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과 김부겸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4.06.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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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행복했던 곳이 어딜까. 대구광역시다. 왜?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는 그동안 경쟁이 없는 도시였다. 대구에서는 특정 정당 명찰만 달면 “막대기를 꽂아도, 심지어 강아지를 내보내도 당선된다”는 자조적인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곳에서 치열한 정치적 경쟁이 생겼다는 것은 전국적인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경쟁은 새누리당 경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권영진. 그는 서울 노원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내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경험한 정치인이다. 그가 대구 변화에 목숨을 걸겠다는 도전적 슬로건을 내걸며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구 지역과의 인연이란 고등학교를 나온 것밖에 없던 그가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대구 정치권에 기반이 전혀 없었던 그의 경선 승리는 대구 사람들이 얼마나 변화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대구시장 선거의 경쟁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이 나타나면서 긴장도가 높아졌다. 김부겸은 경기도 군포에서 국회의원을 세 번 지내고 고향 대구로 왔다. 그의 대구행은 화제였다. 네 번째 국회의원 당선이 보장된 지역구를 버리고 그가 속한 정당으로서는 불모지인 대구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그의 국회의원 도전은 아깝게 실패했지만 대구 사람들은 그의 자기희생을 무릅쓴 행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권영진과 김부겸의 대결은 출발부터 뜨거웠다. 여당 후보 권영진은 ‘대구 혁신’을 내걸었다. 대구의 나태와 안이함을 흔들어 깨우겠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김부겸은 ‘대구 대박’을 내세웠다. 자신을 뽑아주면 대구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루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이 흥미로웠던 것은 슬로건만 놓고 보면 여야가 뒤바뀐 것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의 권영진은 변화·혁신·소통을 강조한 반면, 진보 정당 김부겸은 책임·능력·신뢰를 강조했다.

권영진이 원칙적이며 도전적이었다면, 김부겸은 포용적이고 융합적이었다. 권영진은 새누리당 기존 지역 정치 질서에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진보적 방향으로 중도 진출을 도모해서 자신의 기반을 만들어야 했고, 김부겸은 지역의 정치적 비주류로서 보수적 방향으로 중도 진출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전략적으로 보면 둘 다 1996년 클린턴의 선거를 지휘했던 딕 모리스의 ‘중간층 다가가기(triangulation)’ 전략을 따르는 것이었다. 상대편 지지자들도 받아들이기 쉬운 수용적 이슈를 통해 중간층을 먼저 설득하려는 전략이다. 선거 결과는 권영진과 김부겸 모두의 승리였다. 권영진이 당선됐으나 김부겸도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득표를 했다.

대구 사람들이 가장 행복했을 거라는 얘기를 한 것은, 전에 없던 이런 흥미로운 경쟁 과정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 과정의 경험은 대구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즉 ‘경쟁 감수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경쟁과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던 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권영진과 김부겸의 경쟁은 두고두고 화제가 될 것 같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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