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 등에 업은 차르 제2의 스탈린 꿈꾸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6.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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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부활 야심 품고 동진하는 푸틴

‘잘못된 결혼’이라고도 말하고, ‘비현실적인 이상’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도마 위에 오른 대상은 유럽 공동체인 유럽연합(EU)이다. 유로존이 재정 위기를 겪는 동안 정치인·학자·기업인·언론인들은 유럽의 장래에 관해 각자의 진단과 처방전을 내놓았다. 나름의 논리를 가진 처방전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EU 유권자 몫이었고, 5월25일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들은 EU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선택했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유럽의 미래를 두고 “회복할 가능성 10%, 해체 가능성 40%, 수년간 고통이 지속될 가능성 50%”라고 말했는데 유럽 유권자들도 그의 처방에 한 표를 던진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25일의 선거 결과를 보며 가장 기뻐했을 사람 중 하나일 것 같다. 유럽 비주류들의 최신 유행 중 하나가 푸틴 대통령 떠받들기다. 섬뜩한 제복을 입은 모습이 인상적인 헝가리 극우 정당 ‘요빅’의 멤버부터 좀 더 젊고 센스 있게 옷을 입는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관계자까지. 전 유럽의 극우주의자는 푸틴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고, 이들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덩치를 부쩍 키웠기 때문이다. 

ⓒ EPA 연합·AP 연합
한때 러시아의 친구들은 좌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사귄 러시아의 새 친구들은 포퓰리스트 우익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러시아의 크림 합병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을 때 국제감시단이 파견됐는데, 여기에는 프랑스의 국민전선, 헝가리의 요빅, 벨기에의 블람스 베랑,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 유럽 전역의 극우 정당 당원들이 포함됐다. 서방 국가의 대다수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으나 국민투표를 참관한 이들은 “모범적인 투표”라고 치켜세웠다.

“푸틴이야말로 가장 존경하는 외국 지도자”

유럽 극우주의자들은 푸틴에게서 무엇을 봤던 것일까. 푸틴과 이들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강력하게 국익을 주장하는 모습,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자세, 동성 결혼 반대, 경제를 국가 관리 아래 두는 푸틴의 수완은 그들이 바라는 지도자상과 비슷하다.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싫어하는 것도 보통의 유럽 극우주의자와 푸틴이 갖는 공통점이다. 유럽 정치 전문가인 사이먼 힉스 런던정경대 교수는 “극우와 극좌 진영은 푸틴이 유럽 주류 세력을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에게 말로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기득권 엘리트의 위선을 보는 것을 극우주의자들이 좋아한다”는 게 힉스 교수의 설명이다.

푸틴에 대한 애정 공세는 쉽게 엿볼 수 있다. 영국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순식간에 제1당으로 올라선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젤 패라지 대표는 노골적이다. “푸틴이야말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외국 지도자”라고 수시로 말하며 친(親)푸틴 TV 방송인 ‘러시아 투데이’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다. 이런 ‘극우주의 정당’이라는 새로운 채널이 유럽 내에서 푸틴의 영향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는 점은 푸틴이 웃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웃음의 이유는 유럽의 분열이다. 단순히 찢어졌다는 사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셀 오렌스타인 노스이스턴 대학 정치학 교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무력으로 도전하는 푸틴을 향해 유럽이 하나로 대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게 유럽의회 선거 결과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유럽은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해가며 해당 국가들에 러시아와의 관계, 특히 에너지 교류에서 간섭을 해왔다. 핵심은 “에너지 공급처를 다양화해 러시아 의존을 벗어나라”였다. 러시아 정부는 유럽이 동쪽으로 진출하자 유럽 수출 경로를 다변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통과하는 기존 육상 가스관 외에 러시아 북부에서 발트해 밑을 지나 독일로 이어지는 ‘노스 스트림(North Stream)’과 흑해 밑을 지나는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유럽으로 갈 일부는 아시아로 돌렸다. 그 결과 2011년 교역 상대국 순위에 변동이 생겼다. 러시아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으로 중국이 등록됐다.

EU는 그동안 러시아가 내놓는 전략에 비판만 할 뿐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오로지 거리 두기 전략만 구사해왔다. 러시아와의 전반적인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EU 내에서는 친(親)러시아적인 극우 정당의 반란까지 벌어졌다. 유럽이 몸살을 앓는 동안 오히려 푸틴은 유럽과 정반대인 동쪽으로 눈길을 돌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로 향했다. 2015년 1월1일 출범을 앞두고 있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 협정에 앞서 5월29일 카자흐스탄·벨라루스 대통령과 함께 창설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며 자신의 유라시아 구상을 계속 살려가고 있다. 1억7000만명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 미국·EU·중국에 대항한다는 게 푸틴의 야심 찬 구상이다.

“소련을 부활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푸틴의 구상은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경제 관계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많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미국의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미국 PBS방송에 출연해 “푸틴은 소련 붕괴를 끔찍한 실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한 번만 말한 게 아니다”며 “(이런 의심의 근거는) 거기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푸틴은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부정하고 있지만 아스타나에서 열리는 이날의 행사가 그 계획의 일부라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한 후 서방과의 갈등은 냉전 이후 최고조에 올랐다. 과거 소련이 지배하고 있던 영토를 러시아가 다시 지배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에 대해 푸틴은 줄기차게 아니라고 답한다. 유라시아경제연합에 대해서도 “구소련이 지배하고 있던 지역의 통합을 목표로 하지만 소련을 부활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다. 독립국가인 구소련 회원국의 경쟁력을 살려주고 싶어서”라고 주장한다.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이 새로운 서명이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보내고 있는 푸틴이 그리는 웅대한 구상 중 하나라는 점, 그리고 푸틴에게는 개인적인 업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영토뿐만 아니라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까지 잃은 러시아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을 통해 완벽한 복구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될 수 있다고 본다. 조슈아 터커 뉴욕 대학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났을 때부터 “(푸틴은) 구소련 영토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영향력 확장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실제로 카자흐스탄·벨라루스 등에는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파견한 정치 엘리트층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해당 국가와 동맹을 구축하려는 의도에서다.

정치 공동체로 의심받는 유라시아연합

하지만 푸틴이 서명식에 자신의 꿈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정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우크라이나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왔고 유럽의회 선거가 있던 날 대선을 치러 페트로 포로셴코를 새 지도자로 뽑았다. 그는 유라시아경제연합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핵심 시장인 우크라이나가 빠져나간 것부터가 푸틴의 구상을 꼬이게 만들었다.

연합의 일원이 될 카자흐스탄은 경제 분야에서만 협력을 희망하고 있을 뿐, 구소련 시대처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파고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한 각료는 공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연합의 정치화를 피하는 것”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다. 그래서 시민권이나 외교 정책, 의회 간 협력, 여권 및 비자 문제, 수출 규제 등은 협정 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로 러시아에 충실한 편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자국 주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에는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지도자처럼 다른 구소련 회원국도 자국 경제 전망을 러시아에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발견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가 나오는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과 거리를 두고 있고, 조지아(그루지야)와 몰도바는 6월에 EU와 정치·경제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협정에 서명하기로 했다. 카자흐스탄의 정치 평론가인 아이도스 살림은 “러시아에 유라시아경제연합은 정치 프로젝트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는 완전히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확장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1년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CIS(독립국가연합)를 결성해 러시아가 지배하는 단일 동방 시장을 기대하며 구소련 회원국들을 묶으려 했다. CIS의 실패 이후에도 비슷비슷한 경제 공동체들은 계속 탄생했다. 삼국 관세동맹, 단일경제권(CES),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 CIS 자유무역지대 등이 그들인데, 이것들도 따져보면 유라시아경제연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미 네 개의 경제 공동체가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셈이지만 현재까지 실제로 기능을 하고 있는 조직은 없다.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러시아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다른 국가들을 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러시아에 반감을 품은 다른 회원국은 러시아를 대신할 수 있는 국가들과 관계 맺기에 나섰다. 미국·EU·중국 등이 그 대상이었다. 동진(東進)이 낳은 유라시아경제연합이 ‘독재자의 망상’과 ‘세계 경제의 허브’라는 선택지 중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푸틴이 얻은 역사적 교훈에 달려 있는 셈이다.

 

푸틴이 EU를 모델로 삼아 구상한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은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을 관통하는 강력한 초국가 연합이다. 안정적인 가격과 예측 가능한 정부, 그리고 개방된 국경에 대한 구소련 회원국의 향수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계획대로 시작된다면 2010년 관세동맹으로 결성된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의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력 등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며 주요 경제 분야의 정책적 협력도 강화된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은 과거 소련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며 3개국 국내총생산(GDP) 합계액이 2조7000억 달러에 달해 브라질의 그것을 넘어선다. 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등 구소련 회원국들의 관심도 뜨거운데, 5월29일 창설 조약을 체결한 직후 푸틴은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스스탄이 가입할 수 있도록 전력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푸틴이 생각하는 장기적인 연합체의 범위는 몽골·터키·인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로화’처럼 단일 통화를 사용할 수 있다는 소문을 부정한 적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연합을 단단히 한 뒤 단일 통화를 쓰는 단일 국가 형태로 발전시키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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