 매니큐어나 접착제에 포함된 가소제 프탈산 디부틸(di-n-butylphthalate:DnBP) 등 환경호르몬이 그것이다. 트리클로산은 약 40년 동안 활용된 항균제로 많은 종류의 세균을 없앨 수 있어 치약이나 샴푸 등에 쓰인다. 세균을 없애는 것으로 알려진 이 트리클로산이 오히려 인체의 내분비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는 게 스카케백 교수팀의 분석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또한 이 연구 결과를 인정했다.

환경호르몬은 생물의 몸에서 정상적으로 나오는 호르몬이 아니다. 체내에 들어와 인체 호르몬과 유사하게 작용해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호르몬의 양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화학물질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몸속에서 천연호르몬을 흉내 내 호르몬의 균형을 깨거나 역할에 변화를 가져온다. 호르몬에 작용하는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환경성 내분비계 교란물질’이라고도 부른다. 환경호르몬은 에스트로겐 분비를 과도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경우 남성의 고환에서 분비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뇌의 특정 부위로 들어가 에스트로겐으로 바뀐다. 에스트로겐이 없으면 남성은 남성적 특징을 띠지 못한다. 하지만 에스트로겐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안드로겐의 양이 적어져 오히려 탈남성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자 수 감소, 미성숙 고환, 음경 기형 등이 대표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자들은 난자를 찾기 위해 호르몬 신호를 쫓아간다. 환경호르몬은 이 신호를 막는 역할을 한다. 황체에서 분비돼 생식 주기에 영향을 미치는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과 생리 활성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의 호르몬 신호까지 약화시켜 불임을 유발하는 것이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보다 천연 에스트로겐을 더 많이 분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트로겐 양이 조금만 더 많아져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정자 종말은 시간문제라는 주장도

스카케백 교수의 ‘환경성 내분비계 교란물질’ 측정 연구는 5월9일 국제 학술지인 ‘EMBO(유럽분자생물학기구)’ 저널에 발표됐다. 그는 이번 조사가 확실히 우려할 만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부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위험성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편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집 안에 독소 공장을 만들어 놓은 채 생활하고 있는 셈인지 모른다. 물론 추가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해야겠지만, 적어도 해당 결과를 보면 환경호르몬이 현대 사회 임신·출산율의 감소를 가져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강력한 근거가 되리라는 게 스카케백 교수의 설명이다.

생활 습관도 문제가 된다. 오늘날 남자들은 사무실에서건 자동차 안에서건 실내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혈액 순환이 방해되는 이러한 자세는 고환의 온도를 상승시켜 정자 수와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기형 정자가 나올 확률도 높다. 고환은 열·습기·압력에 약해 고온 사우나는 좋지 않다. 꽉 끼는 옷을 입었을 경우에도 고환의 온도가 올라간다. 네덜란드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24시간씩 6개월간 꼭 맞는 하의를 입은 남자와 헐렁한 속옷을 입은 남자의 정자 수를 비교해보니 전자가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이 정자 형성에 가장 좋은 조건은 체온보다 1~2도 낮을 때다. 

환경호르몬은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씻고 닦고 먹고 숨 쉬는 모든 것에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환경호르몬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철저하게 환경 친화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가정용 세제나 치약 등의 사용을 줄이고, 일회용 컵이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일회용 식기를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 것도 환경호르몬을 멀리할 수 있는 생활의 지혜다.

이젠 난임 해결을 위해 건강한 정자에 주목해야 할 세상이 왔다. 지금 당신의 정자 수와 정액의 양은 어쩌면 당신 아버지와 할아버지보다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 설령 스카케백 교수의 자료에 오차가 있다 하더라도 남성 정자의 종말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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