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거물들, 여권 권력지도 바꾼다
  • 양정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6.18 11: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문수·오세훈·임태희·나경원 등 7·30 재보선 출마 준비 박근혜정부 레임덕 앞당길 듯

“7·30 재·보궐 선거까지만 그럭저럭 넘어가면 내후년 총선 때까지는 큰 선거가 없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중략) 그런데 솔직히 6·4 지방선거야 ‘박근혜 마케팅’으로 버텼다 치고 이번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새누리당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은 7·30 재보선을 전망하면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여당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은 선거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이미 재보선 결과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재보선은 ‘미니 총선’으로 불릴 만큼 정치적 의미가 상당하다. 당장 역대 재보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미 현역 의원들의 지방선거 출마와 선거법 위반 등으로 전국에 걸쳐 14곳이 재보선 지역으로 확정된 상태다. 성격도 전국 규모다. 현재 확정된 지역 중 서울·경기가 6곳이고, 충청 2곳, 영남 2곳, 호남 4곳이다. 오는 6월26일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는 서울 서대문 을과 충남 서산·태안까지 포함하면 최대 16개 지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셈이다.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수도권과 충청 지역만 최대 10곳에서 격전을 예고한다. 이쯤 되면 재보선 자체가 여야 간 명운을 건 한판 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

여당인 새누리당으로서는 특히 부담스럽다. 텃밭인 영남은 2곳인 데 반해, 자갈밭인 호남은 4곳이다. 게다가 부산 해운대·기장 갑은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우세를 장담하기 어렵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현재 재보선 확정 지역 14곳 중 애초 19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했던 8곳은 이겨야 그나마 본전이라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솔직히 반타작인 7석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비박 거물급들 대거 출사표…친박은 인물난

여권 내에서도 특히 더 답답한 쪽은 청와대와 친박 주류 핵심이다. 인물난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근 그룹과 새누리당 내 친박계 코어 그룹 내에서 재보선에 출마할 만한 인물을 찾기란 그야말로 ‘밀림에서 바늘 찾기’ 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만 강화시키는 공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래저래 재보선에 내세울 인력 풀 자체가 고민거리인 셈이다.

현재까지 새누리당 안팎에서 재보선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 중 상당수는 하나같이 비박 진영 거물급 인사들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최고위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이다. 조직력보다는 인지도가 우선적으로 작동하는 재보선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들은 어느 지역구에 출마해도 나름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사실상의 전국구 스타급 인물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 인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들이다.

김 지사는 서울과 충청권 출마가 거론되고 있고, 일각에선 바로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오 전 시장은 서울·경기 등 수도권 어느 지역이든 출마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고, 나 전 최고위원은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의 지역구였던 경기 수원 병 출마를 강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실장은 이미 평택 을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는 등 일찌감치 신발 끈을 조여 맸다.

이에 비해 친박계에서 거론되는 인력 풀은 상대적으로 좁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함께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했던 김황식 전 총리와 이혜훈 전 최고위원, 김근식 수석부대변인 정도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 전 최고위원과 김 수석부대변인은 사실상 친박계 색채가 많이 엷어진 편이고, 김 전 총리는 서울시장 경선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친박계로 분류하기 어려운 인사”라는 게 중론이다. 가장 주목되는 친박계 인사인 이 전 수석의 경우, 출마 자체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이 전 수석의 출마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유력 당권 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연일 “충성심 강한 이정현 전 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의 출마가 여권의 재보선 전략에 도리어 부담이 될 것이란 의미지만, 여기에는 친박과 비박 간 힘겨루기의 의미도 담겨 있다. 이 전 수석이 국회에 재입성할 경우 윤상현 사무총장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와대 메신저의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 의원으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재보선 기점, 비박 중심으로 재편될 것”

이미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정현 전 수석의 출마를 7·14 전당대회와 연관 짓는 전망이 나온다.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우세 구도로 흘러가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비주류인 김무성 의원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면 출마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박 대통령 측근 그룹 입장에서는 전당대회의 파고를 넘어 이 전 수석이 상대적으로 당선되기 쉬운 지역에 출마하더라도 전체 재보선 성적표를 자신하기는 쉬운 상황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이 여전한 데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낙마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인사 논란이 점입가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보선 지역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는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 6·4 지방선거에서 이미 확인됐다. 문 후보자 사퇴 촉구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한 초선 의원은 “재보선에서 또다시 박 대통령을 팔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국민이 뭐라 하든 우리는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식의 일방통행으로는 재보선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설령 새누리당이 재보선에서 선전하거나 승리하더라도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의 입지 강화는 기대난망일 공산이 크다. 김문수 지사나 오세훈 전 시장, 나경원 전 최고위원, 임태희 전 실장 등의 국회 재입성은 그 자체로 일부 친박계에 집중돼 있는 여권 내 권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황식 전 총리나 이혜훈 전 최고위원이 친박 지도부에 힘을 실을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 등과 함께 비박 진영 ‘잠룡’ 군단은 박 대통령의 기세를 무너뜨리고도 남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나 주변 인사들로서는 내년 집권 3년 차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힘이 빠지기 시작할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이 재보선에서 설령 승리할 경우라도 비박계 스타급 인사들이 국회에 재입성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전체적인 여권 내 권력지도는 7·30 재보선을 기점으로 급속히 비박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