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판박이, 유족 가슴만 뭉개졌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6.11 13: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 그 후 1년…업체대표·공무원·해경 책임 회피로 진상 규명 못해

2013년 7월18일,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들의 ‘해병대 리더십’ 수련활동 현장에서였다. 당시 교관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학생들을 바다로 내몰았다. 그 결과 30여 명의 학생이 무방비 상태로 파도에 휩쓸렸다. 결국 5명이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지난해 여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하청 거듭되며 안전 책임 분산

최근 해병대캠프 참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본격적인 진상 규명 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국민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렸던 두 ‘안전사고’는 공통점이 많다. 민간업체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각종 편법과 불법을 자행했음이 드러났다. 국가기관 등의 관리·감독 책임은 방기됐다.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안전은 도외시됐다. 결국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원인부터 결과까지 닮은꼴이다. 사건 진상 규명과 관련해서도, 해병대캠프 참사 발생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가 세월호 참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10월24일 대전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유족들이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과연 해병대캠프 참사의 사후 처리는 어땠을까. 유족들은 눈물로 하소연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양경찰과 검찰이 부실 수사를 했다며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요구한다. 아이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사정 당국의 느슨한 수사망을 대거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왜 1년째 이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일까.

유족들이 안전관리 소홀의 1차 책임을 묻는 곳은 ‘사설 해병대캠프’다. 여기에는 3개 이상의 민간업체가 관여돼 있다. 원청과 하청이라는 사슬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당초 공주사대부고는 한영T&Y라는 사설 업체와 ‘병영체험활동에 관한 용역’을 체결했다. 이 업체와 해병대식 훈련 캠프로 수련활동을 진행하기로 계약했다. 한영T&Y는 안면도해양유스호스텔을 운영하는 업체다. 유스호스텔은 청소년의 숙박 및 체류와 관련된 서비스만 하는 곳이다. 청소년수련관이나 수련원처럼 종합적인 수련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진실은 이랬다. 한영T&Y는 여행업체 ‘코오롱트래블’에 병영체험 교육을 일괄 위탁했다. ‘코오롱트래블’은 또 다른 사설 업체 ‘해병대리더십’에 교육을 재하청했다. 결국 병영체험 교육 서비스에 대해 하청이 두 번 거듭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리 책임이 분산된 것이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유족들은 말한다. 안전의식이 미흡한 무자격 교관이 교육을 진행하게 된 배경은 유스호스텔이 ‘하청’이라는 편법으로 수련활동 사업을 하는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경은 교관 등 캠프 관계자 4명을 구속하면서도 한영T&Y·코오롱트래블 등 업체 핵심 관련자들은 불구속 입건했다. 결국 검찰은 한영T&Y 오백근 대표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아닌 ‘수상레저안전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다. 코오롱트래블 김지화 대표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학생들의 사망과 관련되는 혐의에서 업체 대표들이 모두 벗어난 것이다. 현장에 있던 교관 3명, 한영T&Y 이사 1명, 코오롱트래블 김 아무개 이사(해병대리더십 운영) 등 총 5명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일각에서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업체명을 변경하며 사업을 계속할 의지를 보이는 한영T&Y는 현재 휴업 중이다. 사진은 3월16일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이 촬영했다. ⓒ 이후식 제공
‘비용 절감’에 ‘학생 안전’은 뒷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검찰은 건설 공사 현장에서의 ‘산업안전보건법’ 판례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업체의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대표이사가 책임질 의무가 없다는 것이 판례의 주요 내용이다. 유족들은 이것이 ‘봐주기식 판례 적용’이라고 항변한다. 사고 당사자가 산업노동자가 아닌 학생들이라는 점, 특히 편법으로 두 차례 하청 단계를 거쳤다는 것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런 판례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각 업체 대표들은 학생들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로부터 유의미한 증언을 접할 수 있었다. 2010년부터 2013년 초까지 충남 태안에서 해병대캠프를 운영했던 ㅋ 사설 업체 관계자다. ㅋ업체는 2011년께 유스호스텔 측과 수련회 활동 교육 위탁계약 협의를 진행한 적이 있는 곳이다.

당시 ㅋ업체는 캠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생 1인당 최소 2만3000원씩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ㅋ업체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소 그 정도는 받아야 6~7년 이상 관련 업무에 종사한 경력자를 교관으로 모집할 수 있다. 그 (금액) 아래로 받아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아르바이트생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유스호스텔은 1만원 후반대를 요구했고, 결국 ㅋ업체와의 합의는 결렬됐다고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학생의 안전은 내팽개치는 관행이 오래 지속돼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영T&Y는 2012년부터 유스호스텔을 인수해 영업을 시작했다. 만약 인수 당시 한영T&Y가 안전관리에 대한 의지만 있었다면, 자격 요건이 충분한 교관을 보유한 업체와 계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된다. 코오롱트래블도 ㅋ업체와 같이 안전에 입각한 교육에 들어갈 최소 비용을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영T&Y는 코오롱트래블과 학생 1인당 1만원 후반대의 비용으로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ㅋ업체 관계자는 “학생 1인당 1만8000원에 계약이 된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자격이 부족한 아르바이트 교관을 고용했고, 이로 인해 지난해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훈련을 진행했던 교관 3명 중 2명은 인명구조사 자격증도 수상레저 자격면허도 소지하지 않은 ‘무자격 교관’이었다.

이런 와중에 한영T&Y가 해병대캠프 사업을 계속하려는 정황이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한영T&Y는 법인 명칭을 ‘해가든유스호스텔’로 변경하는 것을 태안군에 신청해 승인받았다. 당시 충남 서산세무서가 발부한 사업자등록증을 보면 ‘해병대체험’이 ‘종목’으로 명시돼 있다. 등기상 사내이사는 여전히 오백근 대표가 맡고 있다. 오 대표는 지난해 12월 내려진 1심 판결에서 수상레저안전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가석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스호스텔은 휴업 중이다.

관리·감독 부실에는 처벌 없어

유족들은 한영T&Y를 ‘종속 기업’으로 지배하고 있는 모기업인 ㅎ업체의 책임을 주장한다. “특정 기업이 이익을 좇으려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이면서 안전관리를 도외시해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ㅎ업체 측은 “(사고와)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유족들은 참사의 2차 책임이 관리·감독을 담당해야 할 주요 기관들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발표된 해경 수사 결과에 따르면, 태안군청과 태안해경 담당자들의 업무 미숙 및 부실 점검이 드러났다. 당시 해경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충남 태안군청 해양수산과는 사고 해역에 공유수면 사용 허가를 내주면서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1년에 두 차례씩 해야 하는 실태 조사도 하지 않았다. 반드시 갖추도록 돼 있는 계류장(배가 정박할 수 있는 안전시설) 설치도 확인하지 않았다. 태안해경 수산레저계 역시 사고 이틀 전을 포함해 2014년에만 세 차례 유스호스텔을 방문해 안전점검을 했으나 계류장이 필요 없다고 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족들은 태안군청 및 해경이 청소년지도사 및 운영 책임자 없이 해병대캠프를 진행한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 불법으로 과다한 인원을 수용해 영업한다는 민원이 수차례 있었음에도 과태료만 부과하며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검찰이 관련 공무원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검찰이) 불법으로 인허가를 내주고 관리·감독조차 소홀히 한 태안군청과 태안해경을 시간 부족과 인원 부족을 들어 수사선상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감사원에 태안군청에 대한 감사를 요청했다. 안건은 하위 기관으로 계속 이첩되다 지난 5월, 피감기관이 되어야 할 태안군으로부터 “문제 없다”는 취지의 회신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해경의 경우 자체 감찰을 진행했으나, 지난해 12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해경 소속 경찰관 4명이 경징계에 해당하는 ‘불문경고’를 받았다. 결국 태안군이나 해경 등에서 관리·감독의 부실에 책임을 지고 처벌받은 이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참사의 법적 책임자로 지목된 피고인들은 지난해 12월, 각각 최소 6월에서 최대 2년 사이의 금고형(교도소에 가두고 노역은 시키지 않는 형벌)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항소로 2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 피고인들은 자신들에게 참사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안전은 내 소관 업무가 아니다” “대표이사의 지시를 받아 일했을 뿐 해병대캠프 사건에는 책임이나 권한이 없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유족들은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만이 참사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 마련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사건의 재수사, 당국의 제대로 된 대처를 소리 높여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섯 학생의 소중한 목숨이 ‘안전 불감’이라는 잘못된 구조 속에서 희생됐다. 하지만 그 어떤 어른도, 이 비극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세월호 참사 1년 후’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6월3일 유족 대표 이후식씨가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이후식 제공
“해병대캠프 사고와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유사한 사건이다. 지난해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했다면 아마 세월호 참사도 없었을 것이다.”

해병대캠프 참사 유족 대표 이후식씨를 6월4일 수원역 앞에서 만났다. 이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 세월호 참사 등이 해병대캠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는 이 땅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학생들이 희생되는 사고가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거듭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현 정부는 머리 숙여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외친다.

참사 이후 유족들은 정부와 공권력에 실망을 거듭했다고 한다. 당초 교육부와 청와대는 진상 규명 및 사고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실제 행동은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다. 이씨는 “교육부는 사고 발생 직후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사고대응총괄반·사고조사반·사후대책반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보상을 담당하는 사후대책반 이외에는 아무런 활동이 없었다. 사정 당국의 초동 수사가 편협 수사가 되도록 방관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한다. 책임을 져야 할 ‘윗선’은 모두 빠져나갔고, 학생들 사망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서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닌 ‘업무상과실치사’가 적용됐다고 말한다. 이씨는 “사건 피고인들의 일방적 진술과 해경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초동 수사의 결론이 났다. 사건의 진상은 다시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 당국은 갯골(갯벌 바닥이 움푹 파인 곳)의 존재가 참사의 원인이라며 ‘과실치사’ 결론을 내렸지만, 실제로 유족들이 방문 조사한 결과 사고 해역은 갯골이 존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180여 일 동안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다섯 유족이 매일 계속하던 1인 시위는 두 유족이 일주일에 두 번씩 이어가는 것으로 빈도가 줄었다. 이씨는 “생업이 바쁜 가족도 있고, 사건 초기 서둘러 장례를 치르자고 결정한 것 등을 놓고 감정 대립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가 약속과는 달리 우리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면서, 애꿎게도 유족들 관계만 악화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